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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성과·트럼프 코드’ 등에 업은 헤일리, 입지 쑥쑥

입력 2017. 12. 10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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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트럼프 행정부 ‘급부상’ 니키 헤일리…인도계 2세 ‘대북강경론자’


32세에 정계 입문… 탁월한 의견조정 능력·강한 정치적 신념 내세우며 두각

北 6차 핵실험 때 9일 만에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만장일치 이끌어내

후임 국무장관 후보로 급부상… 워싱턴 정가에선 최초 여성 대통령감 평가

 



“전쟁이 난다면 북한 정권은 완전히 파괴될 것…실수하지 말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이 아니다. 북한이 지난달 29일 ICBM급 ‘화성-15형’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자, 트럼프 대통령 발언과 ‘싱크로율 100%’를 자랑하는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 대사가 한 경고다.


헤일리 대사는 누구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을 잘 읽고 이를 국제사회에 정확하게 전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차기 국무장관 후보군으로도 입길에 오른다.

헤일리 대사가 트럼프 행정부에서 주목을 받는 데엔 무엇보다 그의 탁월한 ‘성과’가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헤일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최대 안보 사안인 북핵·미사일 문제에 있어 성과를 이끌어 낸 유일한 외교관이다. 지난 9월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감행하자 9일 만에 중국과 러시아를 압박해 만장일치로 석유제품 수입 금지 등이 포함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2375호를 이끌어 냈다. 결의안 2375호를 놓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거의 완벽한 것”이라며 “중국과 러시아도 이를 성실히 이행하겠다고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워싱턴 정가에선 안보리 대북제재안을 놓고 헤일리 대사가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평가하는 분위기다.

앞서 7월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최대 외교 성과로 인정받는 이란 핵 합의에 대한 ‘불인증’을 주도해 오바마의 안보정책에 불만을 품고 있는 트럼프를 만족시켰다. 헤일리 대사는 당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란의 핵 협정 불인증의 기반을 다지겠다”고 자청해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방문하는 등 대외 설득에 나섰고, 언론 인터뷰를 통해 ‘트럼프의 스피커’로서 역할을 톡톡히 했다. 헤일리 대사는 지난 10월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이란 핵협정을 검토하는 모든 이유는 북한 때문”이라며 “이란이 북한 다음이 되도록 놔두지 않겠다”고 발언, 북한과 이란을 싸잡아 비판했다.

헤일리 대사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가 ‘100% 싱크로율’을 자랑할 정도로 트럼프 대통령과 ‘코드’를 정확히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과 대화할 시간은 지났고, 북한이 국제평화에 가하는 위험은 이제 모두에게 명백하다.”(7월 30일) “우리는 무엇이든 할 준비가 돼 있다. 북한이 도발을 계속할 경우 군사적 조치도 검토할 수 있다.”(8월 5일) “북한 김정은은 전쟁을 구걸하고 있다. 미국은 결코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우리 인내에는 한계가 있다.”(9월 4일)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는) 엄포가 아니다. 북한이 무모한 행동을 계속한다면, 미국은 자신과 동맹국을 보호하기 위해 방어에 나설 것이며 북한은 파괴될 것이다.”(9월 17일) “우리는 북한에 대화를 애걸하지 않을 것이고 북한을 설득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내세우지도 않을 것이다.”(10월 15일) 등 헤일리 대사가 최근 몇 달 동안 내놓은 경고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완전파괴’ 발언에 필적할 정도로 강도 높은 수위였다.

헤일리 대사는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9월 유엔총회에서 “미국과 동맹을 방어해야 한다면 북한을 ‘완전파괴’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자 “트럼프 대통령이 정직했으며 그의 직설화법이 매우 잘 이해된다”며 일단 대통령을 두둔한 뒤 “미국은 북한을 다루려는 노력에 있어 대화와 제재 등 모든 외교적 수단들을 소진해왔지만 (외교적 수단을) 계속하겠다”고 설득, 세련된 외교를 펼쳤다. 직업 외교관으로서의 경험이 전혀 없는 헤일리가 유엔대사로서 외교력을 발휘하는 데 대해 워싱턴 정가에선 그의 정치적 경험이 배경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젊은 정치인으로서 명석한 상황 인식, 탁월한 의견 조정 능력, 무엇보다 강한 정치적 신념이 그를 탁월한 외교관으로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다.

헤일리 대사의 별명은 ‘용 도살자(dragon slayer)’다. 32살 때인 2004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하원의원 선거에서 지역 거물인 래리 쿤 의원을 쓰러뜨리고 승리했을 때 붙은 별명이다. 쿤은 1730년대부터 주(州) 핵심 지역인 렉싱턴에서 거주해온 ‘실세 가문’ 출신인 데다 30년간의 군 생활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행에 옮긴 다선 의원이었다. 발로 뛰면서 그런 그를 누르고 승리를 쟁취해 ‘용 도살자’ 별명을 갖게 됐다.

헤일리 대사는 1972년 인도 펀자브주 출신 이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님라타 란다와 헤일리로 정치에 입문했을 때 니키 헤일리로 바꿨다. 인도 시크교도인 그의 부친 아지트 싱 란다와는 대학교수이고, 모친 라지 카우르는 인도 델리대학에서 법학 학위를 받았지만 여자란 이유로 판사로 임용되지 못하고 미국에 건너와 조그만 의류매장을 열었다. 헤일리는 클렘슨대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후 모친이 운영하는 의류매장에서 회계업무를 봤다. 이후 최고재무책임자(CFO)에 올라 이 회사를 수백만 달러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헤일리 대사는 이를 발판으로 약관 26세의 나이에 인구 8만 명의 주(州) 오렌지버그카운티 상공회의소 이사회 멤버, 렉싱턴 상공회의소 이사회 멤버를 거쳐 2004년 전미여성사업가협회 회장에 올랐다. 그해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하원의원에 당선됐고, 2010년 38세의 나이로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최초의 여성 주지사이자 두 번째 인도계 주지사에 선출됐다. 어릴 때부터 시크교도였던 그는 감리교로 개종했고, 공화당 내에서 보기 드문 인도계 이민자 2세 정치인으로 일찍이 주목을 받았다. 2012년 대선 때엔 롬니 공화당 대선후보가 부통령 후보로 헤일리를 지명하려 했으나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직을 버릴 수 없다며 거절했다. 주지사 연임에 성공한 헤일리는 주지사 임기 중인 지난해 말 트럼프 대통령의 유엔대사 제안을 수락했다.

헤일리 대사를 정치로 이끈 인물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었다. 헤일리는 언론 인터뷰에서 “옳은 일을 안다면 (그게) 옳은 일을 해야 하는 유일한 이유라는 힐러리의 2003년 연설을 듣고 정치에 입문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자신의 롤 모델은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라고 털어놨다. 그는 미국 공화당 보수층의 조세저항운동인 티파티 운동에 열정적으로 뛰어들었고, 주지사 시절인 2015년 찰스턴 흑인교회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자 주 의사당 앞에 게양된 남부연합깃발을 전격 철거했다. 이후 다른 주지사들도 헤일리의 남부연합깃발 철거에 동참하며 헤일리의 정치적 리더십을 보여줬다.

현재 미국에선 대외정책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엇박자를 내고 있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경질설이 나온다. 뉴욕타임스·CNN 등 미국 주류 언론이 내년 1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1주년을 맞아 틸러슨 장관을 경질할 것으로 보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후임 국무장관으로 대북 강경파인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가장 유력시되고 있지만, 헤일리 대사 또한 거론되고 있다. 무엇보다 헤일리가 트럼프 대통령과 코드가 맞고 대북문제와 유엔외교에 성과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신뢰하는 보수 매체인 폭스뉴스에서 이를 보도해 무게감이 실렸다. 보도에 따르면, 헤일리가 국무장관으로 이동하고 이방카 트럼프의 최측근인 디나 파월 백악관 국가안보부보좌관이 후임 대사를 맡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무장관에 폼페이오 국장을 지명하더라도 헤일리가 최초의 여성 대통령감이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태형 뉴스1 국제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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