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미 육군 개혁이야기

비효과적인 효과중심작전… 논란.시행착오 끝 폐기

입력 2019. 01. 07   17:01
업데이트 2019. 01. 07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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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효과중심작전(EBO)’의 폐해와 영향 <上>


2001년 전쟁영웅 미 공군준장 뎁툴라
실전 검증 후 『…효과중심작전』 발간
합동전력사령부 고유 성격 과장·왜곡
미 육군·해병대 “전장과 안 맞아” 반대
매티스 사령관 2008년 사용 금지 선언   

1991년 ‘사막의 폭풍 작전’을 실행하기 직전의 브리핑 모습. 왼쪽이 미 중부사령관 노먼 슈워츠코프 대장, 오른쪽이 데이비드 뎁툴라 당시 중령이다.    필자 제공
1991년 ‘사막의 폭풍 작전’을 실행하기 직전의 브리핑 모습. 왼쪽이 미 중부사령관 노먼 슈워츠코프 대장, 오른쪽이 데이비드 뎁툴라 당시 중령이다. 필자 제공

‘효과중심작전(EBO: Effect Based Operation)’은 열병처럼 지나갔다. 한때 우린 모두 효과중심작전에 의한 완전 임무수행을 꿈꾸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것처럼 살고 있다. 열병의 전형적 현상이다.

효과중심작전은 미국발 열병이었다. 1990년대 말부터 미 공군은 ‘목표 선정의 효과’를 주제로 연구했고, 2001년 미 공군준장 데이비드 뎁툴라(David A. Deptula)가 이를 정리해 『전쟁의 본질 변화와 효과중심작전』을 발간했다.
데이비드 뎁툴라는 1991년 걸프전 이래 아프가니스탄전·이라크전 최전선에 근무한 전쟁영웅이었다. 전투기 조종사로, 작전 총괄국장으로 활약한 그는 현대전의 실제와 이론에 두루 통달했으며 미군뿐 아니라 당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 군대에 ‘구루’ 같은 존재였다.

미 공군에 ‘효과중심작전’은 이론·가설이 아니라 실용적 결론이었다. 데이비드 뎁툴라는 1991년 ‘사막의 폭풍 작전’에서 공군 폭격 개념, 계획을 수립하는 데 ‘효과’를 사용했고 이후 실제 작전을 통해 거의 10년간 이를 검증했다. 따라서 『전쟁의 본질 변화와 효과중심작전』은 냉전 종식 이후 바뀐 전쟁 양상에 대한 미군의 ‘백서’처럼 받아들여졌다.

여기에 국방장관 도널드 럼즈펠드(Donald H. Rumsfeld)가 힘을 실어줬다. 그는 미 합동전력사령부에 효과중심작전 개념 적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미 합동전력사령관은 도널드 럼즈펠드 군사보좌관 출신의 에드먼드 기암바스티아니(Edmund P. Giambastiani Jr.) 제독이었다. 그는 미군을 포함한 나토군 혁신의 일부로 효과중심작전 개념 도입을 추진했다. 이론적 검토 2년, 개념 실험 1년을 거쳐 2004년부터는 효과중심작전을 수준별 개념서와 야전교범에 공식 포함하려고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 미 공군의 주장이다. 미 합동전력사령부가 효과중심작전의 고유 성격을 과장, 왜곡했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뎁툴라는 2017년 한 인터뷰에서 “미 합동전력사령부는 현실적 적용 가능성에 주안을 두고 원래는 없던 컴퓨터 시뮬레이션, 전투력 평가, 체계 분석과 같은 도구·절차를 만들어 넣었다. (중략) 이로 인해 효과중심작전의 본질이 흐려졌고 거대하고 복잡한 체크리스트만 남았다”고 토로했다. 미군 내에는 실제 ‘효과중심작전이 아니라 체크리스트중심작전’이라는 비아냥이 있었다.

그런데 실은 미 육군과 해병대도 효과중심작전에 반대했다. “기술 잠재력에 대한 과신에서 비롯된 맹신”(콘래드 크레인·미 전쟁대학 교수)이며 “전장의 실상과 처절함을 모르는 후방 하늘 위 공군의 무지가 빚은 촌극”(반 리퍼·예비역 해군중장)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미 육군교육사령부는 효과중심작전이 미 육군 작전 수행을 망칠 수 있다고 경고하며 도입에 강력히 반대했다.

명백한 비판과 반대에도 미 합동전력사령부는 관련 참고서지·백서·안내서를 발간, 배부했다. 조직의 관성(慣性) 때문이었다.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썰어야 했을 것이다.

이로 인해 예하 제대에선 불필요한 논란과 시행착오가 발생했다. 교리·교범이 아닌 모호한 형태로 ‘체크리스트중심작전’이 전파되자 “이걸 해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라는 등의 문의가 빗발쳤다.

미군 리더들이 가장 혐오하는 분위기 중 하나가 ‘go? no go?’를 묻는 것 아닐까. 결국 2008년 신임 미 합동전력사령관 제임스 매티스(James N. Mattis) 대장이 총대를 멨다. “효과중심작전 용어 사용 자체를 금지한다”고 지침으로 선언한 것이다.

참고로, 미군의 효과중심작전 종결 선언에는 한국군도 이바지했다. 예하 제대에서 “뭘 어떻게 하란 겁니까?”라는 질문이 빗발치자 미 육군은 2006년부터 시행 가능하고 구체적인 툴(tool)을 만들기 시작했다. 완성된 툴은 한미연합연습을 통해 시험 적용할 것이어서 개발 과정에 국군도 동참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여러 개의 체크리스트,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체계분석 도구로 구성된 ‘전역(戰域) 효과중심작전 지식 기반(Theater Effect Based Operation Knowledge Base)’이었다. 적용 결과, 미 육군이 내린 결론은 ‘도저히 실전에서 쓸 수 없는 개념, 도구’라는 것이었다.

한편, 2008년 제임스 매티스의 선언을 접한 미국의 동맹국과 나토국 군대는 황당했다. 혁명적 개념·도구라기에 거의 그대로 모방해 후속하고 있는데 돌연 폐기하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미군이야 시험 적용 및 피드백의 과정이 있었으니 급박하기는 해도 그것을 없애는 데 별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이런 내부 사정을 몰랐던 외국 군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동맹과 나토 중에서도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효과중심작전을 수입해 사용하던 국가의 군대는 매우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 규모의 제도, 예산, 인력이 이미 ‘효과중심작전’에 투입된 상황이었다. 각 제대에 만들어 놓은 효과중심작전처(과·팀)를 어떻게 할 것인가? 염출한 부서 과업과 반영해 놓은 관련 사업예산은? 보직을 받아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간부들은 어쩔 것인가? 한마디로 답이 없었다.

심한 경우 미군에서 이미 폐기한 개념, 실패라고 규정한 절차를 2010년 중반까지 사용한 곳도 있었다. 이들 국가의 군대에서는 관련 부서가 없어지지 않고 유지됐으며 애초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형태와 방식으로 변용되기도 했다(○○○○ 계획수립, ○○○○ 차트, ○○○○ 도표 등). 이 과정에서 미군이 시도하지 않은 효과중심작전의 철학화·정교화가 진행되기도 했다. ‘미군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효과중심작전을 작전 수행 방식으로 안착시킬 수 있다’는 희한한 주장도 나왔다. 아주 기이한 일이었다.

<남보람 박사/군사편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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