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러리 DMZ 식물 155마일

백당나무

입력 2018. 05. 23   16:11
업데이트 2019. 01. 17   09:31
0 댓글

봄꽃 진 후 5~6월경,  두 종류의 꽃 모여 둥근 원반 모양

9월엔 연둣빛 열매 붉은 빛으로…

사진=양형호, 국립수목원 제공
사진=양형호, 국립수목원 제공


숲 속에 핀 백당나무 꽃들을 보면 숲 속 요정들이 하얀 옷을 입고 나와 마치 부채춤을 추고 있는 듯 보입니다. 한창 녹음이 짙어질 무렵 그 속에서 피어나는 순백의 꽃 무리가 너무 정결하고 아름다워 그런 느낌을 주는가 봅니다. 


백당나무 꽃들을 처음 보면 꽃들로 만들어진 하얀 접시들이 나무 위에 얹힌 듯 보입니다. 가까이 보면 두 가지 종류의 꽃들이 모여서 그렇게 둥근 원반을 모으고 있는 것이지요. ‘왜 그런 모습일까?’ 이유를 알고 보면 백당나무 꽃들은 고울 뿐만 아니라 지혜롭기까지 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종류의 꽃들은 각각 무성화(無性花), 유성화(有性花)로 부릅니다. 가장자리에 예쁜 꽃잎 모양을 한 꽃들이 무성화이고, 안쪽에 꽃잎은 발달하지 않고 2~3㎜ 정도의 작은 꽃들이 중심에 모여 있는데 자세히 보면 다섯 장의 작은 꽃잎들이 퍼지지 않아 술잔처럼 보이는 꽃들이 바로 유성화입니다. 왜 이런 두 가지 모습을 함께 가지고 있느냐고요?

분업과 협업을 하는 것이지요. 꽃들이 고운 이유는 우리를 위해서라기보다는 곤충을 불러들여 꽃가루받이를 효과적으로 하고 결실해 후손을 만들어내기 위해서입니다. 백당나무 입장에서 여러 일을 하기보다는 가장자리의 무성화 꽃잎을 보고 숲 속의 곤충들이 찾아오면 가운데 유성화에서 실제 씨앗을 맺게 됩니다.


사진=양형호, 국립수목원 제공
사진=양형호, 국립수목원 제공


산수국을 비롯해 이런 지혜를 가지고 고도의 역할 분담을 하며 살아가는 식물이 자연에는 여럿 있어요. 이렇게 곤충들의 도움으로 인연을 맺은 꽃들은 결실해 가을이 되면 붉디붉게 익어갑니다. 그 붉은 열매 역시 아름다워 또 한 번 전성기를 맞이하는 듯싶지요. 다만, 낙엽이 질 때 빗물이 닿으면 좋지 않은 냄새가 날 수 있으니 이 부분의 관리에 주의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병영을 비롯해 공원이나 집 정원에 심는 나무들 가운데 불두화(佛頭花)란 이름의 나무도 있습니다. 잎이나 모양이 다 똑같은데 꽃들이 모두 꽃잎으로만 가득한 무성화가 달립니다. 흰 꽃들이 가득한 모습이 풍성하고 보기 좋아 많이 심어요.


불두화란 이름은 그 꽃이 둥글게 모여 있는 모습이 부처님의 머리와 같다고 해 붙여진 이름입니다. 석가탄신일이 이틀 지났지만, 이날 사찰에 갈 수 없었던 군인이라면 화단의 불두화를 불상 대신해 마음을 정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ㅤ되겠지요. 비싼 금이나 돌로 만든 불상보다 제겐 아주 아름다운 부처님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이 불두화는 원래 자연에서 자생하는 나무가 아니라는 점이죠. 사람들이 보기에 좋으라고 꽃들을 모두 무성화로 개량한 것이어서 결실을 할 수 없답니다. 사람에게 이롭게 하는 일이 자연에는 순리를 거스르는 일이 많다는 것은 언제나 진리입니다.


그래도 불두화의 처지에서는 결실해 후손을 퍼뜨릴 수 없다는 아픔은 있지만, 이 꽃들을 보며 마음을 경건히 해 자연을 소중히 하는 마음이 싹튼다면 보람일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림=이숭현 작가, 국립수목원 제공
그림=이숭현 작가, 국립수목원 제공


다시 백당나무로 돌아가서, 이 나무는 밀원(蜜源)식물로 이용됩니다. 백당나무 꽃이 피는 시기는 봄꽃은 다 져버리고 아직 여름꽃은 제때를 만나지 않아 개화한 꽃을 만나기 어려운 시기인데, 모처럼 꽃이 피어서인지 벌이 많이 찾습니다. 벌과 꽃들의 협업 덕택으로 열매가 익어가면 연둣빛에서 점차 붉은빛이 깊어갑니다. 아주 밝고 맑은 빨간색 구슬 같은 모양의 열매는 여러 개가 깔때기 모양을 이뤄 아름답습니다.


예전에 강원도 깊은 산으로 식물조사를 나갔을 때, 1000m 넘는 고개에서 능선을 타고 넘는데 무성한 덤불 속에서 백당나무가 한껏 꽃을 피운 모습과 만난 기억이 선명합니다. 아직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이른 아침의 높은 산, 이슬을 그대로 담고 있는 순백의 꽃잎이 하도 신선해 한참을 서서 바라보았지요.


만일 장병 여러분이 DMZ에서 백당나무를 만난다면 바로 그런 감동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름다운 5월이 점점 가고 있습니다. 그전에 백당나무와 만나는 행운이 있길 바랍니다.


■ 기사 원문 PDF 파일로 읽기

부채춤 추 듯 흐드러진 순백의 꽃무리

http://pdf.dema.mil.kr/pdf/pdfData/2018/20180524/B201805242001.pdf

국방일보 기획 ‘DMZ 식물 155마일’ 2018년 5월 24일자 ‘백당나무’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