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한국전쟁 70주년, 대중가요로 본 6.25전쟁

휴전 7년… 북녘에 두고 온 부모·형제 그립고 그리워라

입력 2020. 09. 11   16:51
업데이트 2020. 09. 1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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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1960 가거라 휴전선아 - 작사 이삼항 /작곡 이시우 /노래 김용만
남북 대치 상황이 낳은 유행가
1·4후퇴 때 월남한 가족의 아픔 담겨
시대 뒤따라간 노래로 평가되기도

유행가(流行歌)는 시대를 따라 흐르는 노래다. 세월은 흘러가지만 곡조 자체는 오롯하다. 때로는 시대가 유행가를 낳기도 하고, 더러는 유행가가 시대를 예단(豫斷)해 통속적인 막사발 같은 노래를 미리 만들어 뒤따라오는 세상에 내던지기도 한다. 이러한 노래는 탄생 시점을 현재로 하는 완료된 결정체다. 이별은 완료된 슬픔이고, 기다림은 다가올 날 그대 앞에 아롱질 비취색 옥구슬 같다.

1960년 28세 김용만의 목청을 통해 울려 퍼진 <가거라 휴전선아>는 시대를 뒤따라 간 노래다. 6·25전쟁 발발 10년 차, 휴전 7년 차에 불린 민족의 원한 맺힌 절창(絶唱)이다.

<가거라 휴전선아> 노래 속의 화자는 북녘에 부모 형제를 두고, 6·25전쟁 1·4후퇴 때 월남(越南)한 이산가족이다. 그는 민족 분단을 통한하면서 땅을 치며 통곡한다. 민족의 아픔이 혈육의 한이 되게 한 휴전선, ‘가거라 휴전선아’를 절창한다.

우리나라 한반도는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의 끝자락에서 일본의 패망에 따른 미·소의 정치적 합의에 의한 38선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분단된다. 이때 한반도에 남아 있던 일본 군인은 남한에 17만, 북한지역에 3만이었다. 1945년 8월부터 1950년 6월까지, 이 시기를 해방정국기라고 한다. 이때 남인수가 부른 시대의 통창(痛唱)이 <가거라 38선>이다. 민족의 환희와 비탄의 갈림길, 다 같은 고향을 오고 가지 못하던 시대적인 비련을 이무풍이 가사를 얽고 박시춘이 곡을 지어서 남인수가 불렀다.

이때 노랫말이 당국의 검열에 걸린다. 이무풍은 당국의 가사 개사 요구에 불응하며 잠적해 버린다. 그래서 진방남(예명 반야월, 1917~2012. 진해 출생, 본명 박창오)의 손끝에서 일부 개사 된다. 1948년 11월 20일, 자유당 정권에 의해 ‘삼팔선을 헤맨다~’를 ‘삼팔선을 탄한다~’로.

‘아 산이 막혀 못 오시나요/ 아 물이 막혀 못 오시나요/ 다 같은 고향 땅을 가고 오련만/ 남북이 가로막혀 원한 천리 길/ 꿈마다 너를 찾아 꿈마다 너를 찾아/ 삼팔선을 탄한다’ (가사 일부)

결국 이 노래는 해방정국기 위도 38도선을 기준으로 대한민국과 북한의 대치 상황이 낳은 유행가다. 당시 38선에는 검문소가 있었다. 특히 북에서 남으로 통하는 길목에서의 북한 검문소에서는 통행세가 있었단다. 이때 동반한 가족 숫자에 따라 부과되는 인세(人稅, 개인 기준으로 부과된 돈)를 지불하지 못하면, 그 가족은 이산가족이 되었다니, 다시 되새겨도 가슴이 아린다.

우리나라 한반도는 6·25전쟁 정전협정을 통해 미국과 소련의 정치적 합의선이던 38선을 군사분계선으로 두 번째로 구획 지었다.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그로부터 7년의 세월 뒤에 <가거라 휴전선아> 유행가가 휴전선 155마일(249㎞)에 울려 퍼진다. 아니 한반도 전체를 감응시킨다. 이런 유행가는 또 다른 유행가를 탄생하게 한다. 일종의 유행 패러디다.

이 노래가 <원한의 휴전선>이다. ‘눈 덮인 고지 위에 달뜨는 밤은/ 애달픈 강바람만 몰아치는구나/ 내 동포 형제끼리 총을 겨누고/ 원한의 휴전선을 지켜보건만/ 무궁화 강산 위에 꽃 필 날 오리’

그렇다. 우리 민족은 무궁화 민족이다. 세계 200여 종의 무궁화 중, 100여 종이 우리나라 종이다. 이 무궁화가 삼천리 금수강산에 하나로 피어날 날은 언제런가.

<가거라 휴전선아>를 작곡한 이시우(본명 이만두, 1913~1975)는 경남 거제 출생이다.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민족의 절창이 <눈물 젖은 두만강>이다. 거제문화원 김의부에 의하면, 1928년 그의 거제초등학교 학적부에는 ‘창가에 소질이 있음’으로 명기돼 있단다. 이시우는 두만강 여관방에서 옆방 아낙네의 울음을 듣던 날, 고향을 생각하면서 <추억>이라는 곡을 구상했다.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시절, 민족의 분기(憤氣)를 대중가요로 풀어냈던 이시우는 해방정국기의 혼란과 6·25전쟁의 광풍을 견디어 살아 낸 우리 민족의 감흥 불길에 <가거라 휴전선아>라는 휘발유를 뿌린 것이다.

<가거라 휴전선아>를 부른 김용만은 1933년 서울에서 출생해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된 후 1954년 <남원의 애수>로 데뷔하였다. 아리랑레코드에서 <사나이 맹세>와 함께 취입한 이 곡이 처음에는 관심을 받지 못했으나, 결국은 그의 인생전환점이 된다.

특히 김화영 작곡의 폴카송 <청산유수>를 시작으로 <효녀심청>, <명동 부르스>, <달뜨는 고갯길>이 히트하고, 신신레코드로 전속을 옮겨 재발매한 <남원의 애수>의 인기도 치솟았다. 1970년대로 이어지면서 <잘 있거라 부산항>, <갑돌이와 갑순이>, <못난 내 청춘> 등이 연속 히트하며 인기를 누렸으며, 이후 TV에도 종종 출연하면서 대중들과 소통했고, 특히 익살스럽고 재치 넘치는 입담과 세련된 무대 매너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시인은 언어를 만지작거리며 단어의 촉감과 무게를 저울질하고, 대중가요 작사가는 세태의 모양을 글자로 조합하며 백지 위에 기승전결로 얽는다. 유행가는 3분 안에 한 편의 인생 드라마를 얽어야 한다. 그래서 시인과 작사가는 조충전각(雕蟲篆刻)의 숙고(熟考)를 해야 한다.

시인은 대추나무 가시 끝에 벌레를 조각하고, 글자를 아로새기는 재주꾼이 되어야 하고, 작사가는 궁궐터 기슭에 남아 있는 잔비(殘碑, 깨진 비석쪼가리)를 보고서 <황성옛터> 노랫말을 얽어낼 수 있는 것이다. 흘러간 대중가요에 역사의 옷을 입히면 개인사가 민족사가 되고, 민족사가 인류사가 되며, 인류사는 인류학으로 승화된다. 백성들의 규범이 통일되면 다스리기가 쉽고, 제각각이면 어지러울 수가 있다.

하지만 문화예술은 백화제방(百花齊放)처럼 피어나야 한다. 그래서 대중가요계에는 금지곡도 블랙리스트도 접근 금지돼야 한다. 유행가에는 유행가만이 품은 시대 이념과 대중들의 감성이 배어 있다. 10년 삭힌 감식초처럼, 100년 묵은 토장(土醬)처럼.


유차영 한국콜마 여주아카데미 운영원장/ 예비역 육군대령
유차영 한국콜마 여주아카데미 운영원장/ 예비역 육군대령

필자 유차영 예비역 육군대령은 육군3사관학교 17기로 국방부 근무지원단 참모장·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 등을 거쳐 현재 한국콜마 여주아카데미 운영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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