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전쟁과 인간

끊임없는 질문이 ‘비극’을 막는다

입력 2020. 10. 21   17:08
업데이트 2020. 10. 2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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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이라는 디스토피아- 통일’을 다룬 텍스트들


당위성 몰입에 ‘이후 사회’에 무관심
수치적 접근은 ‘인간의 문제’ 외면시켜
독일도 ‘사회 통합’ 값비싼 비용 고민
이질성 극복 위해 계속해서 상상해야 

 

베를린 장벽. 게티이미지뱅크
베를린 장벽. 게티이미지뱅크

장강명의 소설 『우리의 소원은 전쟁』
장강명의 소설 『우리의 소원은 전쟁』
이응준의 소설 『국가의 사생활』
이응준의 소설 『국가의 사생활』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했다. 이듬해 독일이 통일되었고 소비에트 연합이 해체됐다. 서독의 헬무트 콜(1930~2017) 총리는 붕괴 직전인 소비에트 연합의 혼란을 놓치지 않고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여러 동유럽 국가들로부터 통일을 승인받았다. 동독의 총선에서는 서독과의 연합 체제를 지지하는 야당이 대승을 거두었고 통일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많은 사람이 독일의 통일과 콜 총리의 절묘한 외교에 찬사를 보냈지만, 통일 이후 독일의 혼란은 비로소 시작되었다.

통일을 이룩할 당시 동독은 사회주의 국가 중 가장 부유했고 서독은 세계 3위의 경제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통일 이후의 경제적 부담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동독 출신 국민은 통일 국가에서 ‘2등 시민’ 취급을 받았고 수십 년 동안 각기 다른 체제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관성은 쉽게 깨지지 않았다. 볼프강 베커 감독의 영화 ‘굿바이 레닌’ (2003)에 그려진 것처럼 통일 이후 동독인들의 상실감은 너무도 컸다. 서독인들의 불만도 못지않았다.

언젠가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우리가 겪을 혼란은 독일보다 훨씬 심각하리라는 사실은 쉽게 예측 가능하다. 경제와 문화의 차이는 동·서독의 격차보다 훨씬 크고, 분단의 기간도 훨씬 길다. 그동안 남과 북은 민간인 사이의 교역이나 왕래도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독일과는 달리 참혹한 전쟁을 겪었고 지금도 군사적인 대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악조건들을 극복하고 과연 남과 북은 무사히 통일을 이룩할 수 있을까. 통일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수치적인 분석보다 어쩌면 문학적 상상력이 더 요긴할지도 모른다. 남과 북 사이의 이질감은 이미 메우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응준의 소설 『국가의 사생활』(2009)은 ‘흡수통일’이 된 이후의 통일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삼는다. 통일이 되고 대한민국의 경제는 눈부시게 발전한다. 남한의 건설사들은 북한지역에 진출해서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이면서 엄청난 수익을 올린다. 대규모 인구 유입으로 인건비가 낮아지고 전쟁 위험이 줄어들자 기업들의 주가도 급상승한다. 하지만 동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대다수 북한 사람들은 박탈감에 시달린다.

그들은 자본주의 체제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값싸고 험한 노동으로 내몰렸고 통일 이전에 가졌던 직업을 유지하지 못한다. 새로운 갈등과 함께 범죄도 급증한다. 예비군만 무려 500만에 달했던 북한에는 미처 회수하지 못한 총기들이 많이 남아 있었고, 그것들은 암시장을 거쳐 범죄조직의 손에 들어간다. 총기 범죄 급증으로 경찰의 순찰차는 장갑차로 바뀐다. 북한군 강경파들은 대량살상무기를 동원한 쿠데타를 계획한다. 통일 이후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살인청부업자로 전락한 북한군 엘리트 장교 출신인 주인공 ‘리강’은 우연히 쿠데타 음모에 휘말리게 된다. 소설의 후반부는 드라마 ‘아이리스’를 연상시키는 스릴러물로 급변했지만, 전반부에 묘사된 통일 대한민국의 풍경은 무척 사실적이다.

한편 장강명의 소설 『우리의 소원은 전쟁』(2016)은 통일의 과정을 응시한다. 이 소설은 남한의 보수층들이 선호하는, ‘전쟁을 거치지 않은 흡수통일’이 목전에 온 상황에서 시작된다. 흡수통일은 결코 수월하게 전개되지 않는다. 남한과 북한은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자 이름만 ‘분계선’으로 바꾼 채 휴전선을 유지한다. 그러나 통일의 충격을 줄이는 방안을 모색하기도 전에 중국과 미국이 개입한다. 두 국가는 북한지역에 상대국의 군대가 입성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그 결과 ‘분계선’ 북쪽 지역은 유엔평화유지군이 통치하게 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 협상 과정에서 배제되었지만 ‘외교의 승리’라고 자평한다. 전쟁을 피하고, 급격한 충격을 회피하는 이 상황은 실제로 북한 전문가들이 이상적으로 여겼던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남한 정부는 점진적인 통합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분계선이 해체될 것이라고 천명했지만, 북한 지역은 사실상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만다.

유엔평화유지군의 느슨한 통치 아래 북한지역은 국제 마약조직이 연계된 필로폰·코카인 생산기지로 변한다. 통일 전문가들이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라고 평가한 ‘점진적 흡수통일’이 이루어졌지만, 현실은 예측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북한 지역에 범죄와 부패가 늘어갈수록 사람들은 계속 남쪽으로 이주한다. 그리고 수많은 이주민이 정착한 남한 사회의 갈등도 점차 임계점에 이른다.

상상력을 바탕으로 창작한 텍스트에 불과하지만 두 소설이 공통적으로 우려하는 지점은 비슷하다. 이질성을 극복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통일은 디스토피아적인 비극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통일의 노력은 이 사실을 직시하면서 시작되어야 한다.

통일의 과정에 절대적인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도록 유도하는 방안, 이질감 극복을 위한 새로운 교류의 타진, 국제사회를 설득하는 방안 등 필요한 질문은 차고 넘친다. 우리는 두 소설에 그려진 디스토피아적인 풍경을 바꿀 의무가 있다. 통일은 체제의 문제이기 전에 인간의 문제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바로 상상력이다. 타자를 상상하려는 노력을 멈출 때 인간은 어리석은 비극을 반복하게 된다. 두 편의 가상통일 소설들은 이 사실을 일깨워준다.

<이정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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