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전쟁 영화 속 영웅

사회로 돌아온 람보 "난 이제 뭘해야 하죠"

입력 2017. 11. 28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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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람보(First Blood), 1982 감독: 테드 코체프/출연: 실베스터 스탤론



 

전쟁영웅이라도 사회 복귀가 순조로울 수 있을까? 국가의 부름을 받고 낯선 이국땅에서 적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 전투를 치르며 용맹성·민첩성과 전우애로 혁혁한 공을 세운 병사라도 막상 사회에 진입했을 때 낯섦·어색함과 불편함을 극복하고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전우의 죽음, 개인적인 트라우마 등 전쟁의 상흔을 안고 있는 병사라면 더 어려울 것이다. 귀환 병사의 사회 재진입이 성공하려면 참전용사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이해와 배려, 포용력이 선행돼야 한다.


 

 

‘전쟁영웅의 사회복귀’라는 주제 다뤄

영화 ‘람보’는 전쟁영웅의 사회 복귀라는 다소 심각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데이비드 모렐의 소설 『혼자뿐인 군인』이 원작인 이 영화는 베트남전 종결 후 미국 사회에 적응하려는 참전 병사의 분노와 절규를 담은 진지한 사회 드라마이자 액션영화다. 국가와 사회가 귀환한 참전용사를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서스펜스를 느끼게 하는 추격전과 CG가 아닌 사실적인 액션이 돋보이는 영화다.

영화는 베트남 전쟁 귀환병 존 람보(실베스터 스탤론)가 전우를 찾아 시골 마을에 가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전우는 전쟁에서 노출된 고엽제로 암을 앓다 죽은 뒤였다. 이때 마을 보안관 티즐은 식당을 찾는 람보에게 대뜸 마을을 떠나라고 윽박지른다. 람보의 인상을 보고 문제를 일으킬 듯한 인물로 판단한 것이다. 보안관은 람보를 순찰차에 태워서 외진 곳에 내려놓는다. 하지만 람보가 다시 마을로 다시 향하자 그는 다짜고짜 방랑죄와 칼 소지 혐의로 체포해 연행한다.

보안관들은 취조실에 끌려온 람보에게 취조에 비협조적이라며 고문에 가까운 행동으로 모멸감을 준다. 면도기를 얼굴에 들이대자 베트남전에서 고문당한 기억이 되살아난 람보는 보안관들을 맨손으로 때려눕히고 산속으로 도주한다. 보안관 일행은 헬기에 저격수까지 동원해 람보를 쫓고, 그 소식을 접한 베트남 전쟁 시절의 상관 트로트먼 대령이 찾아온다.


후속 시리즈와 달리 폭력 극도로 자제

람보를 조회한 한 보안관은 “상대를 잘못 고른 것 같다. 그는 베트남전 참전용사고 그린베레 출신인 데다 의회명예훈장까지 탄 전쟁영웅이다”라고 말한다. 아닌 게 아니라 람보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베테랑 군인이다. 달랑 칼 하나만 갖고 산속으로 숨은 람보는 마치 베트남 정글에서처럼 그 칼로 나무를 깎아 화살촉을 만들고 함정, 덫 등을 직접 만들어 저항한다. 지역 방위군이 총출동하고 헬기가 동원돼도 신출귀몰한 람보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베트남전에서 어떻게 살아남아 전쟁영웅이 됐는지를 아이러니하게도 조국에 돌아와 보안관들을 상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982년 개봉한 람보 1편은 후속으로 만들어진 람보 시리즈와는 다르다. 1편의 람보는 그린베레 출신으로 뛰어난 전투기술을 보유했으면서도 폭력을 극도로 자제한다. 람보가 직접 죽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심지어 자신을 괴롭혔던 보안관을 죽일 수 있는 상황에서도 ‘해칠 의도가 없다’고 밝힌다. 전쟁의 상처에 괴로워하는 참전용사가 사회의 냉대와 박해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불가피한 폭력만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반면 ‘람보 2’로 이어지는 시리즈는 폭력을 과하게 사용해 람보를 근육질의 슈퍼 영웅으로만 묘사했다.




“전장선 명예 있었지만 이젠 아무것도 없다”

영화 주인공 실베스터 스탤론은 1970년대 말 영화 ‘록키’로 스타덤에 오른 할리우드 간판 배우였다. 당시 CG가 아닌 사실적인 액션 연기를 구사해 액션 배우로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 그는 또 ‘록키’ 극본을 직접 썼는데, 이 영화에서도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다. 단순한 근육질 액션 이미지와는 달리 작가적인 소양도 갖춘 스타였다.

영화 클라이맥스에서 람보가 트로트먼 대령에게 하는 대사가 관객의 콧등을 시큰하게 한다. “제대할 때 공항에서 살인마에 인간쓰레기 취급을 당했다. 전장에서 우린 명예가 있었지만 여기선 아무것도 없다. 거기선 헬기뿐만 아니라 탱크도 조종할 수 있었다. 백만 달러짜리 장비도 다뤘다. 그러나 돌아와 보니 주차장 종업원조차 할 수 없었다! (총을 집어던지고 눈물을 쏟아내며) 돌아오니 아무도 없었다. 내 전우들 모두 어디 있죠? (중략)…7년간 매일 악몽을 꾼다. 지금은 어느 누구와도 얘기할 수 없다.”


재향군인에 대한 대우 다시 생각하게 해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었지만 돌아와선 사회에 적응할 수 없었던 재향군인들의 절박함을 호소하는 말이다. 당시 베트남 참전용사들에 대한 냉대와 무관심이 미국 사회에만 있었을까? 베트남전에 참전한 우리 병사들의 대우는 어땠는지 한 번쯤 되돌아봤으면 한다. <김병재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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