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36계, 병법을 말하다

장수는 항시 노력하며 스스로에게 엄격하라

입력 2017. 12. 11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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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장원과 조호이산


제갈량 저술한 50장 6000여 자 병서

장수의 덕목·지략·용병술 주로 다뤄

엄격한 자기수양 등 ‘리더십의 교범’

 

제갈량은 적벽대전에서 볏짚을 덮은 배를 이용해 조조군으로부터 많은 화살을 얻었다.  필자 제공


제갈량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정치사상과 군사전략에서 으뜸으로 여겨진다. 『장원』은 손빈병법·36계와 함께 무경십서 중 하나로서 제갈량은 이 병서를 통해 서기 234년 8월, 54세로 죽기까지 평생 전장에서 체득한 지략을 후대에 남겼다.

장수의 리더십 교범

『장원(將苑)』은 이름 그대로 장수의 자질과 덕목을 논한다. 그래서 장수의 리더십 교범으로 불린다. 분량은 총 2편 50장 6000여 자로 손자병법과 비슷하다. 핵심은 장수의 덕목(德目)·지략(智略)·용병술(用兵術)이다. 제갈량은 삼국시대 이전 사상과 전략을 논한 논어·맹자·손자병법·오자병법과 역사서 춘추좌전·사기 등에서 빼어난 성어들을 인용했다. 이는 제갈량이 정치사상가요 군사전략가였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는 이것을 실전에 적용했고 승리를 거뒀다. 제갈량과 사마의의 지모 싸움은 전쟁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대결이었다. 사마의는 의심이 많아 치밀한 전략을 세우면서도 함부로 군사를 움직이지 않았다.

여러 사례에서 취사용 솥을 이용한 전술은 다음과 같다. 2계 위위구조 사례에서 손빈은 감조법(減조法·아궁이를 줄여 가는 전술)으로 방연을 꾀었다. 반면 제갈량은 증조법(增조法·아궁이를 늘려 가는 전술)으로 사마의의 추격을 벗어났다. 그는 231년 4차 북벌로 기산에 출병했다. 그러나 구안의 모함으로 유선으로부터 회군 조서를 받았다. 제갈량은 사마의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다섯 갈래로 나눠 철군했다. 그러면서 아궁이를 군사 1000명에 아궁이 2000개, 다음 날은 3000개, 그 다음 날은 4000개로 늘렸다. 사마의는 매복을 의심하고 추격하지 않았다.



장수의 전투지휘

『장원』은 책의 많은 장에서 장수의 리더십을 논하고 있다. 1편 논비(論備·미리 준비)의 4장 장재(將材·장수 자질)∼16장 장계(將誡·작전에 만전을 기함), 24장 선장(善將·상벌기준) 등을 통해 제갈량은 장수의 중요한 덕목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오강(五强·5개 덕목)은 절(節·절도)·효·신의·침려(沈慮·깊이 배려)·역행(力行·노력)이다. 그리고 장강자면(將强自勉: 장수는 스스로 엄격하고 수양)하고 약제강 유제강(弱制强 柔制剛: 적은 병력으로 강한 적을 제압하고 유연함으로 거센 적을 제압)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2편 논기(論機·전술을 논함)는 26장 병세(兵勢·유리한 형세 조성)부터 50장 북적(北狄·북쪽 흉노족 등)까지 장수의 지략을 제시하고 있다. 중요 내용으로 27장에서는 승패의 징후를 살펴야 한다고 했고, 31장 후응(後應)에서는 적의 징후를 잘 살피고 병력을 운용해야 한다고 했다. 승병선승이후구전(勝兵先勝以後求戰: 승리하는 군대는 승산을 확인한 후 전쟁을 함)과 같은 뜻이다. 33장 응기(應機·승리 시점을 포착)에서 맹수실험(猛獸失險)은 15계 조호이산(調虎離山)과 뜻을 같이한다. 맹수가 근거지인 험한 지형을 벗어나면 어린이도 창을 들고 공격할 수 있다고 했다.

끝부분은 촉나라를 중심으로 동이(東夷·동쪽 오랑캐)·남만(南蠻·남쪽 광시성 이남 민족)·서융(西戎·서쪽 후이족)·북적과 관련해 종족별 특성과 대비책을 제시했다.



유비무환과 견리사의

『장원』이 장수의 리더십을 주로 논하고 있으나 필자는 17장 계비(戒備·경계하며 대비)에 주목한다. 국가나 군이 위기에 처했는데도 두려워할 줄 모르면 크나큰 재앙이 초래된다는 것은 역사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제갈량은 이 장에서 ‘若乃居安而不思危(약내거안이불사위) 寇至不知懼(구지부지구), 燕巢於幕(연소어막) 魚遊於鼎(어유어정)’이라고 했다. “만일 편안할 때 위기를 생각하지 않고, 적이 문 앞까지 쳐들어왔는데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이는 마치 제비가 위험한 줄도 모르고 군막 위에 둥지를 틀고, 물고기가 솥 안에서 헤엄치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다.

그리고 21장 근후(謹候·엄격하고 세심하게 살핌)에 나오는 견리사의 이신순국(見利思義 以身徇國: 눈앞의 이익을 보면 먼저 의를 생각하고 국난의 위기 때는 나라를 위해 헌신)도 마음에 새겨야 한다. 안중근 의사의 글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危授命)’과 같은 의미다. 남산 안중근 기념관 앞 비석에 이 글귀가 있다. 그리고 북측 산책로에는 제갈량 사당인 와룡묘(臥龍廟)가 있다. 안보를 생각하며 함께 둘러보자.

<오홍국 전쟁과평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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