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자기감정과의 진실한 만남
병영생활 핵심은 선·후임 간 심리적 거리 뭘로 채우느냐에 달려
새로운 성장을 위해 감정의 주춧돌 다져가는 과정으로 삼아야
심리적 거리감에 따라 대인관계의 거리나 상호관계가 결정된다. 심리적인 관계 자체가 도저히 가까이할 수 없음에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다. 이러한 심리적 거리감은 대상에 따른 인식의 차이다. 계급사회인 병영에서 이등병과 장군의 관계는 해와 달의 거리만큼이나 멀다. 하지만 어느 한순간을 기점으로 서로가 밀고 끌어당기는 묘한 심리를 경험할 때 새로운 계기를 맞게 된다. 똑같은 상황임에도 사회적 거리감은 심리적 거리를 만드는 보이지 않는 두꺼운 벽을 설치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그때부터 같은 상황에 대한 컨텍스트(context) 차원에서 접근은 서로 다른 느낌과 해석의 차이를 극복할 타이밍이다.
이성과 감성적 판단의 조화
두 사람의 만남 속에 철의 장벽이 무너지듯 편한 감정을 느꼈지만, 때로는 불편하고 불안한 순간도 있었음은 상황이라는 인지적 조건과 심리적이라는 감성적인 접근의 차이다. 인간의 기억 속에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도 중요하지만, 처음부터 감성적 접근에 의해 만족도가 달라지거나 평가가 엇갈리게 될 때도 있다.
병영의 핵심은 선임과 후임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무엇으로 채우느냐에 달렸다. 빈 항아리 두 개에 지성적인 것들로 가득 채우려는 것과 감성으로 채우려는 관계의 차이다. 마치 수통에 물을 채우려는 자와 술을 채우려는 또 다른 느낌은 어쩌면 전공 선택의 갈림길에서 이과냐 문과냐의 차이와 비슷하다.
이성적인 것에 감성을 입히면 더없이 좋을뿐더러 감성에 이성을 입힌다면 심리적 거리를 좁힐 수 있는 금상첨화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보이는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함이라면 결코 오래가지 못해 서로의 민낯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본질을 추구하려는 초심을 잃지 않을 때 모든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본질이 빠진 주변 것에만 집착하다 보면 방향성을 상실한 채로 속도만 높이려 할 때 갈등충돌은 당연하다. 병영 자체가 무조건 시간 보내기 식이라면 병영의 의미와 가치는 자기와의 충돌이다. 그 상태로 전역한들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기란 절대 쉽지 않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라
개인 취향에 따라 각기 식성도 다르다. 횟집에 가면 생선회 자체만 간장소스에 콕 찍어 먹거나, 온갖 채소에 생선회 한 점 올려 쌈밥처럼 먹는 이도 있다. 곧장 질과 양에 따른 판가름이다. 삶의 본질은 얼마나 많이 먹었느냐보다, 무엇을 누구와 함께 먹었느냐의 차이다.
병영의 가치와 의미를 추구할 때 인성은 새롭게 달라진다. 단순히 머리로만 이기려는 경쟁심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지만, 본질을 꿰뚫는 지성과 감성은 내면의 풍요로움을 채우게 된다. 혼자 있는 시간마저 자세를 흩트리지 않으려고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하게 마련이다. 곧 자기 삶에 대한 본질을 추구하려는 사회적 욕구가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다. 따라서 심리적 거리를 좁히려는 의도를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려는 목적으로 삼기에 더욱 정직해진다. 혼자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에 마음의 묵은 때를 벗겨내는 것과 비슷하다. 이미 병영 자체도 양적인 것보다 질적인 병영을 추구하는 선진 군대로 변하고 있다.
병영의 본질을 가슴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냉철한 이성적 판단을 근거로 할 때 절대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주춧돌이 안정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
군에서도 카드를 사용하지만, 제휴카드 종류에 따라 온갖 보너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병영에 펼쳐진 다양한 제휴 마일리지를 선택하고 본인이 사용하고 또 채울 기회는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다. 자신을 향해 직접 말을 걸기도 하고, 새로운 열정과 도전정신을 충전하는 훈련이다.
병영생활이 일종의 수행 과정이라면 에너지를 축적하고 자기를 우뚝 세우는 주춧돌이 자리 잡는 과정이다. 철로를 새로 깔았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고속철도가 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춧돌 놓기도 쉽지 않지만, 안정된 자기 자리를 잡기까지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이, 병영은 감정의 주춧돌을 다져가는 과정이다. 그 길에서 어떤 일이든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것은 새로운 성장과 성숙을 의미한다.
심리적 거리 좁힐 때 사회적 기대 높아져
단순한 물건 하나 살 때도 신중하다. 특히 자동차나 애장품을 고를 때에는 몇 날 며칠을 인터넷 가격 비교,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사용 후기까지 꼼꼼하게 챙기게 된다.
병영에서 가장 가깝고도 멀며, 또한 멀고도 가까워야 할 것은 전우 간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일이다. 필자가 끊임없이 ‘병영에서의 핵심이 인성’이라 강조하는 것은 심리적 거리감을 줄이는 차원에서 세상이 변한다고 군대가 변하고, 군인이 변한다고 인간의 본성마저 휘둘리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최원호 서울 한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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