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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발전에 이바지한단 자부심으로 40년”

김상윤 기사입력 2020. 10. 20   17:15 최종수정 2020. 10. 20   17:29

MC 정비 장인 육군수방사 군사경찰단 서재호 주무관 


열악한 환경서 홀로 시작
직접 정비환경 개선·예산 절감
전우들 생각에 외부 스카웃 거절
정비사 두명 뿐… 후배 양성 관심 


40여 년간 군 모터사이클(MC·Motor Cycle) 정비 외길을 걸어온 육군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단 서재호 주무관이 자신이 정비한 MC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양동욱 기자

“제 손으로 직접 정비한 군 모터사이클(MC·Motor Cycle) 장비에 정해진 수명이란 없습니다.”

육군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 군사경찰단 서재호 주무관이 절도있게 늘어선 MC 장비를 하나하나 쓰다듬으며 말했다. 담담한 말투 속 조용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과시나 자만이 아니었다. 오랜 경험과 독보적인 기술력에 대한 확신에 가까웠다.
특정 분야에서 특출난 경력과 전문성을 보유한 이들을 우리는 장인이라 부른다. 일명 ‘싸이카’로 불리는 군 MC 정비 분야에서는 오직 단 한 사람만이 장인의 자격이 있다. 무려 40여 년 동안 MC 정비 외길을 걸으며 묵묵히 우리 군을 위해 헌신한 ‘오토바이 정비사’ 서 주무관이 그 주인공이다. 글=김상윤/사진=양동욱 기자 

 
수방사가 운용하는 MC는 국가적인 대형 행사에서 멋진 퍼레이드를 펼쳐 국군의 위상을 높인다. 또 국내외 VIP에 대한 기동경호 등 막중한 임무에도 투입된다. 이렇게 군사경찰의 꽃과 같은 MC 장비는 정비 방식이 일반 차량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 우리 군에서 이를 완벽히 책임질 수 있는 전문가는 서 주무관 이외에는 거의 없다. 대체불가 MC 정비 장인 서 주무관의 거친 손에 기름이 마를 날이 없는 이유다.

서 주무관은 매년 국군의 날을 앞두고 MC 장비를 완벽히 정비하기 위해 몇 달씩 정비고에서 살다시피 한다. 또 실제 행사에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예비 편대의 일원으로 직접 MC에 탑승해 퍼레이드에 참가해왔다.

“MC 퍼레이드는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되는 큰 행사입니다. 특히 가장 선두에 서는 MC는 절대 멈춰선 안 되죠. 만약 시동이 꺼지면 군 전체의 명예가 손상을 입는다는 각오로 정비에 임해왔어요. 매년 행사 때마다 얼마나 긴장하는지 마치 피가 마르는 기분이에요. 긴장이 높은 만큼 무사히 행사가 끝나면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받죠. 그렇게 군에서 어느덧 40년을 보냈어요.”

수방사에 따르면, 우리 군의 정식 ‘오토바이 정비사’는 현재 서 주무관과 계룡대에 근무 중인 서 주무관의 제자 단 두 명뿐이다. 수년 전, 서 주무관이 후배를 가르쳐 오토바이 정비사로 양성하기 전까지는 전군 유일 보직이었다. 사실 이 보직 자체가 40여 년 전에 서 주무관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입대 전부터 오토바이가 취미였어요. 안 타본 오토바이가 없었죠. 부친이 오토바이 판매·정비 업소를 운영하셨거든요. 그러다 1978년 입대해 육군수도경비사령부 헌병단(현 수방사 군사경찰단)에서 병사로 군 생활을 하게 됐는데, 당시 군의 MC 정비 여건이 너무 열악했던 거에요. 자체 정비 기술은 없고, 외주 수리를 맡기니 불량이 잦았어요. 그래서 나름의 정비 기술을 가진 제가 직접MC를 수리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점점 간부들의 인정을 받게 됐고, 군 생활을 마칠 무렵에는 간부나 군무원으로 군에 남아달라는 권유를 받았죠. 그때 오토바이 정비사란 보직이 처음 만들어졌고요.”

당시 서 주무관에겐 3개의 선택지가 있었다. 전역 후 아버지의 가업을 잇는 길, 유명 MC 업체인 H사에서 근무하는 길, 그리고 군에 남는 길이었다. 이 중에서 군무원을 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병사 시절 H사의 고위 임직원으로부터 일자리 제안을 받기도 했어요. 군무원 첫 월급이 8만5000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만약 전역 후 H사로 갔거나 가업을 이었다면 더 많은 돈을 벌고 자유로운 생활을 누렸겠죠. 그래도 저에게는 전우애가 훨씬 더 중요했어요. 제 실력을 알아봐 준 간부들이 고마웠고, 그동안 정이 많이 들었거든요. 제 손으로 군의 MC 정비환경을 개선해나간다는 성취감도 컸어요.”

서 주무관은 40여 년 동안 단 한 건의 정비사고 없이 MC 정비 임무를 수행했다. 과거 MC 정비는 전적으로 외주에 의존해 가동률이 60% 수준이었는데, 군내 자체 정비 시스템으로 전환해 장비 가동률을 100%로 높여놓은 이도 서 주무관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서 주무관은 1998년 IMF 사태 이후 수입품인 MC 수리 부속의 단가가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자 직접 관세청, 조달청, 외교부 등을 발로 뛰어가며 수리부속 조달 환경을 개선해 관련 예산을 40% 가까이 절감하기도 했다.

오토바이 정비사는 결코 화려한 보직이 아니다. MC와 승무원들의 활약을 음지에서 조용히 뒷받침하며,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치열하게 자신의 소임을 다해야 한다. 긴 시간 군을 위해 헌신한 서 주무관에게 남모를 어려움도 많았다. 그렇다고 큰 박수나 남다른 주목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가끔 아내로부터 “너무 욕심이 없다”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 그래도 서 주무관은 여전히 군무원과 MC 정비가 자신의 천직이라 굳게 믿는다. 60대를 넘긴 지금도 정비에 대한 열정만큼은 군무원 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20대 청년 시절 못지않다.

“좋은 정비사는 집요해야 합니다. 기술은 파고들면 끝이 없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후배 양성에도 더 큰 관심을 가질 생각입니다. 훗날 제가 이곳에 없어도 군사경찰과 MC는 계속 활약해야 하니까요. 군무원으로서 오랜 기간 근무하며 군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 어떤 보상보다 큰 자부심입니다. 장인이란 거창한 칭호는 조금 쑥스럽네요. 정비 현장과 군을 떠나게 되는 마지막 날까지 군무원이자 정비사로서 그저 매 순간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김상윤 기자 < ksy0609@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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