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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도 ‘표현의 자유’ 대상인가?

입력 2019. 11. 19   17:02
업데이트 2019. 11. 19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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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전쟁과 표현의 자유(下)


美 나치주의자 집회·군경력위조금지법 위헌 판결 등 판례
헌법으로 보장되는 ‘표현의 자유’…올바른가에 논란 일어
소셜미디어로 표현의 기회 확대된 오늘날 특히 시사점 많아
증오표현·허위정보 등 온라인 문화에 대해 성찰·고민 필요 

 


브란덴부르그 판결 이후로 미국 연방대법원은 현실적 해악이 없으면 바람직하지 않은 표현이라도 자유가 보장된다는 판결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헌법적으로 보장되는 권리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표현의 자유 보장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에 대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아래 소개하는 두 가지 판례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사례1: 국가사회당 주최 집회 판결

첫 번째 사례는 미국 나치주의자들의 모임인 국가사회당 주최 집회에 대한 판결이다. 1975년 미국 국가사회당은 그들의 당사가 있던 시카고의 마퀘트 공원에서 정치 집회를 개최하겠다고 예고했다. 그러나 시카고시 정부는 마퀘트 공원에서는 정치적 성격의 집회를 허용할 수 없으며, 비정치적인 집회라도 35만 달러의 안전보험에 가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시카고 시내에서 집회 개최가 좌절되자 이듬해 국가사회당은 시카고 교외 지역에서 백인 우월주의를 선전하는 집회를 개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시카고 인근 마을인 스코키(Skokie) 당국은 집회 불허 명령을 내렸다. 스코키에는 많은 유대인이 살고 있었고, 전체 거주자의 20%가량은 제2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생존자였기 때문에 스코키 당국은 나치주의자들의 집회를 금지했던 것이다. 한편, 스코키 당국은 향후에도 ①군복을 착용한 집회는 불허하며 ②‘인종, 출신 국적, 종교를 이유로 사람을 공격하는’ 증오 표현을 배포하는 것을 금지하고 ③집회 개최를 위해 35만 달러 안전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조례를 제정했다.

국가사회당은 백인들의 표현의 자유가 억압됐다고 즉각 반발했다. 여기에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이 합세했다. 미국시민자유연맹은 나치 군복과 스와스티카(나치 문양 휘장) 착용을 이유로 집회를 금지한 집회 불허 명령과 조례는 수정헌법 1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일리노이 법원에 집회 불허 명령과 시행령에 대해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그러나 일리노이 법원에서 가처분신청이 거부당하자, 연맹은 미국연방대법원에 가처분신청 거부에 대한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연방대법원은 표현의 자유 제한은 “심리를 거쳐야 하고 엄격한 절차에 따라 진행되어야 한다…그런 심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가처분신청을 허용해야 한다”고 판결하고, 일리노이 법원으로 소송을 파기 환송했다.

사건 심리를 마친 일리노이 법원은 “스와스티카는 상징에 불과하며, 수정헌법 1조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표현의 자유 범주에 속한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전쟁의 피해자인 유대인들에게 전쟁 범죄의 상징인 나치 휘장을 보여주는 것이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에게 물리적 공격과 동일한 수준의 공격이라는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이 판결에 따라 국가사회당은 집회를 개최할 기회를 얻었지만, 격렬한 사회적 논란을 의식해 결국 행사를 취소하기에 이른다.


사례2: 이득 목적으로 군경력 위조만 처벌

두 번째 사례는 군경력위조금지법(Stolen Valor Act)에 대한 판결이다. 2005년 미국 의회는 훈장을 비롯해 참전 공훈을 상징하는 물건들을 불법적으로 제조해 판매하거나 부착하는 것을 처벌하는 법을 통과시켰고, 부시 대통령도 이 법을 제청했다. 특전사나 네이비실 출신이라고 속이거나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고 속여 부당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콜로라도 퇴역군인협회장은 이라크 전쟁에 참전해 은성무공훈장을 받았다는 거짓말을 동원해 기부금을 모금한 적도 있었다.

2007년 캘리포니아 남부 한 지역의 수자원관리위원이었던 자비어 알바레즈(Xavier Alvarez)는 위원회에서 자신이 해병대에서 25년 동안 복무했고 의회의 무공훈장을 받았다는 허위사실을 이야기했다. 이 말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서, 알바레즈는 군경력위조금지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지방법원 재판 과정에서 그는 군경력위조금지법이 표현의 자유를 명기한 수정헌법 1조에 어긋난다고 주장했으나, 지방법원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알바레즈는 항소하게 되고 캘리포니아 항소법원은 1심을 뒤집고 다음과 같은 판결로 알바레즈의 손을 들어줬다. “훈장에 대한 거짓말이 범죄가 된다면, 페이스북에서 나이를 속이거나 재산 상태를 속이거나 어머니의 음주나 흡연에 대해 허위로 말하는 것과 같은 수많은 일상적인 거짓말도 범죄가 된다.”

군경력위조금지법에 대한 위헌 여부는 2012년 연방대법원이 추가로 판단했다. 대법원 판결에서 다수 의견은 위증과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허위사실을 말했더라도 기본적으로 수정헌법 1조의 보호를 받을 수 있으며, 그런 점에서 군경력위조금지법은 위헌이라고 지적했다. 현실적 해악을 가져오고 정당하지 못한 목적에 봉사하는 허위 사실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수 없다는 일부 대법관들의 지적도 있었지만, 소수 의견에 불과했다. 위헌 판결에 따라 군경력위조금지법은 개정돼, 지금은 금전이나 재산상의 이득을 취할 목적으로 군경력을 위조한 경우만 국한해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두 판례가 주는 시사점

소셜미디어가 발달한 오늘날 이 두 가지 판례는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소셜미디어는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대폭 확대했지만, 동시에 증오표현과 가짜뉴스나 허위정보 문제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다른 정체성을 가진 집단에 대해 행하는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표현도 물리적 폭력을 수반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가짜뉴스나 허위정보를 광범위하게 유포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그릇된 판단을 하게 되더라도 감내하는 것이 자유주의 국가의 헌법 정신인가? 우리 사회에서도 논란이 되는 이런 문제에 대해 사실상 정답은 없다. 다만, 증오표현과 허위정보가 이제는 단순히 고립된 개별 케이스가 아니라 일반적인 관행이 되고 온라인 문화로 굳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새로운 성찰과 고민이 필요하다.  <김선호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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