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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용맹한 전사는 가난과 힘겨운 싸움을…

김용호 기사입력 2017. 07. 01   03:16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마모 케브렛 옹

 “첫째 적은 공산군, 둘째는 추위였다”

1952년 파병 지원…강원도 전선 배치

귀국 후 사회주의 정권 들어서 고된 삶

6·25 참전, 내 인생 가장 의로운 선택”

 

최악 가뭄에 극심한 식량난까지 덮쳐

자식들 모두 실직…하루 한 끼도 기적

 



지구촌이 기상이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아프리카 지역은 엘니뇨 현상으로 수년간 사상 최악의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이로 인해 5000여만 명이 식량난으로 아사 직전의 위기에 놓여 있다. 6·25전쟁 당시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전투병을 파병한 에티오피아도 극심한 가뭄으로 인한 식량난이 재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인구의 85%가 농업에 종사하는 에티오피아는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이상과 수출·고용의 90%가 농업 부문에서 발생한다. 가뭄으로 식량뿐 아니라 먹을 물도 부족해 물 전쟁이나 식량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수년간의 수해와 극심한 가뭄에 열대 고온현상까지 겹치면서 식량 생산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로 인해 농토는 폐허가 됐고, 수리시설은 파괴돼 농작물 수확은 꿈도 꾸지 못한다. 자연재해에 속절없이 당한 국민은 살길이 막막하다. 아프리카 지역에서 공통으로 겪는 가뭄이지만, 특히 에티오피아에서 심각하다.

 

6·25전쟁에 참전한 마모 케브렛 옹이 기관총을 거치해 놓고 망원경으로 적 동향을 살피고 있다.

 


에티오피아 정부도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가뭄을 해소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재정난까지 겹치면서 외부 원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저소득층이다. 대부분 저소득층인 농민들은 소비 위축으로 변변한 일자리 구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낙후된 데브레 버한은 가뭄과 식량난의 융단폭격을 받아 초토화됐다. 가난에 익숙한 이 지역 사람들은 전통주 ‘아레케’를 빚어 가족의 생계를 꾸리고 있다.

6·25전쟁 참전 노병인 마모 케브렛 옹의 가족도 다르지 않다. 그는 부인(베자 워르케)과 아들 하나, 딸 둘, 그리고 손자·손녀와 살고 있다. 그는 최악의 가뭄을 겪으면서 7명의 가족이 굶기를 밥 먹듯 해 지금까지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고 말했다.

 


마모 케브렛 옹이 군 생활을 하며 받은 메달들.

 

폭우 속에 집이 침수되지 않도록 가족이 빗물을 퍼내고 있는 모습.

 


“최근 몇 년간 가뭄으로 주식인 테프(에티오피아 사람들의 주식)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어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식들은 모두 일자리를 잃었어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발버둥 치고 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하루 한 끼만이라도 해결할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아 더 걱정이에요.”

올해가 최대 고비라는 마모 케브렛 옹은 지역주민들 모두가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어 외부세계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모 케브렛 옹은 에티오피아 암보에서 태어났다. ‘사막 내의 경계선’이라 불리는 암보는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100㎞ 떨어진 시골이다. 성년이 될 때까지 암보에서 가축을 돌보면서 자란 그는 1950년 친구를 만나러 아디스아바바를 방문했다가 인생이 바뀌었다. 가난이 지겨웠던 그는 발전한 수도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도시에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이 결심이 그를 군인의 길로 안내했다. 그는 1952년 황제근위대인 케부르 제베그나(Kebur Zebegna)부대에서 군번줄을 받고 군인의 삶을 시작했다.

신병 생활에 적응할 무렵 1952년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대한민국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2기 강뉴부대 파병에 지원했고, 운 좋게 선발되는 영광을 안았다. 6개월 동안의 현지 적응훈련을 마친 그는 42일간의 항해 끝에 부산항에 도착했다. 그는 당시 상황을 ‘전쟁 같은 항해’였다고 회상했다.

전쟁 때 수도였던 부산에서 최전방 강원도로 실전 배치에 앞서 기관총 수리와 전술 등 실전에 필요한 교육훈련을 받았다.

“파병 전 한국이 추운 곳이라고 교육받았지만, 막상 전장에서 몸으로 느끼는 체감온도는 살인적이었어요. 얼음눈 등 평범한 게 하나도 없었어요. 산은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였고, 바람은 어찌나 강한지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듯했어요. 험준한 지형 탓에 언제 어디서 적이 공격해 올지 몰라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어요. 우리의 첫째 적은 공산군이고, 둘째 적은 추위였어요.”

무사히 한국 파병을 마치고 에티오피아로 돌아왔을 때 마모 케브렛 옹의 월급은 30비르였다. 이는 당시 큰 금액이었다. 이후 6년간 아디스아바바 케부르 제베그나 부대에서 생활하다 데브레 버한으로 배치돼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평온한 상황은 거기까지였다.

1974년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중령을 중심으로 한 군의 소장파 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에티오피아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정권이 바뀐 직후 6·25전쟁에 참전했다는 이유 하나로 군복을 벗고 제대로 된 일자리는 찾을 수 없었다. 이후 마모 케브렛 옹은 변변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평생 일용직을 전전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6·25전쟁 영웅의 집은 함석지붕에 구멍이 뚫려 밤하늘의 별이 보일 정도로 낡았다. 그러나 그의 삶은 어렵고 힘들었지만, 가족들이 있어 행복했다. 또 그가 선택한 6·25전쟁 파병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의로운 선택이었다고 자랑했다.

그는 현재 국제개발협력 비정부기구(NGO) 월드투게더에서 지원하는 생활지원금으로 노후를 보내고 있지만, 상황은 매우 어렵다. 자식들이 모두 직장을 잃어 현재 살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에는 마모 케브렛 옹처럼 6·25전쟁에 참전한 노병이 200여 명 생존해 있다. 굶주림과 부상 후유증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전쟁 영웅들에게 따뜻한 손길이 절실히 필요하다.



후원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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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기자 < yhkim@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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