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6.25 70주년, 긴장과 평화의 경계를 걷다

그들의 자부심·전우애 있기에… 최전방 겨울은 춥지 않다

김상윤

입력 2020. 01. 29   17:12
업데이트 2020. 01. 30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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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5사단 표범연대 통일대대


3교대 24시간 흔들림 없이…
‘중부전선 최전방 방어’ GOP 경계전담 부대
우수한 용사 중 지원자 면접 통과해야 선발
전역 차륜차량 맹활약…우수한 기동력 뽐내

 
“몸이 춥지, 마음까지 추운 건 아냐”
중대장-장병 교감 노력 “상호 신뢰 중요”
낮·밤 없이 임무 바쁘지만 체력단련 만전
야간근무 전 군장검사 “임무 완벽 숙지”


GOP경계병이 백마고지 일대를 바라보며 주간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사진=조용학 기자
GOP경계병이 백마고지 일대를 바라보며 주간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사진=조용학 기자
          

세밑 한파가 기승을 부릴 무렵, 얼어붙은 한탄강 줄기를 따라 북쪽으로 차를 달렸다. ‘긴장과 평화의 경계를 걷다’ 특별기획의 첫 목적지는 육군5사단 표범연대 통일대대가 지키는 중부전선 최전방 철책이었다. 


6·25전쟁 최고의 격전지로 불리는 백마고지와 지난해 역사적인 첫 비무장지대(DMZ) 유해발굴이 이뤄졌던 화살머리고지가 있는 곳이다. 군사적 긴장과 대립의 역사, 평화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 공존하는 최전방의 오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역설의 경계선이다.  글=김상윤/사진=조용학 기자


강원 철원군 일대 육군5사단 통일대대 GOP경계 장병들이 산악용 바이크를 활용해 보급로로 기동하고 있다. 사진=조용학 기자
강원 철원군 일대 육군5사단 통일대대 GOP경계 장병들이 산악용 바이크를 활용해 보급로로 기동하고 있다. 사진=조용학 기자
 


중부전선의 심장부, 겨울 철새의 안식처로

철원은 6·25전쟁 당시 중부전선의 심장부이자 전략적 요충지로서 ‘철의 삼각지대’라 불렸다. 전쟁 전 기간에 걸쳐 피아간(彼我間)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진 곳이다. 달리는 차 창 밖으로 강원도 최대의 곡창지대인 철원평야가 시원하게 펼쳐졌다. 험준한 산세로 빼곡한 여느 최전방 지역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민통선을 넘어 일반전초(GOP)로 향하는 길 좌우에도 농지가 계속 이어졌다. 농어촌 공사가 운영하는 양수장도 보였다. 농번기가 되면 벼, 인삼 농사 등 활발한 영농활동이 이뤄져 부대에서도 각종 민간 상황 조치 등으로 매우 바빠진다고 한다.

민통선 안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겨울 철새. 그 귀하다는 두루미가 농지 곳곳에 앉아 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철원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철새 도래지다. 두루미·재두루미·기러기 등 철새들이 시베리아로부터 내려와 이곳에서 겨울을 난다.


 『인간 없는 세상』의 저자 앨런 와이즈먼은 ‘DMZ는 인간이 없는 세월이 빚어낸 기적’이라 말했다. 전쟁의 결과물로 탄생한 DMZ 일대가 멸종위기 동물들의 소중한 안식처가 된 것은 그의 말대로 기적과 같은 일이다.


GOP경계병이 백마고지 일대 고가초소에서 야간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사진=조용학 기자
GOP경계병이 백마고지 일대 고가초소에서 야간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사진=조용학 기자


최전방의 흔들림 없는 눈동자

표범연대 공보정훈과장 김주훈 대위의 안내로 GOP 출입절차를 거쳐 최전방 철책에 도달했다. 철책 너머에 백마고지가 모습을 드러낸 지점에서 걸음을 멈춰 고가초소에 올랐다. 경계병 2명이 전·후방을 철저히 감시하고 있었다. 김 대위는 “과학화 경계시스템 도입 이후 모든 초소에 병력이 배치되는 이른바 ‘밀어내기식’ 근무는 사라졌지만, 이곳에는 상시 경계 근무자가 투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전술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초소라는 의미다.

철책 너머로 백마고지를 휘감아 흐르는 역곡천과 그 위를 지나는 백마교가 보였다. 주·야간 기온 차이가 심한 날에는 이 일대에 짙은 안개가 깔린다고 한다. “시야 확보가 어려워질 때가 많아 특히 유의 깊게 감시해야 합니다.” 방한 마스크 사이로 살짝 노출된 피부가 추위로 빨갛게 달아오른 경계병 정지훈 일병이 설명했다. 기자의 질문에 잠시 대답할 때도 정 일병의 시선은 흔들림 없이 오로지 감시 지역을 향했다. 


통일대대는 GOP 경계전담 부대다. 방어하는 철책선은 약 ○○㎞에 이른다. 예하 중대가 철책 전 구간을 나눠 책임진다. 경계·예비소초가 일정 간격으로 순환해가며 임무를 수행하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몇 개 대대가 돌아가며 GOP에 전개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면, 최근에는 이러한 경계전담 부대 운용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육군에 따르면 올해 안에 155마일 철책 전역에 GOP 경계전담 부대가 운용될 예정이다.


GOP경계 장병들이 야간 철책점검에 앞서 군장검사를 하고 있다.사진=조용학 기자
GOP경계 장병들이 야간 철책점검에 앞서 군장검사를 하고 있다.사진=조용학 기자


산악용 오토바이크로 거침없이

GOP부대의 병영생활을 살펴보고자 불사조중대로 향하던 길, 산악용 오토바이크가 순찰 임무를 수행하는 이색적인 모습을 목격했다. 야전에서, 그것도 최전방에서 산악용 오토바이크가 실제로 운용 중인 현장을 눈으로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폭이 1m를 조금 넘는 산악용 4륜 오토바이크는 최전방에 최적화된 기동장비였다. 좁고 험한 보급로를 날쌔게 내달리며 구불구불한 경사길도 거침없이 극복하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대대에는 총 8대가 보급됐고, 불사조중대에 4대, 나머지 2개 중대에 각각 2대가 배정된 최신 장비다.

임채훈(대위) 불사조중대장은 “산악용 오토바이크는 상황 발생 시 해당 원점에 더욱 빨리 출동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며 “특히 작전지역의 종심이 넓고 평지가 많은 우리 중대에는 너무도 고마운 장비”라고 말했다.

산악용 오토바이크의 정식 명칭은 ‘전역 차륜 차량’이다. 육군은 2022년까지 전방 11개 사단의 수색대대 및 GOP 소총중대와 후방 5개 탄약창에 전역 차륜 차량 365대를 보급할 계획이다. 보급 대상 부대는 위급 상황 발생 시 소형 오토바이크 특유의 우수한 기동력과 험지 극복 능력이 꼭 필요한 부대들이다.

GOP와 수면 부족

불사조중대 상황실. 경계작전을 수행 중인 영상감시병들에게 무엇이 가장 힘든지 물었다. 대부분이 ‘부족한 잠’이라고 답했다. GOP에서는 주·야간 경계근무가 영상감시병, 경계병으로 나뉘어 각각 3교대로 24시간 쉴 틈 없이 진행된다. 누군가 잠들면 누군가는 반드시 일어나는 구조다. 경계병을 예로 들면, 야외 경계근무를 서고, 잠시 눈을 붙인 뒤 다시 근무에 투입되는 일을 3번 반복하는 것이 일과다. 이렇게 수면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근무 시간에는 졸음과의 사투가 벌어진다. 화장실로 뛰어가 찬물 세수를 하고 다시 달려오거나, 자리에서 잠시 일어나 선 채로 영상감시 임무를 수행하는 장병들도 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이곳은 GOP다. 장병들은 언제 경보가 울릴지 모른다는 긴장감 속에 살아간다. 만약 경보가 울리면 부대 전 인원이 최단 시간 내 상황실과 야외 경계초소에 배치된다. 이렇게 갖춰진 밀도 높은 경계태세는 상급부대에서 경보 해제가 선포되는 순간까지 철저히 유지된다.

임 중대장은 “GOP부대에는 아무나 올 수 없고, 우수한 용사들 중 자원자에 한해 면접을 통과해야 한다”며 “최전방을 수호한다는 장병들의 자부심과, 서로 믿고 등을 맡길 수 있는 강한 전우애가 GOP를 지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일선 지휘관의 공간

임 중대장의 사무실을 둘러봤다. 군인 하나에 기자 둘, 단 세 사람이 들어온 것만으로 방이 꽉 찼다. 사무용 책상, 커피포트가 놓인 탁자, 허름한 침대가 이 작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여기가 제 사무실이고, 병영생활상담실이며 또한 숙소입니다.” 임 중대장이 말했다.

GOP 부대에서 중대장의 역할은 막중하다. 최일선 경계작전을 책임지는 동시에 어려운 여건에서 생활하는 부대원들을 독려해야 한다. 임 중대장은 따뜻한 리더다. ‘전투·현장·사람 중심의 지휘’라는 사단장 지휘 의도를 가슴에 새기고 장병들과의 교감을 중요시한다. 현행작전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GOP 부대 특유의 삭막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임무완수를 위해선 부대원들의 상호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런 임 중대장이 평소 자주하는 말이 있다. “우리가 몸이 좀 춥지, 마음까지 추운 건 아니야!” 


보급로를 달리는 장병들

오후 3시. GOP 부대의 체력단련이 시작됐다. 복도에 붙어 있는 요일별 체력단련 종목 표를 보니, 지난해 육군이 도입한 전투체력단련이 적용되고 있었다. 이날의 종목은 전투 뜀걸음. 철책을 배경으로 보급로 위를 힘차게 달리는 장병들의 모습은 쉽게 볼 수 없는 진귀한 광경 중 하나였다.

체력단련에는 경계근무 투입 인원 등을 제외한 전 장병이 참여하는 것이 원칙이다. GOP 부대의 임무가 워낙 바쁜 탓에 체력단련 참여율이 낮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평소 운동할 기회가 많지 않은 환경이기에 오히려 건강을 유지하는 차원에서라도 체력단련에 많은 인원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 “경계근무 시간이 겹쳐 체력단련에 불참하게 되면 근무를 마치고 혼자서 팔굽혀펴기라도 꼭 합니다.” 특급전사 마크를 달고 있는 한 용사가 말했다.


GOP 경계 임무를 성실히 수행한 장병들이 전역을 하루 앞두고 본부에서 군 경력 증명서를 받고 돌아오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조용학 기자
GOP 경계 임무를 성실히 수행한 장병들이 전역을 하루 앞두고 본부에서 군 경력 증명서를 받고 돌아오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조용학 기자


철책과의 이별 전날

저녁 7시쯤, 철책 육안 확인 및 야외 경계근무 투입 장병들의 군장 검사가 진행됐다. 탄약 수불에 앞서 간부가 임무브리핑을 하며 특정 상황을 부여했다. 한 용사가 손을 들더니 3분에 걸쳐 마치 그림을 그리듯 상세히 대응 절차를 설명했다. 임무 수행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 완전히 박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임 중대장은 “저렇게 완벽히 숙지하고 있어야만 실제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는다”며 “상병 이상은 대부분 저 정도 수준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삽탄을 마친 장병들이 길을 나서자, 어둠 속에서 군용 차량 한 대가 달려와 중대 앞에 도착했다. 차량에서 군 경력 증명서를 손에 든 병장들이 우르르 내렸다. 내일 아침 대망의 전역을 앞둔 장병들이 전역 신고를 마치고 마지막 밤을 보내기 위해 자대로 돌아온 것. 2년여 동안 국민의 낮과 밤을 지켜준 청년들이 너무도 대견해서 기념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런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자 장병들의 표정이 영 어색했다. 전역의 기쁨과 떠남의 아쉬움이 뒤섞여 있었다. “내일 아침 눈 떠 보면 다시 GOP 전입 첫날로 돌아갈 거야” 실없는 농담을 던졌다. “악! 그것만은 제발!” 그제야 장병들이 환하게 웃었고, 그 순간 ‘찰칵!’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김상윤 기자 < ksy0609@dema.mil.kr >
조용학 기자 < catch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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