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한국의 여성독립운동가들

거친 바다와의 사투보다 더 거셌던 대일투쟁

입력 2017. 10. 15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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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제주해녀항일운동


‘일제의 부당함·암울한 민족 현실’에 울분 폭발

1932년 여성단체 최초·최대 항일운동 전개

해녀항일운동기념탑 세워 저항의 외침 기려

 


 




2016년 11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제주 해녀문화(Culture of Jeju Haenyeo)’. 산소탱크 없이 바닷속에서 해산물을 채취했던 해녀의 강인함은 일제강점기 해녀항일운동에서도 그 진모(眞貌)가 드러난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품고 있는 제주

육지와 사뭇 다른 제주. 필자는 여러 해 전 여성항일운동 자료조사차 제주를 찾으면서 제주해녀의 활약에 주목하게 됐다. 제주는 역사적·지리적으로 중요한 지역일 뿐만 아니라 천혜의 자연환경과 우수한 해산물은 일찍부터 상품가치를 인정받고 있었다. 1900년경부터 일본 무역상이 제주해산물을 주요 수입원으로 지목하면서 해산물과 함께 수급을 담당하는 제주해녀에 대해 관심이 높아졌다. 제주해녀가 주목받을수록 해녀의 활동지도 확대됐는데 국내는 물론 일본과 중국의 다롄, 칭다오, 대만, 러시아 인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에서 생산 활동을 했다.



생계 위협·나라 잃은 설움 참담해

제주해녀들이 부당한 대우와 관련 기관의 부패로 생계를 위협받았던 시기도 있었다. 바로 일제강점기였다. 나라를 빼앗긴 뒤 해녀를 모집하고 감독하는 객주도 바뀌었다. 그러자 일제의 침탈과 비리, 부당한 착취 및 결탁으로 해녀의 노동력 착취가 극대화됐다.

제주해녀들은 스스로를 구제하고 보호하기 위해 1917년 제주도해녀어업조합 설립을 추진했다. 1920년 4월 16일에 조합 설립 인가를 받은 뒤, 제주해녀들은 활동 기반을 조직적으로 조성하려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일제는 제주경제에서 독보적 수익 창출원이었던 제주해녀를 대상으로 입거 수수료와 각종 세금을 과하게 징수하기 시작했고, 경제적 압박을 가하면서 해녀노동력 착취의 강도를 더욱 높였다.

해녀들은 그런 부당한 현실에서도 삶의 희망을 찾기 위해 애를 썼지만 나라 잃은 설움과 분노와 참담함은 커져만 갔다. 1932년 제주해녀들은 최초의 여성단체 항일운동으로 일제에 맞섰다. 그런 제주여성의 강인함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제주예청’의 당당함이 저항정신으로

예부터 제주는 섬 지역의 특성상 여성의 적극적인 활동이 절실했다. 그래서 조선시대부터 제주에는 여군(女軍)의 성격을 띤 예청(女丁)이 있었다. 왜구의 침략에 대비해 자발적으로 방어에 나선 여성으로 구성된 단체였던 제주예청은 이미 남사록(1601)에 “성을 지키기 위해 건강하고 씩씩한 부녀자를 뽑아 화살받이터에 보내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이미 왜적을 방어하는 일선에서 나름의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그런 강인함이 제주여성을 일제의 부당함에 당당히 맞서게 했는지도 모른다.

1932년 1월 12일. 제주시 세화리 장터에 인근 해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제주시 구좌면 하도리·세화리·종달리·연평리와 정의면의 오조리·시흥리 등 6개 마을에 거주하는 해녀들이었다. 이들은 일제의 부당한 착취 현실에 맞서기 위해 1월 7일 300여 명이 하도리에서 세화리 장터까지 시위 행진을 한 데 이어 2차 시위를 하기로 한 것이다. 마침 제주에 부임한 제주도사 다쿠치 데이키가 세화장날 시찰에 나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래서 해녀들은 본격적인 해녀항일투쟁을 ‘세화장날’로 맞춘 것이었다.

제주해녀들은 제주도사에게 공식 항의하며 부당한 상황을 고발했다. 그리고 11개 항으로 된 개선 조건을 제시했지만 그들의 뜻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자 1월 24일 해녀 1500명은 세화 주재소를 습격하는 등 적극적으로 저항 의지를 피력했다. 당시 해녀항일투쟁의 주도자였던 김옥련(하도리 소녀회 회장)과 부춘화(하도리 청년회 부녀부장), 부덕량(해녀조합 시위 주도 해녀)은 시위 현장에서 체포돼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이후 제주해녀를 비롯해 많은 제주민이 일제에 항거하는 저항운동을 펼쳤다.

제주해녀항일운동은 단순한 저항시위가 아니었다. 제주 여성의 생존권 확보라는 의미를 넘어서 일제의 부당함과 암울한 민족의 현실에 울분이 폭발한 것이었다. 그렇게 한국여성단체로는 최초의 항일운동인 해녀항일운동이 제주에서 전개됐다.

우리나라 최남단에 위치한 제주해녀의 저항은 국내 최대의 여성항일운동으로서 일제에 맞서 싸우는 가열찬 한국 여성의 모습을 대변했다.

현재 구좌읍 상도리에는 해녀항일운동을 기억하기 위해 해녀항일운동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제주해녀항일운동! 그 저항의 외침에는 제주 여성의 소리뿐만 아니라 한국 여성의 강인한 저항정신과 민족의 숨결이 담겨 있다.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장 / 부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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