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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환, 고향에 가서

박인환

입력 2018. 11. 16   16:05
업데이트 2018. 12. 1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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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에 가서 


                          박인환


 갈대만이 한없이 무성한 토지가 

 지금은 내 고향 


 산과 강물은 어느 날의 회화 繪畵 

 피 묻은 전신주 위에 

 태극기 또는 작업모가 걸렸다. 


 학교도 군청도 내 집도 

 무수한 포탄의 작렬과 함께 

 세상엔 없다. 


 인간이 사라진 고독한 신의 토지 

 거기 나는 동상처럼 서 있었다. 

 내 귓전에 싸늘한 바람이 설레이고 

 그림자는 망령과도 같이 무섭다. 


 어려서 그땐 확실히 평화로웠다.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미래와 살던 나와 내 동무들은 

 지금은 없고 

 연기 한 줄기 나지 않는다. 


 황혼 속으로 

 감상(感傷) 속으로 

 차는 달린다. 

 가슴속에 흐느끼는 갈대의 소리 

 그것은 비창(悲愴)한 합창과도 같다. 


 밝은 달빛 

 은하수와 토끼 

 고향은 어려서 부르던 

 그것 뿐이다. 


 비 내리는 사경(斜傾)의 십자가와 

 아메리카 공병(工兵)이 

 나에게 손짓을 해준다. 


■  6.25전쟁 중 시인이 종군기자(작가)로 활동하면서 고향인 인제를 방문하고 난 후 쓴 시이다. 


■ 시인 박인환  


인제군 인제읍 상동리 159번지에서 태어났다. 일제시대 때 그의 아버지는 사업을 하셨고 집안은 부유했다. 보통학교(초등학교) 4학년 때 박인환은 고향을 떠났고 서울 등으로 이사다니며 평양의학전문학교까지 입학했다. 


박인환의 시에서 인제를 소재로 한 시는 ‘인제’와 ‘고향에 가서’‘어린 딸에게’ 3편 뿐이다. 인제에는 박인환문학관이 세워져 있다. 그의 생가 자리에 위치해 있다. 서울 세종로 교보문고 뒤 쪽으로 그가 살터 집터가 있다. 


1926년 강원도 인제 출생 경기중학 중퇴 

1946년 국제신보에 ‘거리’로 등단 경향신문 사회부 기자 

1956년 31세 심장마비 사망 

1976년 시집 ‘목마와 숙녀’ 출간


인제군에 위치한 '박인환 문학관'을 육군 장병들이 둘러보고 있다. 국방일보DB
인제군에 위치한 '박인환 문학관'을 육군 장병들이 둘러보고 있다. 국방일보DB


박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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