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영화로 본 전쟁사

지옥같은 참호에서 생사를 다퉈야 했던 1차 세계대전 병사들

송현숙

입력 2018. 11. 27   15:52
업데이트 2018. 11. 2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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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저니스 엔드(Journey’s End), 2017 감독: 사울 딥/출연: 샘 클라플린, 에이사 버터필드, 폴 베타니


1차 대전 막바지인 1918년
최전방 영국군 참호 안에서
4일간 벌어지는 이야기  



 

 참호전은 1차 대전(1914∼1918) 시 서부전선에서 벌어진 지상전투 방식이었다. 땅을 파서 참호를 만들고 그곳에서 적과 대치하다 공격하는 방식이었다. 싸우는 당사자 양측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소모전이었다. 참호를 박차고 뛰어나온 공격자들은 방어자가 쏘아대는 기관총에 희생되기 일쑤였다. 한마디로 방어자가 절대적 우위에 설 수밖에 없는 형태의 전투였고, 승자도 패자도 없는 지루한 전쟁이었다.
 1차 대전 때 독일군은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에서 동시에 싸워야 하는 양면전쟁 상황에 빠졌다. 서부전선의 독일군은 점령지역 유지와 방어를 위해 참호를 팠고, 여기에 대응해 연합군 역시 참호를 팠다. 결국 서부전선에선 지지부진한 참호전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 양측의 참호 간 거리가 2m밖에 안 되는 상황도 나왔다. 공격할 시에는 백병전으로 이어졌다.

독일군과 대치한 영국군의 불안 심리·중압감 섬세하게 그려

영화 ‘저니스 엔드’는 1차 대전 막바지인 1918년, 서부전선 영국군 최전방 참호 안에서 벌어지는 나흘간의 이야기다. 독일군과 대치하고 있는 영국군의 불안 심리와 중압감을 섬세하게 그린 전쟁영화다. 마지막 전투 장면을 빼면 이렇다 할 전쟁 스펙터클은 거의 없다. 좁은 참호 속에 투입된 영국군의 생사에 집중한다. 그래서 영화는 100년 전의 전투 방식인 참호전을 실감나게 체험케 한다.

영국 극작가이면서 실제로 1차 대전 참전 군인이었던 로버트 케드릭 셰리프의 같은 이름 희곡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영국군 중대장 스탠호프 대위(샘 클라플린), 부중대장 오스본 중위(폴 베타니)가 지키는 최전선 참호에 신참 소위 롤리(에이사 버터필드)가 전입해 오면서 시작된다. 롤리가 굳이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친구(누나의 애인)인 스탠호프가 있기 때문.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스탠호프의 태도는 냉담하기 그지없고, 부대원들 앞에서는 중대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만 오랜 전쟁 때문인지 부중대장인 오스본보다 더 힘들어하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러던 중 독일군을 생포해 오라는 상부 명령이 내려진다. 곧 있을 독일군의 총공세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함이다. 독일군 생포엔 성공하지만 도중 오스본은 전사하고 독일군의 총공세로 롤리마저 전사한다.



쥐와 배설물, 음식 쓰레기가 뒹구는 참호는 지옥이었다

영화는 중대장 스탠호프 대위와 부중대장 오스본 중위, 그리고 신참 소대장 롤리 등 3명의 군인에게 집중한다. 이들의 표정만으로 참혹한 전장의 분위기를 전한다. 특히 전투에 대한 중압감에 못 이겨 술에 의지한 채 히스테리를 부리는 스탠호프를 통해 인간의 나약함과 전쟁의 참혹함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부중대장 오스본은 끝까지 평정심을 잃지 않는 침착하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영화 속, 참호는 영화의 주제이자 메시지다. 숨이 막힐 듯한 폐쇄된 참호 안에서 공격도 후퇴도 할 수 없는 상황은 전쟁의 실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장교·병사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전투도 하기 전에 참호의 악조건과 싸워야 했다. 쥐들이 득실거리고, 많은 비로 걷기조차 힘든 진흙탕 참호에서 지쳐 가는 병사들은 자신들의 배설물과 그냥 묻어버린 시체, 음식물 쓰레기에 시달린다. 새로 투입되는 병사들의 어두운 얼굴과 그곳을 빠져나가는 병사들의 안도감 어린 표정에서 지옥 같은 참호의 실체를 읽을 수 있다. 1차 대전은 이 같은 참호에서 장장 4년 동안 싸운 전쟁이었다. 영화 제목 ‘저니스 엔드(Journey’s End)’는 지루하고 긴 전쟁의 끝이자 죽음을 의미하는 듯하다.

 

    

대량살상 무기 총동원된 최초의 전쟁…군인 1000만 명 전사

1차 대전은 기관총·독가스·전차·잠수함·전투기 등 오늘날의 대량살상 무기들이 총동원된 최초의 전쟁이었다. 서부전선은 참호전과 함께 기관총·독가스가 주 무기였다. 최초의 대량살상 자동 무기인 맥심(Maxim) 기관총은 분당 500발을 발사했다. 당시로선 가히 혁명적인 첨단무기였다. 독일군은 1915년 4월 벨기에 이프르 전선에서 최초로 독가스를 사용해 연합국 군인 5000명을 희생시켰다.

기관총의 등장은 참호전으로 이어졌고, 참호전은 다시 독가스 사용을 불렀다. 넓은 벌판에서 양측이 대열을 만들어 진격하다 서로 달려들어 싸우는 나폴레옹 전쟁과는 차원이 달랐다. 포격이 끝난 후 한쪽이 참호 밖으로 튀어나와 공격하면 다른 한쪽은 참호 속에서 기관총을 난사했다. 그다음 남은 생존자끼리 백병전을 벌였다. 사상자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군인만 1000만 명이 숨졌다.

올해는 1차 대전 종전 100주년을 맞는 해다. 지난 100년간 전쟁무기는 기관총·독가스가 무색할 정도로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다. 2차 대전 때 핵폭탄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더 불행한 것은 지금도 여전히 세계 강대국들이 힘을 바탕으로 한 패권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김병재 영화평론가>

송현숙 기자 < rokaw@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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