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영화로 본 전쟁사

미지의 땅에 대한 열망 콜럼버스는 몽상가였다

입력 2018. 11. 20   16:15
업데이트 2018. 11. 20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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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1492 콜럼버스(1492: The Conquest Of Paradise), 1992 감독: 리들리 스콧 /출연: 제라르 드파르디외


탐험가 콜럼버스의 성공·실패·좌절 그려
평화주의자이자 이상향 좇는 인물로 표현
역사 속 신대륙 발견은 식민지 전쟁의 서막
유럽의 전염병, 아메리카 원주민 전멸케 해  





1492년 1월 스페인 그라나다전투에서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 여왕과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왕의 연합군이 이슬람 군대에 승리했다. 이로써 스페인 국토회복운동(레콩키스타·Reconquista)이 완수됐다. 800년간 이슬람 지배를 끝내고 이베리아반도가 기독교 세력권으로 통일된 것이다.

같은 해 이사벨 여왕은 이민 온 이탈리아 출신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항해 계획을 지원했다. 당시 유럽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영향을 받아 아시아 등 신대륙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

1492년 8월 콜럼버스는 산타마리아호 등 3척의 배를 타고 신대륙 발견을 위한 항해를 시작했다. 유럽 국가 중 가장 먼저 신대륙 개척에 나선 것이다. 콜럼버스는 서쪽 바다로 항해했다.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돌아가야 하는 뱃길은 너무 멀고, 동쪽은 터키가 지배하고 있어 제3의 길을 찾은 것이다. 당시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미지의 항로였다.


영화 ‘1492 콜럼버스’에서 제라르 드파르디외는 콜럼버스 역을 맡아 신대륙을 찾고자 하는 탐험가의 집념을 연기했다.    필자 제공
영화 ‘1492 콜럼버스’에서 제라르 드파르디외는 콜럼버스 역을 맡아 신대륙을 찾고자 하는 탐험가의 집념을 연기했다. 필자 제공


 
#영화 ‘1492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찾고자 하는 탐험가 콜럼버스의 집념을 그리고 있다. 콜럼버스를 역경을 헤치고 도전하는 선각자, 정복자가 아닌 원주민을 이해하는 평화주의자, 이상향을 좇는 몽상가로 표현하고 있다. 영화는 개척자로서 콜럼버스의 성공과 실패, 좌절을 짜임새 있게 보여준다.

콜럼버스(제라르 드파르디외)가 아들에게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산타마리아호 등 3척이 이사벨 여왕(시고니 위버)의 지원을 받아 서쪽으로 항해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공포와 선원들의 불만을 극복하고 2개월여 동안 항해하던 콜럼버스 일행은 마침내 지상의 낙원 같은 과나하니(산살바도르) 섬을 발견한다. 원주민과 함께 성당을 짓는 등 신도시를 만든 콜럼버스는 금의환향해 영웅이 된다. 이어 콜럼버스는 2차 항해를 한다. 하지만 구후니 부족 등 잔인한 원주민과 일부 귀족들의 불만과 사금 채취과정에서 원주민과의 갈등으로 무자비한 살육전이 벌어져 도시는 엉망이 된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이사벨 여왕은 새 총독을 임명하고 콜럼버스를 소환한다. 이후 여왕의 지시로 바스티유 감옥에서 석방된 콜럼버스는 다시 아들과 마지막 항해를 준비한다.



 




#영화 전반부의 콜럼버스는 모험심이 강하고 도덕적이고 다정다감한 인물이며 이상주의자다.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영웅이다. 하지만 후반부의 콜럼버스는 끝내 그의 꿈을 이루지 못하는 비극적 영웅이 된다. (그가 진정으로 찾고자 했던 아메리카 대륙은 이탈리아 탐험가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발견한다.)

영화 종반, 이사벨 여왕은 출감(出監)한 콜럼버스를 질책한다. “신세계는 엉망이 됐다.” 이에 콜럼버스는 “그럼 구세계는 완벽한가요?”라고 반문한다. 콜럼버스는 이어 재무대신 산체스와 언쟁을 벌이는데, “당신은 몽상가다(dreamer)”라는 산체스의 비난에 그는 “밖을 봐요. 뭐가 보이죠?”라고 말한다. 산체스가 “탑 궁전 교회의 첨탑, 문명이 보이는군”이라고 하자 콜럼버스는 말한다. “모두 나 같은 몽상가가 만든 겁니다.”

영화는 허밍으로 구성된 행진곡풍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산타마리아호 등 3척의 대형 범선이 팔로스 항을 출항하는 역사적인 장면과 콜럼버스 일행이 과나하니 섬에 도착하는 장면이 긴 여운을 남긴다.

실제 콜럼버스는 영화 속 콜럼버스와는 달랐다. 그는 위대한 탐험가였지만 파괴자이기도 했다. 산살바도르 섬의 총독이 된 그는 금광 채굴에 징발됐던 원주민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무력으로 진압했으며, 그 원주민들을 노예로 스페인에 보내기도 했다.



#감독 리들리 스콧은 SF영화 ‘에일리언’ ‘블레이드 러너’와 ‘글래디에이터’ 등을 연출한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작가’ 감독이고, 주연을 맡은 제라르 드파르디외는 프랑스 국민배우다. 그는 최근 프랑스의 부자 증세에 항의, 러시아로 귀화했다.



#영화의 원제는 ‘1492: The Conquest Of Paradise(낙원의 정복자)’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침략자의 입장에서 본 것이다. 유럽은 발전하고 아메리카엔 새로운 문명이 발흥했지만, 신대륙에 살던 원주민들은 모든 것을 잃었다. 신대륙 발견은 식민지 전쟁의 서막인 셈이었다. 이후 스페인을 비롯해 유럽 제국은 아메리카를 앞다투어 정복하기 시작했다. 원주민들에 대한 약탈, 학살, 노예화가 뒤따랐다. 특히 유럽의 전염병은 아메리카 신대륙 원주민들을 전멸케 했다. 인류 역사학자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저서 『총, 균, 쇠』에서 말했듯이 프란시스 피사로가 지휘하는 스페인 군대는 총으로 잉카 제국을 멸망시켰다.

문명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였다. 하지만 전쟁은 또 다른 문명을 잉태해 왔다. 오늘날의 미국 탄생은 몽상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에서 비롯됐다. 문명은 꿈꾸는 자에 의해 발전해 왔고, 앞으로도 그들에 의해 진화해 갈 것이다.

<김병재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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