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한국전쟁 70주년, 대중가요로 본 6.25전쟁

두 눈 꼭 감아도 보이는… 고향길 언제쯤 열릴까

입력 2020. 10. 18   13:59
업데이트 2020. 10. 18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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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1985 임진각에서/작사 박대림 /작곡 남국인 /노래 조미미


실향민과 이산가족을 위무한 노래
1972년 파주에 ‘망향의 누각’ 세워
망배단서 매년 명절에 망향제 올려 

 
1980년대 남북 문화예술 교류 늘며
‘대동강 편지’ ‘잃어버린 30년’ 등
유행가에 시대 상황 담아 아픔 달래 

 


<임진각에서>는 북한에 고향을 둔 실향민과 이산가족들을 위무(慰撫)한 노래다. 배경인 임진각은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임진각로 148~53에 있는 망향의 누각.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방으로 7㎞, 광화문 서울시청으로부터 54㎞ 북쪽에 있으며, 1972년 북한 지역이 고향이면서 6·25전쟁 이후 고향에 가지 못하는 실향민들을 위해 6000여 평의 대지 위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지어졌다. 이곳에는 1985년 건립한 망배단(望拜壇·고향을 향해 절을 하는 단)이 있고, 매년 명절에 실향민들이 와서 망향제(望鄕祭)를 올린다. 이 애절한 풍경을 작사가 박대림이 노랫말로 짓고, <잃어버린 30년> 곡조를 얽은 남국인이 가락을 지어서 조미미의 목청에 얹었다.

두 귀를 막아도 쟁쟁하게 들리는 대동강 뱃노래는 아직도 강기슭으로 울려 퍼지고 있을까? 고향산천을 어찌 꿈속에서라도 잊으랴. 아~ 언제쯤 고향길 성묘길은 열릴까? 두 눈을 감고 그날을 꿈꾼다. 민족의 동질성과 이념의 상극성을 초월하는 제3의 그 무엇, 우리 민족만의 묘답(妙答)을 갈망해 본다.

임진각 본관 건너편 망배단, 비(碑)의 몸통에 1983년 KBS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138일간 453시간)에서 설운도가 부른 노래 〈잃어버린 30년〉노래 가사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향로와 망배탑을 마주하면 가슴이 찡하다. 망배단 뒤쪽에는 1953년 건설된 자유의 다리(경기도 기념물 162)가 놓여 있다. 길이 83m, 너비 4.5∼7m, 높이 8m로 목조와 철조를 혼합해 만들었다. 1953년 휴전협정 이후에 한국군 포로 1만 2773명이 자유를 찾아 귀환한 다리라고 해서 ‘자유의 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곳에는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 화통(京義線長湍驛蒸氣機關車火筒)이 6·25전쟁 당시 모습으로 전시돼 있다.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녹슨 증기기관차 미카3-244호. 6·25전쟁 때 연합군 군수보급물자를 싣고 신의주로 향하던 중 폭탄을 맞아 멈춰선 증기기관차의 화통이다. 개성역에서 한포역(황해북도 평산군에 있는 역)까지 올라갔던 열차가 중공군에 밀려 장단역까지 내려왔고, 결국 후퇴하던 연합군이 북한군에 이용될 것을 우려해 열차를 폭파하면서 이 화통만 남게 됐다. 옛 장단역 남쪽 50여m 지점 철로 옆에 붉게 녹슨 채 방치돼 있다가 2007년 11월 보존 처리해 지금의 장소로 옮겨졌다.

노래 속 모란봉(牡丹峯)은 평양시 기림리 금수산에 있는 높이 96m의 봉우리. 모란봉 아래 대동강 능라도라는 강섬이 있다. 원래 금수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최승대의 생김새가 피어나는 모란꽃 같다고 하여 함박뫼, 모란봉이라 하던 것이 유래다. 이곳에는 20여 종의 침엽수와 70여 종의 활엽수가 숲을 이루고 있고, 철 따라 70여 종의 새들이 날아든다.

을밀대는 평양시 기림리(경상동)에 있는 고구려 시대 누정으로 6세기 중엽에 건축됐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이뤄져 있다. 을밀봉(乙密峰·새들이 빽빽하게 무리 지어 사는 산)에 있어서 을밀대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사방이 탁 틔어 있다고 해서 사허정이라고도 한다. 6세기 중엽 고구려가 평양성 내성을 쌓으면서 북장대로 세운 것으로 지금 있는 건물은 1714년(숙종40)에 다시 세운 것이다. 높이는 11m다.

능라도(綾羅島)는 평양시 중구역 경상동 대동강에 있는 섬으로 둘레 6㎞, 길이 2.7㎞다. 이름은 대동강 물결 위에 능수버들이 비단을 풀어놓은 듯 아름답다는 데서 유래한다. 경치가 수려해 예부터 기성팔경(箕城八景)의 하나로 꼽혔다. 기성팔경은 평양에서 유명한 여덟 가지 경치, 즉 밀대상춘(密臺賞春), 부벽완월(浮碧玩月), 영명심승(永明尋僧), 보통송객(普通送客), 차문범주(車門汎舟), 연당청우(蓮堂聽雨), 용산만취(龍山晩翠), 마탄춘창(馬灘春漲)을 이른다.

이곳에는 북한 천연기념물 제1호로 지정된 능라도 산벚나무와 젓나무가 있다. 남쪽에는 반월도가 있어 능라도와 연결해 하나의 유원지로 꾸며져 있다. 남쪽에는 금릉동굴을 통해 안상택거리와 문수지구를 이어주는 능라다리가 있다. 북쪽에는 동평양의 문수지수와 금릉2동굴을 지나 연못지구를 이어주는 청류다리가 있다.

영명사는 고구려 392년(광개토왕2년)에 건립된 평양시 금수산에 있는 절이다. 부벽루 서편 기린굴 위쪽에 있으며, 평안남도의 사찰을 관할하는 총본산이었다. 동명성왕의 구제궁 유지에 따라 건립해 아도화상이 머물렀던 곳이다. 1911년 이 절은 서도의 본산이 됐고, 1920년 31본산 중의 하나가 됐다.

<임진각에서> 노래가 불린 1980년대 전반은 남북한 문화예술 교류와 인도적 차원의 접촉이 상승세를 탈 때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유행가에 실었다. 1981년 나훈아가 부른 <대동강 편지>가 그 징표다. ‘대동강아 내가 왔다/ 부벽루야 내가 왔다/ 우표 없는 편지 속에/ 한 세월을 묻어 놓고/ 지금은 낯설은 나그네 되어/ 칠백리 고향길을 찾아왔다고~.’ 노랫말 모티브도 비슷하다. 1983년 설운도의 목청에 실은 <잃어버린 30년>도 같은 맥락의 노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그리웠던 30년 세월/ 의지할 곳 없는 이 몸 서러워하며/ 그 얼마나 울었던가요~.’1985년 <평양 아줌마>는 어쩌랴. ‘오마니 아바지 그 어디에 계십니까/ 목 메이게 불러봅니다.’ 이 노래는 1985년 8월 22일 제8차 남북적십자 본회담 합의로 이루어진 예술공연단 교환 공연의 뒷자락에 매달린 유행가다. 그해 9월 20일부터 23일까지 남북한 대표공연단은 서울과 평양을 상호 동시에 교환 방문하면서 공연을 했다. 평양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 버스 안에서 나훈아는 이 노래를 구상했다.

<임진각에서>를 부를 당시 조미미는 39세였다. 1947년 전남 영광 출생, 2012년 66세로 이승을 등졌다. 갑자기 발견된 간암이 이미 말기였다. 본명은 조미자로 남진과 같은 초등학교(목포북교)를 다녔으며, 나이는 한 살 적고 학년은 2년 후배다. 그녀는 목포여고 1학년 때 목포방송국 전속 가수 모집 콩쿠르에서 1등을 했으며, 2학년 때는 서울 동아방송국 제1회 콩쿠르대회에서 1등을 하면서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이때 2등은 김부자였다. 1966년 <떠나온 목포항>을 취입했고 이어서 김세레나, 김부자도 동아방송 전속 가수가 돼 같이 활동을 하며 여가수 3인방이 된다. 1969년 조미미는 <선생님>으로 빅히트를 치며 대중의 인기를 한몸에 받는다. 그가 남긴 유행가는 <바다가 육지라면>, <먼 데서 오신 손님>, <서산 갯마을>, <단골손님>, <진부령 아가씨> 등이다.


<유차영 국콜마 여주아카데미 운영원장(전무)/예비역 육군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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