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김성수 평론가의 대중문화 읽기

책만 팔지 않고 체험을 파는, 작은 책방의 작지 않은 도전들…

입력 2020. 05. 21   16:20
업데이트 2020. 05. 21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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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동네 책방은 어디로 가는가?


EBS ‘발견의 기쁨 동네 책방’ 소설가 김훈 편 방송 화면 갈무리.
EBS ‘발견의 기쁨 동네 책방’ 소설가 김훈 편 방송 화면 갈무리.


한국서점조합연합회(이하 한서련)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지역 서점이 무려 878개나 줄어들었다고 한다. 흔히 동네 책방이라고 말하는 지역 서점은 매장의 규모가 660㎡(약 200평) 미만으로, 매장 내에서 팔고 있는 상품의 절반 이상이 책이어야 하며 서적 매출액이 총매출액의 50% 이상인 오프라인 서점일 경우다. 2019년까지 전국에서 운영 중인 지역 서점이 1968개로 집계됐다는데, 이는 집계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전국 2000개 이하로 내려간 기록이라는 것. 반면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의 확산은 지속됐다.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은 2017년 127개에서 2019년 기준 150개로 늘었다. 특히 중고서점을 내세운 알라딘은 33개에서 45개로 무려 12개나 서점을 늘렸다.


급격히 점유율을 높이던 대형서점들과 막 생겨난 온라인 서점들이 혈투를 벌이기 시작한 2000년대 초부터 지역 서점들의 숫자는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4000개에 육박하던 지역 서점들은 2009년에 처음으로 3000개 이하로 줄어서 2846개를 기록했고, 그 후 딱 10년 만에 다시 2000개 미만으로 떨어지게 됐다.

이렇게 되니 전국의 기초지방자치단체 5곳 중 1곳꼴로 지역 서점이 하나뿐이거나 아예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서점이 없는 기초단체는 뱃길이 험한 울릉도를 비롯해 인천 옹진군과 전남 신안군 등 5곳이나 되고, 서점이 딱 하나 있는 ‘서점 멸종 예정 지역’도 무려 42곳이나 됐다.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서점이 없는 기초지자체가 속출하게 될 상황이다.

지역과 밀착한 서점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지 업장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책방은 그 특성상 문화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곳이다. 대학가에서는 오랫동안 만남과 지적 탐구의 허브 역할을 해 왔고, 동네 어귀에 있는 책방은 음반과 공연 티켓도 팔면서 다양한 문화행사를 만나게 하는 창구 기능도 했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책방들은 아이들이 맨 처음 책을 만나 친해지는 공간이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독서량이 계속 떨어지는 이유는 매체환경이 변화하고 스마트폰이 발달하면서 정보습득 경로가 달라진 것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쉽게 책과 물리적 접촉을 할 만한 공간이 줄어든 데에도 있다. 책은 일단 손에 잡혀야 읽게 되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이한 광역 지자체들이 눈에 띈다. 일단 경기도는 지역 서점이 15곳이나 더 생겼다. 강원도도 지난해보다는 2곳이 늘었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기준 강원도 내에는 238개의 서점이 운영 중이다. 5년 전인 2015년 2월(245곳)에 비해서는 7곳 줄어든 수치지만, 전년 동월(236곳)에 비해서는 소폭 증가한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도 특이하다. 지역 서점은 31개에서 27개로 4곳 줄었지만, 기타서점으로 분류되는 공간이 41개에서 59개로 크게 늘었다. 기타서점은 매장에서 책 외의 상품을 판매하는 공간이 50% 이상을 차지하거나 책의 매출이 총매출의 50% 이하인 곳이다.

이 지자체들은 각기 조금씩 다른 이유로 서점의 숫자가 늘었다. 우선 경기도에선 경기콘텐츠진흥원의 프로그램으로 ‘경기 서점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은퇴 후에 서점을 창업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서점 창업 노하우를 비롯해 서점 운영에 필요한 다양한 현장 지식을 제공하는 곳이다. 경기도는 서점인증제를 도입해서 실제로는 서점을 운영하지 않으면서도 업태에 ‘서점업’만을 추가해 기관에 납품하는 권리를 가로채는 곳들도 퇴출시키고 있다. 실제로 지역에 서점을 육성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강원도 역시 도의 정책이 한몫을 차지하고 있지만, 결이 좀 다르다. 지역의 문화공간이 되는 서점을 널리 알리고 지역 문화공동체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함으로써 자연스레 지역 문화공간인 서점을 간접 지원하는 형태다. 강원도 지자체 중에는 땅은 넓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은 적고 그 거리도 멀리 떨어진 곳들이 많기에 공공도서관의 혜택을 두루 활용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이런 역할을 동네 책방이 나눠서 할 수 있는데 여기에 지원하는 것이다. 이런 역할을 하는 책방은 지역의 명소를 넘어 아예 관광명소로 부각되기도 한다.

제주도에서는 관광지라는 특성 때문에 특히 기타서점의 활약이 대단하다. 커피와 주류, 베이커리 등을 위주로 매출을 올리지만, 특화된 테마의 책들이나 굿즈, 문구 등을 파는 전문 서점 및 아트숍 역할을 하는 기타서점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들은 다양한 북카페 투어의 거점이 되면서 제주 즐기기에 한몫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독립출판사나 작은 공방의 문구들을 취급하는 곳들은 그 책방이 아니면 구할 수 없는 상품들이 많아서 마니아들에게는 제주도에 갈 때 필수 코스가 되는 곳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작은 책방들이 자신만이 줄 수 있는 특화된 콘텐츠를 개발해서 부활하는 모습은 한국의 모습만은 아니다. 이미 유럽에서는 십수 년 전부터 진행된 작은 책방의 도전들이다. 이들을 벤치마킹하면서 한국에서도 정말 다양한 아이디어가 책방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책을 읽으며 숙식할 수 있는 펜션 책방이 등장했고, 밤새 책과 관련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출근할 수 있는 올빼미형 서점도 등장했다. 맥주나 와인을 마시면서 책을 읽는 살롱이나 비어바를 겸한 서점도 생겼다. 아예 옛날 만화방처럼 일정한 입장료를 내고 책들을 맘 편하게 그 자리에서 읽어보는 곳도 등장했다. 이런 곳들은 보던 책을 사면 입장료를 돌려주기도 한다. 모두 책을 ‘팔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면서 특별한 ‘체험’을 팔고 있다. 그 중심엔 물론 책을 읽고 해석하고 공유하는 행위가 있고, 이를 통해 공동체의 변화를 꿈꾸는 이들이 있다.

동네 책방은 진화하고 있고, 이를 통해 부활하고 있다. 지자체의 정책과 만나면 그 시너지는 더 클 것이다. 집단지성은 이렇게 인류의 유산을 더 많은 인류가 공유하는 방법을 지금도 고안해 내고 있다. 그것이 일부 이기적인 동물형 인간들의 탐욕 때문에 세상이 멸망하지 않게 하는 일종의 보안장치는 아닐는지. <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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