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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침함이라던 핵 잠수함… 어뢰 터져 승무원(118명) 몰살

입력 2020. 09. 25   15:33
업데이트 2020. 09. 25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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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잠수함 쿠르스크호 침몰

2000년 8월 12일 대참사… 러시아 국민 충격·슬픔 휩싸여
저널리스트 로버트 무어, 인터뷰와 광범위한 자료로 진실 접근
푸틴-군부 ‘보고·지시’ 서로 기다리다 결정적 구조 타이밍 놓쳐
지난해 관련 영화 ‘쿠르스크’ 개봉… 은폐된 사건 이해에 큰 도움

2000년 8월 12일 침몰한 러시아 원자력 잠수함 쿠르스크호(K141)의 모습. 필자 제공
2000년 8월 12일 침몰한 러시아 원자력 잠수함 쿠르스크호(K141)의 모습. 필자 제공
로버트 무어(Robert Moore)의 『A time to Die: The Untold Story of the Kursk Tragedy』
로버트 무어(Robert Moore)의 『A time to Die: The Untold Story of the Kursk Tragedy』

2000년 8월 12일 러시아 원자력 잠수함 쿠르스크호(K141)의 어뢰가 폭발해 승무원 118명이 전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러시아 해군의 군사과학기술이 총집약된 불침함이라 자랑했던 전략핵 잠수함의 침몰이었다. 러시아 국민들은 아연했고, 세계의 해군 가족 모두가 아픔을 함께했다.

로버트 무어는 저서 『A time to Die: The Untold Story of the Kursk Tragedy』를 통해 쿠르스크호 침몰 당시 잠수함의 비밀을 지키고자 했던 러시아 해군 당국과 해군 수병들의 생명을 구하고자 노심초사했던 구조팀이 부딪혔던 난관을 상세히 묘사한다.


전략핵 잠수함 침몰의 충격

핵잠수함 쿠르스크호의 설계에는 10년이 걸렸고 건조에는 3년이 걸렸다. 그러나 침몰하는 데는 135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쿠르스크호 침몰을 둘러싼 핵심 요지는 다음과 같다. 폭발의 원인은 무엇인가? 수병들은 구조될 수 없었는가? 왜 러시아 군부는 그토록 사건의 비밀을 유지하려고 발버둥을 쳤는가? 저널리스트인 로버트 무어는 이 비극적 사건에 대해 광범위한 자료를 수집해 진실에 접근했다.

러시아 최정예 핵잠수함 쿠르스크호 침몰은 이미 2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사건일 수도 있다. 이 책의 우리말 번역본은 아직은 나오지 않았고, 그 전에 관련 영화가 나왔다. 2019년 개봉한 영화 ‘쿠르스크’다. 조만간 번역본도 출판 예정이다. 순서가 뒤바뀌었지만, 영화를 먼저 시청하는 것도 이 사건의 이해에 많은 도움을 준다.

러시아 전략핵 잠수함 쿠르스크 침몰 사건을 주제로 2019년 개봉한 영화 포스터.  필자 제공
러시아 전략핵 잠수함 쿠르스크 침몰 사건을 주제로 2019년 개봉한 영화 포스터. 필자 제공


2001년 을씨년스러웠던 모스크바

필자가 러시아 연방군 총참모대학에서 유학 중이던 2001년 모스크바 거리는 소련 붕괴에 따른 경제 침체의 여파와 쿠르스크호 침몰사건의 후유증으로 을씨년스러웠고 어수선했다.

바렌츠해는 북해의 주도권 다툼으로 세계 각국의 잠수함 염탐 작전이 분주했으며, 비다예보 해군작전 기지는 전략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삭막한 모습이었다. 국민을 상대로 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고 허위 사실을 발표하는 러시아 해군 당국의 태도는 어딘가에서 보았던 데자뷔(deja vu)였다.

필자는 가끔 모스크바 북쪽에 있는 세레메티예보 국제공항을 떠올린다. 지금은 우리나라 기업인 삼성이 공항 인테리어를 맡아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지만, 과거에는 우중충한 느낌의 공항 구리동관 천장이 위압감을 느끼게 했다. 또 공항에선 입국자들을 거의 두 시간씩 기다리게 만들고는 했다.

이런 행정당국의 답답함과 법과 규정을 넘나드는 관료주의의 행태를 직접 체험하며 필자는 러시아가 시장경제 체제로 완전히 바뀌려면 적어도 한 세대는 흘러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특히 쿠르스크호 해난구조 과정에 보여준 러시아 해군 고위지도자들의 행태와 정확히 오버랩됐다.



국가 위기 및 재난 관리의 중요성

쿠르스크호 폭발 침몰 사건은 푸틴 대통령이 권좌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발생했고, 푸틴의 위기관리 능력 면에서 상당한 정치적 타격을 안겨줄 수 있었던 사건으로 크게 이슈화됐지만 당시 진실이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러시아 국방부와 해군 고위지휘관들은 러시아군 통수권자인 푸틴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푸틴은 해군지휘부와 총참모부가 정확한 보고를 해주기를 기다렸고, 부하들은 대통령이 지시할 때까지 마냥 기다리기만 했다. 그사이 구조의 타이밍을 놓치고 러시아 정부가 마비되는 모습을 우리는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승무원을 구출하기 위한 시간 싸움에서 예산 부족으로 구조함 배터리가 노후화돼 구조타이밍을 놓치는 등 러시아 북해함대 해군 지휘관들이 보여준 행태는 안타까움을 더한다.

반면, 러시아 해군 구난팀은 전우와 동료를 구하고자 노력했다. 폭발 후 일정 기간 살아있었던 잠수함 승무원들의 생존을 위한 노력도 필사적이었다. 그러나 소련의 비밀 은폐주의와 맞물려 때를 놓쳤다. 어느 시점에서 잠수함 승무원이 완전히 숨졌는지는 불확실하나, 단 한 명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쿠르스크호 침몰사건의 교훈

이 책의 저자인 로버트 무어는 잠수함 승무원이 죽어가면서 남긴 기록과 현장 확인, 구조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인터뷰한 자료 등을 바탕으로 2년에 걸쳐 집필해 실체에 가깝게 묘사했다.

또한 쿠르스크호 침몰 이후 승무원과 가족들 그리고 그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던 러시아, 노르웨이, 영국의 여러 군인과 민간 잠수함 구난 전문가들의 극적인 노력도 밀도 있게 그려냈다.

쿠르스크호 사건 발생 15개월이 지나 크렘린에서 총 14명의 해군 고위간부가 처벌받았다. 정확한 상황보고의 부재, 허위보고, 언론에 의한 정보 왜곡, 정치적 위기에 대한 지도자들의 침묵은 더 큰 화를 초래할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또한 해난사고, 전쟁 등 다국적군이 참여하는 작전의 성패는 협조와 정보교환, 언어소통, 지휘체계의 확립에 있음을 알려준다.

이 사건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첫째, 러일전쟁 당시의 도거뱅크 사건 이후 해난사고는 국적을 불문하고 국제공조로 구난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전 세계 해군의 복장이 유사한 것은 이러한 동질의식에 기인한다.

둘째, 선체 외곽을 고무로 뒤덮혀 쿠르스크호의 음향탐지는 거의 불가능했다. 셋째, 모스크바의 정치꾼이 어떻게 재난을 처리하고 감추고자 했는지 밝혀준다. 넷째, 국제협력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 무엇을 이룩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다섯째, 평소에 소홀히 한 작은 부분이 큰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고 우주나 바닷속에서는 작은 결함이 대형 재난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섯째, 군 통수부나 국가 통수부가 재난 사고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가르침을 준다.

잠수함 승무원 가족들이 군 관료주의에 맞서 싸워 작지만 의미 있는 승리를 거둔 모습 등 쿠르스크호 사태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이외에도 많다. 해난사고는 위정자들에게 주는 자극이 크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자국민의 생명을 경시하는 나라는 국가의 위엄을 잃는다는 암시를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참고로 종종 언론에 보도됐던 잠수함 선체 내부에서 두드리는 듯한 소음에 대한 이야기는 구난 노력에 긴박감을 더하기 위해 북양함대가 지어낸 것으로 밝혀졌다.


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 부소장/예비역 육군준장
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 부소장/예비역 육군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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