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건축, 전쟁사를 말하다

스코틀랜드 심장 묻힌 아름다운 폐허

입력 2020. 09. 11   17:16
업데이트 2020. 09. 13   13:35
0 댓글

62, 스코틀랜드의 멜로즈 수도원


반복적인 잉글랜드군 공격받아
파괴와 재건·복구작업 지속
스코틀랜드 독립 이룬 로버트 1세
방부 처리된 심장 발견되기도 

 

멜로즈 수도원 전경.      사진=www.scotlandsgreattrails.com.
멜로즈 수도원 전경. 사진=www.scotlandsgreattrails.com.
작가 미상의 로버트 1세의 초상화.
 사진=www.liveinternet.ru
작가 미상의 로버트 1세의 초상화. 사진=www.liveinternet.ru
멜로즈 수도원에서 로버트 브루스 왕의 심장이 안치된 곳.
 사진=michaelcampbellphotos.net
멜로즈 수도원에서 로버트 브루스 왕의 심장이 안치된 곳. 사진=michaelcampbellphotos.net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남동쪽으로 약 50㎞ 떨어진 보더스 지방에 있는 멜로즈 수도원(Melrose Abbey)은 12세기에 지어진 고딕 양식의 유적지이다. 멜로즈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국경 지대였기 때문에 잉글랜드의 침략을 자주 받았다.

잉글랜드의 왕 에드워드 1세는 1300년과 1307년 멜로즈를 공격했고, 수도원은 1322년 에드워드 2세에 의해 대부분 파괴됐다. 수도원은 로버트 1세에 의해 재건됐지만 1385년 리처드 2세가 이끄는 잉글랜드군의 공격을 받아 또 불탔다.

그 후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복구됐지만 1544년 헨리 8세에 의해 다시 심하게 손상됐다. 알렉산더 2세를 비롯한 스코틀랜드 왕과 귀족들이 수도원에 묻혀 있으며,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이끈 로버트 1세의 심장이 안치돼 있다. 오늘날 수도원 유적지, 예배당, 박물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곳의 전체 건물과 대지 면적은 기록이나 문서로 정확히 나와 있지 않다.


1136년 데이비드 1세에 의해 건축

1136년 데이비드 1세(1084~1153)가 시토회(Cistercian·가톨릭 베네딕토 원시 회칙파의 주축을 이루는 개혁수도회)로 하여금 멜로즈 수도원을 짓게 했다. 수도원의 동쪽 끝이 먼저 지어졌고 1146년 6월 28일 봉헌식이 열렸다. 수도원의 다른 건물은 50년에 걸쳐 서서히 건설됐다. 데이비드 1세에 이은 왕들은 수도원이 농토와 자금 지원을 충분히 받도록 지원했다.

하지만 수도원의 번영은 오래가지 못했다. 멜로즈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국경과의 근접성 때문에 전쟁 시 최전선에 놓였다.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1239~1307)는 스코틀랜드에 전쟁을 선포한 후에 1300년과 1307년 두 차례에 걸쳐 멜로즈를 공격했다. 무너지지 않았던 수도원은 1322년 에드워드 1세의 아들인 에드워드 2세(1284~1327)가 이끌고 온 잉글랜드군에 의해 약탈당하고 무참히 파괴됐다.


배넉번 전투 승리한 로버트 1세 심장 안치

수도원은 로버트 1세(1274~1329)에 의해 1326년 재건됐다. ‘로버트 더 브루스’라고 불리는 그는 배넉번 전투(1314)에서 에드워드 2세에 승리해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이루는 계기를 마련한 왕이다. 1328년 5월 1일 로버트 1세는 에드워드 3세(1312~1377)와 노샘프턴 조약을 체결해 공식적으로 독립한 스코틀랜드의 왕으로 인정받았다. 평생의 과업을 이뤄 생의 목적을 다했는지 로버트 1세는 1년 후인 1329년 6월 7일 55살의 나이로 병사했다. 로버트 1세의 시신은 그가 복원을 도운 던펌린 수도원에 안치됐다.

왕은 죽기 전에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제임스 더글라스(1286~1330) 경에게 기독교의 성지로 자신의 심장을 가져가 살아생전 지키지 못했던 예루살렘을 지킬 수 있게 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제임스 경은 왕의 심장을 향료 처리를 한 후에 관에 넣어 예루살렘 성지로 향했다. 하지만 성지에 당도하기 전 제임스 경은 1330년 8월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무어족의 기습으로 전투를 하게 된다. 제임스 경은 전투 중 결국 전사했다. 왕의 심장은 사이먼 록하드 경과 윌리엄 케이스 경에 의해 고국으로 되돌아와 멜로즈 수도원에 안치됐다.


1385년 리처드 2세에 의해 또 다시 파괴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로부터 독립을 이뤄냈으나 전쟁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14세기 후반에 영국군은 수도원을 반복적으로 공격했다. 1385년 리처드 2세(1367~1400)는 스코틀랜드의 습격에 대한 보복으로 군대를 보내 수도원을 파괴했다. 15세기부터 16세기까지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폐허 위에 수도원이 재건됐다. 1504년 제임스 4세(1473~1513)가 방문했을 때도 복구 작업은 계속됐다.

복원된 수도원은 1544년 헨리 8세가 자신의 아들 에드워드 6세와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을 강제로 결혼시키려다 실패한 후 일으킨 ‘난폭한 청혼’ 전쟁 때 공격받아 심하게 손상됐다. 수도원은 수리되지 않으면서 점점 쇠퇴해졌다. 1560년 종교 개혁이 이뤄지면서 수도원의 역할은 더욱 줄어들었다. 1590년 수도원에 살던 마지막 수도사가 사망했다. 지역 주민들은 수도원의 자재를 가져다 건물을 지었다. 잉글랜드 내전(1642~1651) 때 수도원에서 올리버 크롬웰의 군대가 포격한 것이 마지막으로 기록된 전쟁사이다. 일부 벽에는 당시 대포 발사 흔적이 남아 있다.


1918년 국가 소유됐을 때 복원 작업 실시

1610년 수도원에 있는 교회 본당이 멜로즈를 위한 교구 교회로 개조됐으며, 1810년 멜로즈에 새로운 교회가 생길 때까지 계속 사용됐다. 이후 폐허로 남았다가 1918년 국가의 소유가 됐을 때 대규모 복원 작업이 진행됐다. 1921년 방부 처리된 심장이 들어있는 납 상자가 발견돼 로버트 1세의 심장으로 확인됐다. 다른 원통에 이중으로 담겨 매장돼 소재가 알려지지 않았다가 1996년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발견돼 1998년 6월 22일 재매장됐다. 멜로즈 수도원에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가 벌인 오랜 전쟁의 상흔이 뚜렷이 남아 있다.


필자 이상미 문화·예술 칼럼니스트는 지난 2012년 유럽 최대 한인 주간신문사인 ‘유로저널’에 칼럼 연재를 시작으로 문화와 예술 속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기고하고 있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