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우리부대 동아리 집중탐구

또각또각 망치질에 사각사각 퍼지는 나무향 시끄러운 마음 고요해지네

조아미

입력 2019. 10. 17   17:54
업데이트 2019. 10. 17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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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해군3함대사령부 ‘유달 서각동아리’ 
 
칼·망치로 나무에 글 새기는 ‘서각’… 지난 2003년 창설해 현재 30여명 “차분해져”
동아리 회장인 ‘전통 서각 명인’ 정형준 군무주무관 해군 최초 겸직
사단법인 설립도 작품 500점 넘어 “동료들 지원 고마워” 

 

한 회원이 서각칼과 망치를 이용해 음각 기법으로 작품에 글자를 새기고 있다.
한 회원이 서각칼과 망치를 이용해 음각 기법으로 작품에 글자를 새기고 있다.

정형준 동아리 회장이 단원 김홍도의 후손인 담원 김창배 박사의 작품 ‘전다(煎茶)’를 몬드리안의 화법과 황금비율을 응용해 작품으로 완성했다.
정형준 동아리 회장이 단원 김홍도의 후손인 담원 김창배 박사의 작품 ‘전다(煎茶)’를 몬드리안의 화법과 황금비율을 응용해 작품으로 완성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본과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팔만대장경판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오래전부터 고궁이나 사찰 등의 현판으로 서각 작품을 사용해 왔다. 이렇듯 우리 전통 예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서각(書刻)’은 ‘글을 새긴다’는 뜻으로, 나무 판재에 글을 쓴 복사본을 붙인 후 서각 칼과 망치를 이용해 글을 새기는 작업이다. 글자를 맵시 있게 새기기 위해 섬세함과 정밀함이 요구된다. 해군3함대사령부 ‘유달 서각동아리’는 전통 서각을 보존하고 발전시킨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지난 2003년부터 16년간 꾸준히 활동을 해왔다. 손끝에서 피어나는 서각 예술의 세계로 안내한다.

목포에서 글=조아미/사진=이경원 기자

그동안 사용된 서각 관련 전통 공구들이 전시돼 있다.
그동안 사용된 서각 관련 전통 공구들이 전시돼 있다.

서각 명인 정형준(왼쪽) 동아리 회장이 회원들에게 서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각 명인 정형준(왼쪽) 동아리 회장이 회원들에게 서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각에 집중하고 

있는 한 회원.
서각에 집중하고 있는 한 회원.

지난 15일 전남 목포시 유달예술타운. 이곳에서 3함대 서각동아리 수업이 한창이었다. 건물에 들어서자 느티나무·편백나무·산벚나무·소태나무·가죽나무·탱자나무 등 갖가지 나무의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눈을 감으면 꼭 숲에 들어온 기분이다.

“또각 또각~.”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동아리 회원들이 칼과 망치로 글자를 새기는 소리가 박자를 맞추듯 들린다. 이들은 긴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나뭇결의 문양에 따라 자신만의 새김질을 하는 데 심취해 있었다.

“서각에는 음각, 양각, 음양각, 음평각 4가지 기법이 있어요. 음각은 글씨만 깊게 파내는 것이고, 양각은 글씨를 남겨두고 바닥만 파내는 걸 말합니다.”

동아리 회장인 수리창 정형준 군무주무관은 전통 서각 명인이자 (사)벽산전통서각협회 이사장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회원들과 함께 작품을 제작하면서 서각을 가르치고 있다.

동아리에 합류한 지 한 달 된 수리창 김경태 주임원사는 나뭇결에 따라 가로, 세로, 대각선으로 나무를 켰다. 김 원사는 “나무 느낌이 너무 좋다. 망치로 나무를 두드리다 보면 스트레스도 날아가는 것 같다”면서 가족들의 이름을 새겨 선물하고 싶다고 말했다.

훈련전대 신광식 상사는 비교적 큰 나무판에 ‘사랑합니다. 여보! 태어나줘서 나의 아내가 돼 줘서 고맙습니다’라는 내용으로 작품을 거의 완성한 상태였다. 예전부터 옛 건축물에 걸려 있는 현판이나 편액 등에 관심이 많았다는 최헌식(대령) 3군수전대장은 “우리 부대에 서각 동아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았다”면서 “수준을 높여 우리 집 문패부터 만들고 더 수준을 높여 부대 현판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서각을 하면서 좋은 습관이 생겼다는 훈련전대 구영원 상사는 “참을성 없고 급한 성격으로 실수가 잦았는데 서각 동아리 활동을 통해 조금은 차분해지면서 뭔가에 집중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동아리를 운영하면서 선현의 말씀이나 본보기가 되는 글귀 등을 마음으로 되뇌며 새김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는회원들을 많이 봐왔다고 귀띔했다.

바로 옆 건조실에는 판재로 사용할 크고 작은 나무들이 빼곡히 쌓여 있었다. 나무들은 보통 3~5년 정도 건조한 뒤 작품에 사용된다.

서각을 이해하고 그 기술을 배우는 서각동아리는 2003년 4월 장병들의 정서 순화를 위해 창설됐다. 당시 회원은 단 6명. 처음에는 부대 내 수리창의 작은 창고에서 시작했다. 1년 뒤 목포문화예술회관 내 창고로 옮겼다가, 2009년 지금의 유달예술타운으로 옮기게 됐다. 부대 밖으로 장소를 옮긴 뒤에는 일반인도 함께 동아리에 참가하고 있다. 현재 동아리에는 100여 명의 회원이 등록돼 있다. 그 가운데 군 장병과 군무원, 일반인 등 총 30여 명이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동아리는 매주 화·목요일 주 2회 저녁에 진행한다.

정 회장은 “사람에게 편안함을 주는 소재인 나무를 만지면서 위안을 느끼고, 교훈적이거나 감성적인 내용의 글과 그림을 새기면서 정신적으로 교감하는 부분이 있다”고 동아리 활동의 장점을 설명했다.

이어 “서각은 평면 예술인 시·서·화를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반영구적으로 보전하기 위한 협업 예술이다. 대표적 유산이 팔만대장경판, 전국 각지 궁궐과 사찰·서원 등에 걸려 있는 현판과 편액·주련”이라면서 “다양한 예술 작품과 함께 작가와 소통하면서 자기 계발과 인격 수양에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각동아리는 해마다 1회 이상 작품 발표회를 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올해는 단원 김홍도의 후손으로 선묵화의 대가인 담원 김창배 박사와의 협업전이 있다. 또 회원들의 발표회와 함께 오는 25일 목포문화예술회관 1·2층 전관 6개 전시실에서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정 회장은 유년 시절 목수이자 어부였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나무 다루는 일을 배웠다. 학창 시절 판화를 익히고, 고등학교 때는 서각을 전문으로 하는 은사를 만나면서 전통 서각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1993년부터 본격적으로 서각 활동에 매진해 왔다. 일과 후와 주말 시간을 활용해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그동안 만든 작품은 500여 점이 넘는다. 그중 자신만의 서각 기법으로 5년간에 걸쳐 제작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는 가장 아끼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정 회장은 지난해 8월 29일 전 군 최초로 서각 명인이 됐다. 명인은 사단법인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에서 인증하는 대한민국 예술가 중 그 실력과 인품을 인정받은 예술인을 뜻한다. 전통 서각 분야는 현재 10여 명에 불과하다. 명인이 된 소감으로 “개인적으로 무한한 영광”이라고 털어놓은 정 회장은 “명인이 된 것은 해군과 동료들의 전폭적인 지원과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해군 최초로 겸직 허가 승인을 받고 제자들과 사단법인 벽산전통서각협회를 만들었다.

한편, 정 회장은 현재 함대에서 군함의 엔진 품질 검사 및 보증을 담당하고 있다.

“해군 함대의 심장은 군함이고, 군함의 심장이 엔진입니다. 엔진이 튼튼해야 함대가 튼튼한 것이죠. 마찬가지로 팔만대장경판 등 우리 전통 예술의 심장이 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예술의 심장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동아리를 운영하겠습니다.”

정 회장은 앞으로도 작품 전시를 많이 해 군 장병은 물론 일반인에게 서각 문화를 알릴 생각이다. 더불어 우리의 전통 예술 서각이 ‘세계 속의 서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할 계획이다. 


조아미 기자 < joajoa@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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