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6.25 70주년, 해외참전용사 희망드림 코리아

[6.25전쟁 70주년] "아픈 사람 돌보는 의사가 꿈… 예쁜 옷보다 학교가 더 좋아요"

김용호

입력 2020. 04. 01   16:05
업데이트 2020. 04. 0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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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3세 베쟈

 
6·25전쟁 강뉴부대 1진 맹활약
귀국 후 한국전쟁 참전용사촌 정착
전쟁후유증 시달리신 할아버지
돌아가신 후 가족들 뿔뿔이 흩어져
“학교 가는 것만으로도 행복”

 

에티오피아의 한국전쟁 참전용사촌 굴렐레 마을에 사는 베쟈가 빨래가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집 앞 공동수도에서 물을 긷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에티오피아의 한국전쟁 참전용사촌 굴렐레 마을에 사는 베쟈가 빨래가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집 앞 공동수도에서 물을 긷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나는 내 일생을 인류에 봉사하는 데 바칠 것을 엄숙히 맹세한다’라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실천하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세상의 아픈 사람을 말끔히 치유하는 좋은 의사가 될 거예요. 제가 태어나기 전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는 돈이 없어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했다고 해요. 6·25전쟁에 파병 다녀온 후 반세기 넘게 전쟁 트라우마로 극심한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를 앓다가 하늘나라로 가셨어요. 다시는 우리 외할아버지처럼 평생 고통받다 생명을 잃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외곽 굴렐레 마을에 사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3세 베쟈(9)의 꿈은 사랑의 인술을 펼치는 의사가 되는 것.

‘굴렐레 슈바이처’가 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히는 아홉살배기 소녀 베쟈의 외할아버지는 강뉴(Kangew)부대 1진(1951.5.6~1952.3.28)으로 중동부전선에서 맹활약한 참전용사다. 강원도 화천·철원 일대의 700고지와 602고지, 낙타고지 등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치열한 전투를 펼쳤다. 이들이 고지와 능선에서 흘린 피와 땀으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가 지켜졌다.

외할아버지가 파병 임무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 명예가 아닌 지독한 가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당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하사한 한국전쟁 참전용사촌에 정착했고, 이 때문에 베쟈는 지금까지 외할머니와 함께 이곳에서 살고 있다. 가족과 생이별한 베쟈에게 외할머니는 엄마 같은 존재다. 지방으로 돈 벌러 떠난 엄마는 1년에 한두 번 집에 들르기 때문이다.

성격이 활달한 베쟈는 아빠에 대한 추억이 없다. 베쟈가 태어나자마자 ‘아이 기르는 게 힘들다’는 이유로 가출했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빠는 정식 부부가 아니다.

에티오피아에서 결혼식을 치르고 정식 부부가 되는 것은 상위 계층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대부분 결혼식은 생략하고 살림만 차리고 산다. 이렇게 관계가 느슨하다 보니 베쟈의 아빠처럼 무책임하게 집을 나가는 경우가 많다. 에티오피아에 미혼모·미혼부가 많은 것도 이런 관습 때문이다.

에티오피아는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아프리카 북부에서 부국이었으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퇴위한 이후 경제가 곤두박질쳤다. 3000달러를 웃돌던 1인당 국민소득(GNP)이 1000달러 미만으로 떨어졌고, 기록적 가뭄과 내전까지 겹쳐 전 국토가 초토화됐다. 가난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전염병처럼 온 나라를 휩쓸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와 가족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호기심이 많아 역사책 읽기를 좋아하는 베쟈는 외할머니로부터 10년 전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고 자랐다. 외할아버지가 황제근위대에 근무하다 한국전쟁에 참전해 수많은 전과를 올렸고, 이로 인해 외할아버지 생전에는 매월 참전 수당을 받아 생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경제적 지원이 끊겨 단란했던 가정이 한순간에 풍비박산이 났다. 가족들의 생활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가난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자란 베쟈의 집은 굴렐레 참전용사회관 근처 판자촌에 자리 잡고 있다. 함석집처럼 생긴 공용 부엌 안쪽으로 들어가면 고시원같이 다닥다닥 붙은 8개의 방이 나오는데, 베쟈와 외할머니는 가장 안쪽의 좁고 퀴퀴한 방에 세 들어 산다. 낮에도 어두컴컴한 방은 베쟈와 외할머니 두 사람만 앉아도 콩나물시루가 된다. 안 그래도 좁은 방을 안방과 거실로 쪼개 놓았기 때문이다. 외할머니는 그래도 “몸 누일 곳이 있어 다행”이라며 미소를 짓는다.

의사가 꿈인 한국전쟁 참전용사 3세 베쟈(오른쪽)가 거동이 불편한 외할머니와 거실에서 촬영한 사진.  월드비전 제공
의사가 꿈인 한국전쟁 참전용사 3세 베쟈(오른쪽)가 거동이 불편한 외할머니와 거실에서 촬영한 사진. 월드비전 제공


“우리 집 생계는 엄마가 책임지고 있어요. 멀리 지방에서 경제 활동을 하고 있는 엄마의 수입이 모자라 몸이 불편한 외할머니도 힘을 보태야 해요. 외할머니는 동네잔치나 초상집에서 일을 도와주고 조금씩 사례를 받는데 엄마가 보내오는 돈과 외할머니의 수고비를 합쳐도 한 달 방값(4만 원)에 턱없이 모자라요. 한 달이라도 방세가 밀리면 어김없이 독촉에 시달려요.”

가장 없는 가정에서 자란 베쟈는 이런 것쯤 아랑곳하지 않는다. 더 많이 웃고, 더 큰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절대 기죽는 법이 없다. 공부도 제법 잘하는 그에게 바람이 있다면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한 학교생활을 하고 싶다는 것.

“할아버지 대부터 이어진 지독한 가난으로 수업에 필요한 준비물을 못 챙기고 너덜너덜 해어진 가방을 메야 하지만 학교에 가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요. 예쁜 옷보다 학교 결석 안 하는 날이 더 기다려져요. 학교에 가야 장래 꿈인 의과대학에 들어가 인술을 펼치는 의사가 될 수 있으니까요. 외할아버지처럼 돈이 없어 치료 시기를 놓치고 안타깝게 돌아가시는 분들이 세상에 없었으면 좋겠어요.” 김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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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기자 < yhkim@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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