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한글장수의 무작정 세계일주

3달러 공용 룸에서 먹는 라면의 맛과 재미

입력 2017. 11. 30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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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유쾌한 아이, 엘바‘



 



설마 방이 없을까?’ 했더니

결국 이 사달이 나버려

3달러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공용 룸에 놓인 매트리스로

 

오랜만에 먹는 달걀 들어간 라면은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진수성찬’

냄새 맡고 달려온 엘바는

딱 붙어 ‘라면 한 입’ 달라고 졸라     

 


오랜만에 돌아간 키토. 나의 흔적이 남아있는 수크레 호스텔에 도착하자 호세가 나를 반겨주었다. 그는 나를 기억하는 듯 아빠 미소를 보여주었다. 반가움도 잠시, 문제가 발생했다. 빈 방이 없었던 것. 호세는 고민하다 공용 룸에 놓인 매트리스를 나에게 제공해주었다. 짐을 정리한 나는 쉬려고 소파가 있는 곳으로 갔는데 그곳에는 아르헨티나 출신 가족이 있었다. 그중 스파이더맨 분장을 한 아이의 이름은 엘바였다. 엘바와 나는 곧 장난을 칠 정도로 친해졌다. 놀다 보니 허기가 져서 라면을 끓여 먹으려고 주방으로 갔다. 옆으로 온 엘바에게 라면을 조금 주었다. 그는 한국 라면의 매운맛에 눈물을 흘렸다. 내가 준 우유를 마시고 겨우 울음을 그친 엘바는 나를 한 대 때리고는 가족이 머무는 방으로 갔다. 그렇게 키토의 첫날이 엘바 덕분에 행복하게 지나갔다.


과야킬을 떠나 키토로

켈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과의 추억을 뒤로하고 과야킬을 떠나는 오늘,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그런 날씨에 터미널로 향하니 절로 기분이 울적해졌다.

키토로 가는 버스는 15분에서 30분 간격으로 있기 때문에 따로 예약하지 않았다. 표를 사기 위해 이동하는데 위쪽에서 물이 떨어졌다.

알고 보니 최신시설처럼 보이는 과야킬 터미널의 천장에서 군데군데 비가 새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런 것이 바로 부실공사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쳐다봤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티케팅을 하러 갔다. 마침 바로 탑승할 수 있는 버스가 있었다. 그렇게 오전 9시에 버스를 탔다. 키토까지는 8시간 정도 소요될 예정이었다.


다시 방문한 수크레 호스텔

키토 터미널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리는 방송에 잠이 깬 나는 창문 밖을 바라봤다.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노을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터미널에서 빠져나와 곧바로 목적지로 향했다. 바로 지난 10월에 머물렀던 수크레 호스텔이다.

대중교통을 타고 30분 정도 이동하니 눈앞에 익숙한 풍경들이 펼쳐졌다. 버스에서 내린 나는 금방 수크레 호스텔에 도착했고 입구에서 그리웠던 호세를 만날 수 있었다.

호세 역시 내 얼굴을 기억하는지 아빠 미소로 반겨주었다. 나는 호세에게 방을 하나 달라고 이야기했다.

“없어!”

호세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설마 방이 없을까?’ 하며 왔는데 결국 이 사달이 나버린 것이다. 곰곰 생각하던 호세는 나를 쳐다보면서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그 손가락이 향한 곳은 공용 룸 한쪽에 놓여 있는 매트리스였다.

이곳 말고는 잘 데를 생각해놓지 않았고, 숙박할 다른 곳을 찾으러 다니기가 귀찮았으므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다행히 내일이면 방이 나온다고 했다. 공용 룸에서 자는 것이 못내 마음이 쓰였던지 호세는 3달러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잠자리를 제공해주었다.

공용 룸 한쪽에 마련된 보관함에 짐을 넣고 난 뒤 3인용 소파로 향했다.

그곳에는 프랑스 친구 덕에 이곳에 눌러앉게 되었다는 아르헨티나 가족이 있었다. 부부와 한 아이였는데 아이의 이름은 엘바였다.


흥이 넘치는 아이, 엘바

스파이더맨 분장을 한 엘바는 나를 보자마자 순식간에 달려왔다. 그리고 신기한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관찰했다.

나는 그간 배웠던 스페인어로 엘바와 대화를 시도했고 다행히 내 말을 잘 이해했다.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됐다. 물론 이후가 힘들긴 했지만 말이다.

엘바는 나에게 업히기도 하고 발차기도 하면서 장난을 쳤다. 약간 힘들었지만 엘바가 귀여운 미소를 지으면 피로가 확 날아가 버렸다.

한 시간 정도 놀았을까? 배가 고파져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 요량으로 주방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뜻밖에 한국인을 만났다. 이름은 수호였다.

수호는 여기서 스페인어를 배우고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1년 동안 여행을 할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달걀을 하나 건넸다. 라면에 넣어 먹으라는 말과 함께.

오랜만에 달걀이 들어간 라면은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진수성찬이었다. 휘파람을 불면서 냄비를 들고 거실로 나간 나는 접시에 라면을 조금씩 덜어 먹었다.

냄새를 맡고 달려온 엘바는 어느새 내 옆에 딱 붙어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라면 한 입만 달라고 했다.

다소 매울 것이라고 생각돼 엘바에게 설명을 했지만 그는 한사코 먹겠다고 했다. 엘바 엄마한테 허락을 받고 아주 조금 라면을 덜어 주었다.

신이 난 엘바는 내가 준 것을 순식간에 입에 다 넣어버렸다. 그러고는 얼굴색이 변하더니 매워서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엘바에게 우유를 주었다.

울음을 그친 엘바는 나를 한 대 때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를 보면서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키토의 하루가 웃음소리로 저물었다. <추윤호 캘리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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