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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인가?

입력 2019. 11. 05   17:00
업데이트 2019. 11. 05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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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전쟁과 표현의 자유(上)


1919년 美 제1차 세계대전 참여하자 셴크 징집 거부 팸플릿 배포
美 연방대법원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 땐 자유 제한 가능’ 판결
1969년 대법원 KKK단 판결서 표현의 자유 제한 4가지 기준 제시


     
올리버 웬델 홈즈 대법관 
  사진=미 의회도서관 해리스 앤 유잉 컬렉션
올리버 웬델 홈즈 대법관 사진=미 의회도서관 해리스 앤 유잉 컬렉션

루이스 브랜다이스 대법관 
 사진=미 의회도서관 해리스 앤 유잉 컬렉션
루이스 브랜다이스 대법관 사진=미 의회도서관 해리스 앤 유잉 컬렉션

자유주의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는 헌법으로 보장되는 권리지만,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가의 문제는 항상 논란의 대상이다. 헌법이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이유는 상충하는 의견이 자유롭게 유통됨으로써 사회가 민주적으로 작동하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정부의 권위주의적 정보 통제나 소수 의견 발표를 가로막는 ‘다수의 횡포’ 같은 현상은 민주적 의사결정을 저해할 뿐더러 개인의 창의성 발현도 억제한다. 공개적 검열보다 은밀하고 광범위한 자기검열기제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시에 국가안보에 위해가 되거나, 악성 댓글처럼 당사자에게 심리적 피해를 입히거나, 가짜뉴스처럼 사람들을 기만하는 정보도 헌법적 권리가 보장돼야 할까? 이 문제는 헌법상 권리 보장에 적용되는 기준이나 제한함으로써 얻는 사회적 손익에 대한 계산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법학자들에게도 난제로 여겨진다.

“의회는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을 제정할 수 없다”라고 규정한 수정헌법 1조를 만든 미국은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의 실험실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미국 연방대법원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여러 가지 중요한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표현의 자유 관련 판결은 공교롭게도 전쟁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 중 세 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그 판결 중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판결도 있지만,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판결도 있을 것이다.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미국 대법원 판결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clear and present danger)’을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기준으로 제시한 판결이다. 1919년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여하게 됐을 때, 셴크라는 사람은 징집 명령을 거부하라는 팸플릿을 배포했다. 셴크는 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됐고 그가 항소함으로써 대법원까지 판결이 이어지게 되는데, 대법원은 만장일치로 셴크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게 된다. 올리버 웬델 홈즈 대법관의 판결문은 다음과 같다.

“표현의 자유를 아무리 강력하게 보장하는 조항이라도 극장에서 거짓말로 ‘불이야’라고 외쳐서 사람들을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은 사람을 보호할 순 없다. 문제는 말이란 것이 … 의회가 제한할 수 있는 실체적인 악을 가져오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을 만드는가다. 나라가 전쟁에 임했을 때는 평화 시에 말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제한될 수 있다.”

이 판결문은 표현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한 최초의 판결문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이라는 기준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기보다는 그것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바뀌게 된다.

홈즈 대법관의 의도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이 있다고 판단되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었지만, 이후의 판결들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이 없다고 판단되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는 방향으로 재해석된다.

그러한 재해석의 분수령에는 루이스 브랜다이스 대법관이 있었다(브랜다이스는 프라이버시권을 정초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1927년 샬럿 휘트니는 미국 공산당 설립에 협력하고 정부 전복을 선동한 혐의로 기소됐고 대법원은 유죄를 확정하게 된다. 유죄를 선고했지만, 브랜다이스 대법관의 해석은 홈즈 대법관과 달랐다.

“심각한 해악을 초래할 수 있다는 두려움만으로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부당하다. 마녀를 두려워한 남성들은 여성을 불태웠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서는 위협이 임박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어야만 한다. … 아무리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위반적 행동이라도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 오직 위기상황에서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 제한에 대한 논란은 1969년 KKK단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서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됨으로써 마침표를 찍게 된다.

백인우월주의로 널리 알려진 KKK단의 지도자 브란덴부르그는 TV 방송을 통해 “대통령이나 의회나 대법원이 계속해서 백인을 억압한다면 복수를 감행할 수 있다”고 발언함으로써 폭력 선동 혐의로 오하이오주 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내려진다. 그런데 대법원은 오하이오주 법원 판결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4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첫 번째 기준은 불법적 행동이나 폭력을 선동하는가다. 아무리 황당무계하더라도 추상적인 이념을 전파하는 수준에서는 표현은 보호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 기준은 불법적 행동을 선동하는 표현이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 은유적인 표현에 불과하다면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 번째 기준은 불법적 행동이 지금 당장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될 때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네 번째 기준은 선동적 표현이 실제로 불법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가다. 예를 들어 정부 전복을 선동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현실에서 실천 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브란덴부르그 기준은 오늘날까지도 미국 정부가 선동적 표현에 대한 제한이나 처벌을 판단하는 표준으로 삼고 있다. 이 기준은 아무리 전복적이고 불쾌한 표현이라도 지금 당장 행동으로 이어져 사회적 혼란을 초래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그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헌법적 가치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이는 좋은 표현뿐만 아니라 나쁜 표현도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많은 논란거리를 낳게 된다. (계속)

<김선호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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