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전쟁과 미디어

모바일 혁명, 독재를 무너뜨리다

입력 2019. 12. 03   17:12
업데이트 2019. 12. 03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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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소셜 미디어, 평화와 전쟁 사이에서 (上)


튀니지 노점상 청년 단속 항의해 분신
반정부 시위 인접국으로까지 확산
소셜 미디어 통해 ‘아랍의 봄’ 조성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퇴진 종신형
철권통치 리비아 카다피 시민군에 피살
자유민주주의 확산 크게 기여한 만큼
소셜 미디어 통제·악용 시도도 나타나
 

  

소셜 미디어의 힘을 잘 보여준 ‘아랍의 봄’이 미완의 봉기로 끝났지만 그 불씨가 사그라들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 10월 29일(현지시간) 레바논 남부 시돈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이던 시위대가 사드 하리리 총리의 사임 발표에 환호하는 모습. 레바논 시위는 정부가 스마트폰 메신저 앱에 하루 약 230원의 세금을 부과한다는 발표에 항의하면서 시작됐다.  연합뉴스
소셜 미디어의 힘을 잘 보여준 ‘아랍의 봄’이 미완의 봉기로 끝났지만 그 불씨가 사그라들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 10월 29일(현지시간) 레바논 남부 시돈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이던 시위대가 사드 하리리 총리의 사임 발표에 환호하는 모습. 레바논 시위는 정부가 스마트폰 메신저 앱에 하루 약 230원의 세금을 부과한다는 발표에 항의하면서 시작됐다. 연합뉴스


커뮤니케이션은 연결과 소통이다. 시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은 공동체라는 이상적 이미지로 채색된다. 사람들이 연결되면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마음을 나누면 갈등과 전쟁보다는 화해와 평화가 찾아온다는 기대 때문이다.


오랫동안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공동체와 평화의 꿈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인식돼 왔다. 19세기 말 모르스는 자신이 발명한 무선전신을 “이 시대의 피스메이커”라고 칭했다. 대서양을 가로질러 미국과 영국 사이에 유선 전신망이 구축되자, 제임스 뷰캐넌 대통령은 “여러 나라 사이에 영구적인 평화와 친선”을 맺는 데 유선전신이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라디오를 발명한 마르코니는 라디오가 “국가들 사이의 평화와 문명의 전도사”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1922년 라디오 방송국으로 시작한 BBC는 “국가는 국가에게 평화를 말할 것이다”를 지금까지 모토로 삼고 있다. 1960년대를 풍미한 미디어 비평가 마셜 매클루언은 텔레비전과 같은 미디어 기술이 발전하면서 흩어진 나라들이 하나의 공동체, 즉 ‘지구촌’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 빌 게이츠는 “인터넷은 미래 지구촌을 위한 광장이 되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오늘날 모바일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소셜 미디어는 그런 꿈을 달성하는 거의 완벽한 기술적 토대를 마련했다. 과거에는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만 기술적 수단을 활용해 많은 사람에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었지만, 21세기 디지털 기술은 모든 사람이 미디어가 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스마트폰은 단순히 콘텐츠나 정보를 언제 어디서나 쉽게 소비하는 도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스마트폰은 언제 어디서나 문자, 사진, 동영상을 제작해 다른 사람들과 손쉽게 공유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왓츠앱과 같은 소셜 미디어의 핵심적 기능은 네트워크와 퍼블리싱이다. 소셜 플랫폼에서는 누구나 콘텐츠 생산자로서 참여할 수 있고, 많은 사람과 연결될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국경을 넘어 콘텐츠를 자유롭게 출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게다가 소셜 미디어는 전통적인 언론사를 거치지 않고 가공되지 않은 정보가 유통될 수 있게 해준다. 스마트폰을 가진 모든 사람은 사건 현장에서 기자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때로는 언론사 소속 기자보다 더 빠르고 생생하게 현장을 보여줄 수 있다.

‘아랍의 봄’은 소셜 미디어의 힘을 잘 보여준다. 2009년 이란 대통령 선거는 부정선거라는 의심을 받고 있었다. 이란 정부는 언론보도를 검열했고, 대부분 신문은 1면을 백지 상태로 내보냈다. 그러나 부정선거 관련 정보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퍼져나갔고, 이란의 청년들은 부정선거에 항의하기 위해 거리에서 결집했다. 이들은 스마트폰으로 시위 장면을 촬영해 공유했고, 당시 트위터 링크 중 98%는 이란 선거에 대한 것이었다. 정부가 언론 통제에는 성공했지만, 부정선거 문제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글로벌 이슈가 되는 것은 막지 못했다.

2010년 튀니지에서 채소 노점상으로 8명 가족의 생계를 꾸리던 청년 부아지지는 경찰 단속에 항의해 분신했다. 그의 분신 소식은 튀니지에서 반정부 시위로 이어졌고 반정부 시위는 리비아, 이집트, 예멘, 시리아, 바레인 등 인접 국가로 번졌다.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튀니지 사건에 대한 뉴스를 통제했지만, 이번에도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가 소식을 전파하는 데 사용됐다. 특히, 중동지역 구글 마케팅 책임자였던 아엘 고님은 페이스북을 통해 카이로 시위를 조직했고, 8만5000명의 페이스북 사용자가 이에 동조했다. 그리고 나중에 여론조사에서 ‘페이스북 세대’ 10중 9명이 페이스북으로 조직된 시위에 참가하거나 관련 소식을 접했다고 응답했다. 리비아에서는 시위가 번지자 카다피가 내전으로 확전될 수 있음을 경고했는데, 그의 경고는 현실이 됐다. 리비아 시민군은 나토의 지원을 받아 트리폴리를 점령하고 정부군과 전투를 벌였다. 시리아에서도 정부군과 자유시리아군 사이의 내전이 시작됐고 시리아 내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조성된 ‘아랍의 봄’의 여파는 실로 막대했다. 벤 알리 튀니지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다.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도 권좌에서 물러났고, 이윽고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40년 넘게 리비아를 통치했던 카다피는 시민군에 의해 피살됐다. 인접 아랍 국가들에서는 의회의 입법권 보장, 여성 참정권 허용, 정치범 석방, 임금 인상 등 일련의 개혁적 조치가 이뤄졌다. 그리고 권위주의를 물리치고 인권과 민주주의를 증진한 데 기여한 공로로 이란에서 부정선거 소식을 전하는 데 사용됐던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시위를 주도했던 아엘 고님은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다.

2007년 스마트폰의 등장과 더불어 시작된 모바일 혁명은 소셜 미디어의 성장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페이스북의 매출액은 스마트폰의 보급률에 따라 늘어났다). 소셜 미디어의 원초적 양식은 스마트폰 등장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모바일 혁명으로 인해 폭발적인 성장세를 누리게 됐다. 그리고 ‘아랍의 봄’에서 소셜 미디어는 자유민주주의의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그런데 ‘아랍의 봄’ 이후 소셜 미디어가 체제나 정부의 전복에 이용될 수 있음을 지켜본 여러 나라에서는 소셜 미디어를 통제하거나 소셜 미디어를 이용해 전쟁을 벌이려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 김선호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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