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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전략 경쟁 시기 미국의 군사적 대응: 한반도 전략 상황에의 함의

입력 2020. 10. 23   14:31
업데이트 2020. 10. 23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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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논단 1823호(한국국방연구원 발행)




부형욱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
soyareen@kida.re.kr


미국 내 대중국 위협론이 지날수록 거세지고 있다. 미국은 중거리핵전력조약(INF) 파기를 시발점으로 하여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군사력을 증강하려는 하고 있다. 이러한 미군의 움직임은 한반도 전략상황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향후 우리 안보·국방 커뮤니티는 이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미군의 움직임 중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3개 정도다. 조만간 주한 미군에 F-35가 배치된다는 점, 미국 내에서 전술핵 재배치를 열망하는 한국 보수진영에 동정적인 여론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점, INF 파기를 계기로 사정거리가 긴 프리즘(PrSM) 미사일의 한반도 배치를 고려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북한이 도발적 행동을 한다면 미군은 계획하고 있는 군사조치를 앞당길 것이다. 이는 아태지역에서 미·중 간의 군비경쟁이 본격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미·중 전략경쟁과 북핵 고도화가 맞물리면서 상황이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북한이 깊이 생각해서 움직여야 하고, 우리도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미·중경쟁이라는 수레바퀴에 깔리는 일이 없을 것이다.

서론

2019년 3월, 세 번째 ‘현존하는 위험 위원회(Committee on the Present Danger)’가 출범했다. 미국의 안보 커뮤니티에서 영향력 있는 학자 및 전문가들이 결성한 민간단체다. 중국 위협론을 강하게 부각시켰다. 미국의 국가이익이 중대한 기로에 섰을 때마다 창설되어 활발한 활동을 했던 이 위원회의 상징적 의미를 잘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미국 내 대중국 위협론은 시간이 지날수록 거세지고 있고, 이에 대한 민주·공화 양당의 입장이 거의 일치한다. 지난 5월 백악관이 내놓은 ‘대중국 전략보고서(United States Strategic Approach to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도 전례 없는 강도로 중국을 몰아붙였다.

미·중 전략경쟁이라는 큰 판이 있고, 북핵 위협이라는 작은 판이 돌아가며, 그 위에 우리 안보가 놓여있다. 미·중 전략경쟁과 북핵 문제의 판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순간 큰 변화가 일어난다. 그때 주요 행위자들이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력 균형의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중국이 지난 10여 년 동안 군비증강을 꾀했다. 북한 역시 핵 개발에 매진했다. 앞으로 몇 년간은 미국의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잠자코 지켜보던 미군이 대응 조치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미군의 움직임은 진즉 시작됐다. 미국이 2019년 8월,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파기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향후 본격화될 미군의 움직임은 한반도 전략상황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제 우리 안보·국방 커뮤니티는 이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미·중 전략경쟁의 군사적효과: INF파기의 맥락

그동안 많은 안보 전문가들이 미국과 러시아 간의 INF 조약 파기가 우리 안보에 가져올 파급효 과를 과소평가했다. INF 조약은 유럽의 일이었고, 미·러 간의 게임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INF 조약 탈퇴를 감행한 배경에 미국의 대중국 견제 의도가 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다. INF 조약 파기 시점에 맞춰 미국이 인도-태평양지역 동맹국에 중거리미사일 배치를 원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거리 1,600km의 전략장사정포(Strategic Long Range Cannon) 배치도 논의된다고 한다. 이것은 동아시아는 물론 한반도 안보지형의 근본적 변화를 초래하는 폭풍 이 될 것이다.

INF 조약은 미국과 소련 두 나라만을 구속하는 조약이었다. 이 조약에서 양국은 유럽에 배치된 것은 물론이고 양국이 보유하고 있었던 사거리 500km에서 5500km에 이르는 지상발사 중거리미 사일 전부를 폐기하기로 했다. 동 조약에서 말하는 중거리미사일은 사거리 500~5500km의 모든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중거리 미사일은 당시 유럽에서 군사적 긴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핵심 무기체계였다. 1988년에 INF 조약이 발효된 이후 1991년까지 미국과 소련은 총 2,692기의 중거리 핵미사일을 폐기시켰다. INF 조약 체결되면서 유럽의 군사적 긴장이 즉각적으로 낮아졌고, 냉전 종식의 촉매가 되었다. 이후 지난 32년간 유럽에서 평화가 유지되었다.

2019년 8월 2일, 미국은 1987년에 소련과 체결한 INF 조약을 최종적으로 파기했다. 어쩌다가 이렇게 파국적인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일까. INF 조약 파기를 예고하면서 미국은 러시아의 조약 위반을 문제 삼았다. 러시아가 2008년부터 INF 조약에 위반되는 미사일 시험발사를 실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러시아의 조약 위반이 미국이 INF 조약 파기를 결심하게 된 동인이었다면 진즉 러시아의 위반에 강하게 항의했어야 했다. 미국이 INF 조약에서 걸어나간 이유 중 절반 이상이 중국의 A2/AD(반접근/지역거부) 전력의 급격한 성장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보는 게 맞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미국이 대테러 전쟁에 국력을 쏟아붓는 동안 중국은 경제를 발전시키면서 군사력 강화에 매진했다. 2010년대가 되자 중국의 군사력 투사범위는 저 멀리 해상으로까지 뻗치기 시작했다. 미군에 비해 보잘것 없는 전력을 보유하던 중국이 이제는 태평양 지역에 있는 미군 전력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수준까지 급성장했다. INF 조약은 미국과 러시아만 구속했기에 중국은 중거리미사 일 전력을 강화하는 데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았다. 이 점이 미국의 불만을 야기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건설한 중거리미사일전력 중 DF-21, DF-26과 같은 미사일은 미군 항공모함을 타격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미군 항공모함이 중국의 중거리 미사일에 피격당하는 상황은 미국의 대통령이 감수할 수 있는 위험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라 하겠다.

미군은 이러한 악몽과 같은 상황을 피하기 위해 많은 고심을 한 것 같다. 공해전투(air-sea battle) 개념을 논의한 것도 실상 미군의 자산을 중국의 중거리미사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해·공군 자산을 활용하여 선제적으로 중국의 전력을 무력화하기 위한 개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군사력이 현대화되면서 대륙 깊숙이 있는 중국군의 중거리미사일전력을 무력화하 는 일은 너무나 위험한 과업이 되어버렸다. 미군은 값비싼 항공자산과 해상자산의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채 작전을 수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미군은 안전이 확보된 지상에서 대량으로 값싸게 중국군의 군사자산을 타격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다. 그 해답이 지상발사 중거리미사일이다. INF 조약 파기로 미국은 자유롭게 중거리미사일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전시에 지상발사 미사일의 전술적 활용도는 매우 높다. 공중이나 해상에서 발사되는 미사일보다 대량 발사가 가능하며, 더욱 신속하게 반응이 가능하다. 또한 발사차량을 이곳저곳에 분산시킬 수 있어 생존성이 높다는 이점도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인도-태평양 지역 동맹국에 이들 시스템을 배치해야 한다는 정치적 난관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애스퍼 미 국방장관은 핵이 탑재되지 않은 중거리미사일을 동아시아에 배치하는 방안을 언급했다. 그러나 중국의 핵미사일 전력은 재래식 미사일전력과 혼재되어 있으므로 재래식 탄두를 장착한 미국의 중거리미사일이라 할지라도 중국의 핵전력은 심각한 위협 하에 놓이게 된다. 중국은 이에 반응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며, 역내 군사적 긴장은 극적으로 고조될 것이다.

INF 조약 파기 이후 유럽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한다는 논의보다 인도-태평양 지역에 배치를 고려한다는 얘기가 더 먼저 나온 것은 낯선 광경이다. 그만큼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군사력 균형에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괌에서 시작하여 전략적 요충지인 동맹국에 중거리미사일을 배치할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동맹국의 의사를 타진하겠지만, 정치적으로 매우 소란스러운 상황이 예견된다. 벌써 한국, 일본이 거론되었다. 물론 한국은 중국에 너무 가까이 있어 오히려 배치 고려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도 있다는 견해도 있지만, 이는 희망적인 추론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 관련 미군의 움직임 세가지

언론을 통해 알려진 미군의 움직임 중 중대한 것이 3개 정도다. 첫째가 조만간 주한 미군에 F-35가 배치된다는 점이다. 작년 9월, 국내 언론들은 2020년부터 주한미군 보유 F-16이 F-35로 교체되기 시작한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하여 미 태평양사 공군 사령관 찰스 브라운(Charles Brown)은 언론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 공군은 2025년까지 아태지역에 200여 대의 F-35를 배치할 것이다. 태평양사 공군은 1년 이내에 F-35를 인수하게 될 것이며 역내에 F-35를 보유한 한국과 일본 공군과의 연합훈련을 실시하게 될 것이다. F-35가 수행할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타격력 외에 센서로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F-35는 미군 정책결정자들이 위기 시 어떤 작전을 지시할 것인가와 관련하여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미군이 주한미군의 F-16을 모두 교체하면 주한 미군이 갖게되는 F-35는 모두 60대다. F-35는 보이지 않는 전투기이며 상당한 폭장량을 자랑한다. 브라운 사령관의 말대로 F-35는 그 자체가 센서 역할을 하기도 해서 몰래 다니며 정보를 수집할 수도 있다. 2021년이면 한국 공군은 F-35 40대를 갖게 된다. 여기에 주한 미군이 F-35 60대를 더하면 100대다. F-35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9) 군사적으로 든든한 자산이 될 것 같기는 한데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마저 자극할 수도 있다.

다음으로는 주한 미군이 갖고 있는 전술지대지미사일(ATACMS)을 사정거리가 더 긴 미사일로 교체한다는 보도다. 새로운 미사일의 명칭은 프리즘(PrSM)이다. 내년에 양산 계약을 맺고 2023년까지 배치한다고 한다. 그동안 주한 미군이 가지고 있던 ATACMS는 최대 사거리가 300km였다. 한반도에 국한된 무기다. 그런데 프리즘 미사일의 사정거리는 최소 750km 정도일 것으로 예상된다.

주한미군 기지를 중심으로 반지름 750km의 원을 그려보면 프리즘 미사일의 전략적 가치가 저절로 드러난다. 이 미사일은 이동표적도 타격할 수 있도록 개발된다고 하니 지대함 미사일로도 사용 가능하며, 미사일 이동발사차량(TEL)도 타격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칭다오, 다롄 등 중국의 주요 해군 기지와 산둥 반도 어느 곳의 중거리미사일(IRBM) 기지도 사정권에 둘 수 있다.

세 번째는 전술핵 문제다. 작년 8월, 미 국방대의 군사학술지에 한반도 전술핵 배치를 주장하는 논문이 실렸다. 한반도 전술핵 배치는 한국에 제공하는 확장억제의 신뢰성을 증진시키며, 중국을 압박하는 효과가 있어 북핵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된다는 논리였다. 미 국방대의 소령급 실무자들의 글임에도 상당수 언론은 이를 묵직하게 다뤘다.

그러나 미국의 전략가들은 전술핵 배치에 부정적이다.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의 핵전력을 보아도 한반도 전술핵 배치는 과잉대응으로 보는 것 같다. 소련이 수백 개의 핵무기를 만든 이후인 1953년에야 미국은 유럽에 전술핵을 배치했다. 그때는 ICBM도 없었고 SLBM도 없었으니 동맹국을 안심시키기 위해 급히 가져다 놓은 것이었다. 지금은 굳이 전술핵을 가져다 놓지 않아도 마음만 먹으면 멀리서 또는 은밀히 타격할 수 있으니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을 크게 자극하면서까지 전술핵을 배치할 실익이 없다고 보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과 관련하여 일부 보수적 시각의 전문가들은 미국 영토인 괌에 전술핵을 가져다 놓고 유사시에 한국에 배치하는 방안을 제안하는 모양이다. 괌이면 군용기로 4시간 이내의 거리다. 유사시 신속하게 한국으로 가져와서 억제장치로 사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한국 내의 정치적 반대도 우회할 수 있다. 이것은 워싱턴의 싱크탱크에 있는 전직 관료가 귀띔해준 내용이다. 그는 미국 내에서 전술핵 재배치를 열망하는 한국 보수진영에 동정적인 여론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이러한 미군의 움직임은 외견상 모두 한국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북핵에 대응하는 차원의 조치이기도 하지만 중국도 견제하는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모호한 태도를 견지하려는 한국을 자신들 쪽으로 확 잡아당겨 버리는 효과도 있다. 미국의 본심이 어디로 얼마나 기울어져 있는지 헤아릴 길은 없다. 그러나 중국 견제의 의도가 그 이면에 작용하고 있음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미국은 지난 2018년 국방전략서에서 대테러전의 시대는 갔고 이제는 중국 등 강대국 경쟁자들을 상대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선포했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취하는 군사조치의 함의를 평가할 때 중국 견제 의도를 항상 읽어내야 한다는 얘기다.

그동안 미군은 중국이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력을 증강시켜 인도-태평양 지역에 주둔한 미군을 위협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인내하며 명분을 축적했다. 이제 미군이 움직일 터인데 그 핵심에 지상발사미사일이 있다. INF 조약 파기 이후 이런 판도라 상자가 열릴 줄 예상한 이들이 많지 않았다. 지상발사미사일이 가장 민감한 무기다. 그래서 33년 전에 미국과 소련이 INF로 이것들을 없애기로 합의했던 것이다. 미국이 INF를 파기하고 지상발사미사일을 배치하겠다는 의도를 공표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움직임이다.

미·중 전략경쟁이 군비경쟁으로 이행되면서 미 육군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대테러전에 올인하던 시기에 미 육군은 해·공군에 비해 전력증강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예산확보 전쟁에 서 써먹을 강한 논리가 생겨난 것이다. 값싸고, 생존성 높고, 반응속도 빠른 육군용 미사일로 상대를 제압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미 국방부 예산전쟁의 승자는 통상 미 해군이다. 미 육군이 해군을 설득하고 타협하면서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고 있는 형국이다. 미 육군의 미사일 이 해군에게 도움이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 해군의 항공모함이 중국의 둥펑 -21, 둥펑-26의 위협하에 있는데 이들을 동맹국에 배치한 미사일로 견제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항모에서 발진하는 고가의 스텔스 전투기로 중국의 대함 미사일을 제거하는 것은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진다. 위험하기도 하다. 육군이 효율적으로 견제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크레피네비치(Krepinevich)가 얘기하는 군도방어(Archipelagic Defense)라는 전략개념이 바로 이것이다.

이러한 미 육군의 움직임은 동아시아 지역 군사력 균형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미 육군은 INF(중거리핵전력폐기조약) 때문에 지난 33년 간 사거리 500Km 이상의 미사일을 갖지 못했다. 이제 INF 조약은 파기되었고 지상발사미사일의 사거리 제한은 없어졌다. 이제 미 육군은 <그림 1>에서 보듯 원거리정밀화력(LRPF) 확보 프로그램이란 간판 아래 다양한 중거리 화력을 양산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750km 사거리의 프리즘 미사일 외에 전략장사정포와 다양한 미사일 개발에 이미 착수했다. 해군용 토마호크 미사일을 육군용으로 개조하여 사거리 2000km를 구현하려 하며, 사거리 4000km에 이르는 퍼싱(Pershing) 미사일의 새 버전도 개발하고 있는 모양이다.


미 육군은 최소한 세 종류의 미사일 타격권을 상정하고 있다. 이들 미사일 타격권은 각각 반지 름 750km, 2000km, 4000km의 원으로 구현된다. 삼중의 원을 동맹국들에 적절히 배치하고자 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한반도가 반지름 750km의 원의 중심이고, 오키나와가 반지름 2000km의 원의 중심이며, 괌이 반지름 4000km의 원의 중심이다. 이들 세 종류의 원은 중첩적이며 밖으로 확장된다. 북한 핵에 대응하면서 중국에 막대한 출혈을 강요하는 플랜이 완성된다.

맺음말

그동안 여러 전문가들은 비핵화 과정에서 북한이 도발적 행동을 할 가능성을 상정해야 하며 북한이 제기할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를 하이브리드 위협 관점에서 논의했다. 북한은 외교적 문제 일으키기, 공포심 조장, 불법행위를 통한 압박, 법체계·법적 합의를 활용한 법률전, 미디어전 등을 제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북한은 비핵화 과정에서 자신들의 체제 안전이 위협받는다고 느끼거나 자신들이 목표로 한 정치적 성과 달성에 미치지 못했을 때 이러한 행위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정 정도의 선을 넘는 도발적 행동이 미중 전략경쟁의 맥락에서 문제가 된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아무런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이래 북핵 협상 교착 상황에서 크리스마스 선물 운운하며 2019년 연말을 보냈고, 올해 전반기에 단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지속하다 지난 6월에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북한의 도발적 행동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한반도를 미·중 전략경쟁의 발화점으로 만들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ICBM 또는 SLBM 시험발사 등과 같은 선을 넘는 도발을 하면 미국은 조만간 중거리 미사일 배치 카드를 꺼내들지 모른다. 동맹국과 미 본토와 주한 미군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사드 배치의 후폭풍보다 더 곤혹스런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2019년 8월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파기한 이래 중거리미사일을 착착 준비하고 있 다. 북한이 도발하면 이를 명분으로 한반도에, 중국이 도발하면 그것을 명분으로 괌, 오키나와 등에 중거리미사일을 배치하려 할 것이다. 북한이 새로운 길을 간다면 사실상 미국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격이 된다. 북한이 도발적 행동을 한다면 미군이 계획하고 있는 군사조치를 앞당기게 된다. 아태지역에서 미·중 간의 군비경쟁이 본격화되는 것이다. 이 경우 북한은 스스로를 불쏘시개로 삼아 한반도를 미·중 전략경쟁의 근원지로 만드는 행동을 한 것이 된다.

미·중 전략경쟁과 북핵 고도화가 맞물리면서 상황이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북한이 깊이 생각해서 움직여야 하고, 우리도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미·중경쟁이라는 수레바퀴에 깔리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눈과 귀를 틀어막고 제 갈 길만 가려고 고집할 것 같아 걱정이다. 가만히 있으라 설득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진검 승부를 준비하고 있는데 옆에서 칼춤을 추는 격이 된다. 정신 차리고 보면 발밑이 천 길 낭떠러지임을 북한은 직시해야 한다.

한편 우리는 미국에 대해 좀 대담해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북핵에는 같이 대응하되 중국 견제에 우리를 연루시키는 데는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일종의 강온 양면전략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온전히 우리 국익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중국은 물론이고 미국을 향해서도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연합사령관이 사드 배치를 언급한 것이 2014년 6월이었다. 그 이후 사드가 실제 배치될 때까지 2년의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2년을 그냥 흘려보냈다. 다시 그 전철을 밟을 수는 없다. 조만간 미국의 중거리미사일 문제가 매머드급 안보현안이 될 것이다. 그때를 대비하여 아무도 우리를 흔들지 못하게 할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 본지에 실린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본 연구원의 공식적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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