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속 현대 군사명저를 찾아

불가피한 제한전, 지혜로운 방식 전략적 고민 담아

입력 2019. 12. 22   15:09
업데이트 2019. 12. 22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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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끝> 도널드 스토커의 『미국은 왜 전쟁에서 패배하는가? 한국전쟁에서 현재까지 제한전과 미국의 전략』 (Donald Stoker. 2019. Why America Loses Wa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과 탈레반의 협상이 진행되면서 미군 철수는 더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8000명 일부는 남는다고 하지만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을 떠난다는 것은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상 미군의 패배다. 왜 미군은 패배의 늪에서 빼져 나오지 못하는가. 이유를 알기 위해 도널드 스토커의 저서 『미국은 왜 전쟁에서 패배하는가? 한국전쟁에서 현재까지 제한전과 미국의 전략』을 참고해볼 만하다. 

 
미국의 전쟁 수행방식과 한계

저자인 도널드 스토커는 미국 해군대학에서 전략과 안보를 담당하는 교수다. 우리나라에서는 공무원 신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의 논지는 냉혹하리만치 신랄하다. 지난 8월 이 책이 출판됐을 때 워싱턴의 정가는 다시 한번 베트남의 악몽을 떠올렸다. 2001년부터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국이 내린 결론은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미군을 믿고 탈레반과 싸워온 아프간 정부에 맡기고 떠나는 것이다. 과거 베트남에서 미국이 그렇게 떠났듯 말이다.

저자는 이러한 미국의 전쟁 수행방식은 이미 한국전쟁에서부터 드러났다고 지적한다. 이 책의 부제를 ‘한국전쟁에서 현재까지’라 붙인 이유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은 쉼 없이 전쟁을 치렀다. 그러나 제대로 이긴 전쟁은 1991년의 걸프전에 불과하다.

걸프전의 경우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군을 몰아낸다는 분명한 정치적 목표가 있었다. 그리고 100시간 만에 그 목표를 달성했을 때 정전이 선언됐다. 그러나 그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나 2003년 시작된 이라크 전쟁 모두 전쟁을 시작했을 때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 테러리즘의 뿌리를 걷어내고 민주주의를 건설한다는 거창한 목표를 주창했지만, 사실상 실패했다. 미군을 포함한 연합군 전사자만 2700명에 달한다. 1조 달러나 되는 돈을 퍼부었지만 상처를 남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북쪽에 있는 바그람 공군기지를 방문해 미국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북쪽에 있는 바그람 공군기지를 방문해 미국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한전에 대한 잘못된 인식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이게 처음도 아니다. 저자의 설명대로 베트남 전쟁의 재현이다. 이미 한국전쟁에서 그 기원을 보였다. 저자는 미국 정치지도자들이 전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몰랐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들은 늘 제한전(limited wars)을 통해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려 했지만 제한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쟁 일반과 제한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어떻게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 그리고 이라크에서 엄청난 실패를 가져왔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미국의 정치지도자들은 미국의 권능을 보여주기 위해 전쟁에 뛰어드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것이 공산주의자건 테러리스트건 미국이 응징해야 할 적들을 묵과하지 않았다. 문제는 군사적 승리든 정치적 승리든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요구되는 규모의 군사를 파견하는 데 늘 망설였다는 점이다. 사실상 국내 정치적 상황에서 대규모 군대를 파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았다.

미국 정치지도자가 처한 의지와 능력의 불일치가 가져온 전쟁방식은 제한전이었다. 적에게 압력을 가중시켜 가면서 미국이 의도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제한전을 통해 뭔가 이루겠다는 생각은 전쟁을 수행해 승리로 이끌고 그 이후 평화를 확보하는 데 있어 미국의 능력을 심각하게 악화시킬 따름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끝도 없는 전쟁


문제는 미국의 지도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승리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 없이 너무 쉽게 전쟁에 뛰어든다는 것이다. 그 결과 미국은 ‘끝도 없는 전쟁(forever wars)’에 휘말려 들고 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미국의 정치지도자와 군 지휘부는 전쟁 수행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것은 바로 전쟁을 수행하는 ‘목표’다. 즉 ‘전략적 사고(strategic thinking)’가 빈곤하다는 것이다. 전략적 사유 없이 어떤 수단을 사용할지, 전술적 승리를 어떻게 거둘지, 그리고 적에게 우리의 의도를 어떻게 보낼지를 두고 끝없는 토론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클라우제비츠 전공자답게 전쟁의 목표를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은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따라서 정치적 목표가 분명하고 실현 가능해야(clear and feasible) 승리를 기대할 수 있다. 전쟁을 왜 수행하는지가 분명하지 않은 상황이나 너무 많은 목표를 추구하는 경우, 주어진 수단으로는 실현 가능성이 없을 때는 아무리 초강대국이라 해도 전쟁에서 승리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적 목표가 불확실하다면 어떤 일관된 전략도 수립할 수 없다. 목표가 명료하게 정의되지 않는다면 어떤 군대든 그 목표를 달성할 것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왜 자꾸 패배하는가?


물론 저자도 지적했지만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이 전혀 무용한 것은 아니다. 결과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미군은 새로운 전쟁 양상을 다시금 경험하게 되었고 이러한 전쟁에 대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그런 점에서 중동에서의 고통스러운 경험이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전술적인 것이다. 즉 어떻게 싸우느냐의 문제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목표를 올바르게 수립할 수 있는 ‘전략적 사고’다. 결국 주어진 정치적 여건에서 실현 가능하지 않은 목표를 추구하는 것은 군사적 재앙을 가져올 뿐이라는 저자의 냉철한 비판이다.

이런 주장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란 울만(Harlan Ulman)의 저서에서도 『패배의 해부: 미국은 왜 자신이 시작한 모든 전쟁에서 패배하는가?(Anatomy of Failure: Why America Loses Every War It Starts. 2017』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제기됐다. 정치지도자나 관료들이 건전한 전략적 사유를 하지 못해 왔고, 파병을 결정하기 전에 현지 상황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나 이해가 없었기 때문에 늘 패배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한 지혜


이 책은 한 단계 더 들어가 제한전에 대한 정치적 사고를 제기한다. 정치적 맥락에서 전면전을 하기 어렵다면, 제한전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제한전의 방식으로 정치적 군사적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4세대 전쟁이나 하이브리드 전쟁에 대한 고민이 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 점에서 제한전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전략적 고민을 더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미군들이 늘 하는 표현이 있다. ‘Fight Tonight!’. 그러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잘 싸우는 것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전략적’ 사유는 단순히 대전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방식이 전략적 지혜인 것이다. 군인이 지혜로워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영진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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