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정호영의 역사소설 광해와 이순신

송희립, ‘아군이 이순신 저격’ 주장

정호영

입력 2018. 11. 26   16:21
업데이트 2018. 11. 26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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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장 생과 사의 뒤바뀜 (216회)


꿈이 아니었다.

광해군은 바닷가에서 상념에 젖다 어두워지자 숙소로 되돌아왔다. 방 안에 들어선 광해군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전하, 신 송희립이옵니다.”

방 안은 어젯밤처럼 소찬의 술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엎드려 절하는 송희립의 모습이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광해군은 묵묵히 자리에 앉아 술잔을 들었다.

“고개를 드시오. 그리고 술잔을 받으시오.”

광해군은 왠지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사람의 운명은 어쩔 수 없었다. 문득 나라를 구하지 못한 자신이 역사의 큰 죄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해군과 송희립 둘 사이에 묘한 침묵이 흘렀다. 송희립이 먼저 침묵을 깼다.

“전하, 새벽 무렵 꿈에서 이순신 장군을 뵈었습니다.”

광해군은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세월 동안 가슴속에 품었던 의문을 묻는 시간이었다. 송희립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는 그것이었다. 광해군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장군께서는 저에게 ‘왜’라고 물으셨습니다.”

“왜요?”

광해군은 반문했다. 아리송한 말이었다.

“흉탄에 맞아 쓰러지신 뒤 죽기 직전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보시오.”

송희립은 왜군과의 마지막 일전이었던 노량해전의 일을 끄집어냈다. 뜻밖이었다. 이순신의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그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송희립은 이순신이 적의 탄환에 맞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새벽에 이순신이 한창 싸움을 독려하고 있을 때, 문득 날아온 총알은 적의 탄환이 아니라 뒤에서 아군이 쏜 총알이라는 것이었다. 조총의 짧은 사정거리를 고려해볼 때 바다 위의 해전에서 정확히 적의 탄환에 명중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광해군은 유성룡이 남긴 『징비록』의 한 대목을 떠올렸다. 이순신을 맞힌 탄환은 두꺼운 갑옷을 뚫고 가슴에서부터 등을 완전히 관통했다고 적혀 있었다. 광해군은 그 내용을 기억하고 경악했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조총에 맞았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광해군은 놀랍다는 얼굴로 송희립을 바라봤다. 송희립은 기억을 되살려 말을 이었다. 이순신을 저격한 자는 그날 대장선에 처음으로 승선한 손문욱이 틀림없다고 의심했다. 그는 전날 세자의 명령을 받고 왔다며 이순신과 면담한 뒤 배에 같이 탔다는 것이었다.

“아니, 도대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광해군은 송희립의 말에 기겁했다. 자신을 팔아 이순신을 죽였다는 사실에 분노를 넘어 황망했다.

정호영 기자 < fighter7@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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