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김성수 평론가의 대중문화 읽기

‘비’웃다가 중독된 1일 1깡 열풍…결국 화려한 조명이 감싸는 콘텐츠의 힘 보여주긴 했는데…놀이와 악플, 어쩌면 한 끗 차이…

입력 2020. 06. 04   17:08
업데이트 2020. 06. 0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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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밈인가? 조롱인가?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 출연한 가수 비는 ‘1일 1깡’ 밈 현상을 만든 누리꾼들의 비하와 조롱을 정면 돌파하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다. 사진은 방송 화면 갈무리.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 출연한 가수 비는 ‘1일 1깡’ 밈 현상을 만든 누리꾼들의 비하와 조롱을 정면 돌파하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다. 사진은 방송 화면 갈무리.

최근 대중문화를 다루는 기사나 글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개념어 중 하나가 ‘밈(meme)’이다. 특히 인터넷의 모방 놀이를 밈으로 통칭하면서, 밈 현상에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많은 글에서도 지적한 바 있듯이 원래 ‘밈’이란 개념은 1976년 리처드 도킨스가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제시한 학술 용어에서 출발한다. 그는 마치 인간의 유전자(gene)와 같이 ‘자기복제적인 특징을 갖고, 번식해서 대를 이어가며 전해져 오는 종교나 사상 혹은 이념과 같은 정신적 사유’를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개념이 인터넷 안으로 들어오면서 인터넷 밈이란 개념으로 변화한다. 이는 ‘패러디되거나 재창조되어 다양하게 소비되고 퍼지는 문화 요소’라는 의미로 활용되는데, 2000년대 후반에는 특히 영미권 커뮤니티에서 채팅이나 UCC 활동을 할 때 쓰이는 유머와 위트가 담긴 짧은 콘텐츠를 밈이라고 일컫게 된다. 우리식의 인터넷 언어로 말하면 ‘짤’의 개념으로 사용됐다는 것이다.

사실 수전 블랙모어 등의 학자들을 통해 확장된 밈의 개념은 이런 개념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수전 블랙모어는 심지어 인간의 뇌는 밈에 의해 지배받고 있기에 인간은 일종의 ‘밈머신’이며, 자아나 정체성조차 밈을 잘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허상인 것처럼 표현했다. 그런 개념에 따르면, 특히 인터넷 공간은 거대한 밈의 시장이며, 그 안에서 최고의 밈이 문화공동체 안에서 순식간에 확산하면서 특정 시기를 넘어 살아남아 ‘문화’의 자리를 차지한다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 언론들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1일 1깡’ 현상을 이런 사고로 분석해 본다면, 상당히 심각한 장벽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의 인터넷 문화에서 특정한 ‘밈’이 강력한 확산력을 얻게 되는 거의 첫 단추가 ‘조롱’ 혹은 ‘비하’라는 정서 속에서 탄생한다는 점이다.

‘1일 1깡’의 신화는 가수 비의 2017년 앨범

의 타이틀 곡인 ‘깡’이 비의 노력이나 금전적인 투자, 개별 요소들의 질적 수준과 상관없이 시장의 철저한 외면을 받았던 사실에서 출발한다. 2017년은 BTS가 로 빌보드를 공략했던 때였고, 레드벨벳은 <루키>와 <빨간 맛>으로 신화를 만들 때였다. 제목부터 이때의 트렌드와 어울리지 않았지만, 기계음이 바탕이 된 단조로운 리듬과 과한 플렉스, 뜬금없는 고백 등이 매력적인 멜로디 라인 하나 뽑아내지 못한 채 쓸데없이 센 안무와 어울리며 그야말로 참사를 이룬 ‘깡’은 신예들의 눈부신 활약과 대조되면서 시대착오적이란 비판과 함께 쓸쓸히 활동을 접게 만든 곡이었다.

배우로도 나름의 입지를 다져왔던 비는 영화 시장에서까지 참패하는데, <자전차왕 엄복동>은 비의 복귀작이란 흥행요소를 갖고도 고작 17만 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이 참패는 ‘깡’의 참패와 함께 비를 2000년대 스타로 고착하는 결과를 낳았다.

소비자들은 이미 흘러간 스타가 되어버린 그를 잔인하게 조롱했다. 사실 ‘깡’과 관련된 유튜브의 동영상들에는 수많은 악플이 달렸고, 비의 대중문화적 가치를 모르는 10대들은 그의 시대착오적 콘텐츠를 ‘조롱’하기 위해 흉내 냈고, 서로 우스꽝스러운 요소들을 발견해 내면서 다양한 비하와 조롱의 콘테스트를 벌였다.

그 와중에 양적 축적이 가져오는 질적 변화가 감지된 것은, 그의 춤이 흉내 내면 흉내 낼수록 굉장한 기초체력과 기술 없이는 구현해낼 수 없는 안무라는 것을 알아챈 일부 누리꾼들이 이전과 다른 평가들을 올리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비가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자 쏟아부었던 땀과 열정이 조롱 속에서 확인되는 희한한 현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게다가 비의 원조 팬들은 끝까지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비난 대신 진지한 충고를 하고, 비가 진심으로 재기할 수 있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일부 악플러들은 그런 조언마저 놀림의 대상으로 소화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현상 모두가 놀이처럼 받아들여지면서 오히려 비는 대스타가 아니라 내가 ‘만들어야 하는’ 혹은 ‘재발견해야 하는’ 스타가 되었다. 악플러들이 프로슈머에게 밀려나는 기적이 만들어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대중문화계를 강타한 ‘밈’ 현상이 이 두 가지 요소가 뒤섞여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문화적 주체, 의사결정 과정의 주체로서 자신들이 가진 영향력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현대 소비자들의 욕구가 응축되는 현상이면서, 동시에 익명의 인터넷 공간에서 누군가를 조롱하면서 상대적 우월감을 획득하는 집단괴롭힘 현상이 만나게 되는 대표적 사례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MBC 예능 ‘놀면 뭐하니?’가 지난달 방송을 통해 단지 ‘조롱’과 ‘덕질’의 긴장에 그칠 수 있었던 ‘1일 1깡’을 재발견해봄 직한 콘텐츠로 확인해준 것을 주목해야 한다. 아직도 남아있는 지상파의 영향력을 확인한 사례이며, 정덕현 평론가의 말처럼 “기성 문화와 인터넷 하위문화 간 지나친 괴리감으로 세대 단절이 일어날 수도 있는 우려를 해소할 창구”로서의 역할을 앞으로 지상파 방송이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함을 확인한 사례다.

물론 이런 극적 변화를 가능케 했던 저력은 비 본인이 갖고 있었음도 기억해야만 한다. 그가 콘텐츠에 쏟아부은 노력은 비록 기획으로서는 실패했다고 해도 그가 당시에 할 수 있는 최선이었던 것이고, 조롱까지도 품을 수 있었던 연예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조롱마저 승화시킬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하지만 모든 연예인이 다 그와 같을 수는 없기에, 우리는 ‘밈’으로 이름 지어져 소비되는 이 일련의 과정이 오히려 우려스러운 것이다.

<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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