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그대 향한 사랑, 나라사랑으로

“아버지의 뒤를 따라… 공군 부사관 재입대 준비 중”

박지숙

입력 2017. 06. 07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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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故) 오충현 공군대령 아들 오상철 예비역 육군병장


2010년 3월 2일 내가 고3이 되던 날

하늘로 떠나신 아버지 짙은 해무에 비행할

후배 걱정에 동승하셨던 분…

 

‘내 죽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해달라’는  아버지의 일기

가슴 깊이 새긴 채 공정통제사·항공구조대 목표로

아버지가 지키던 조국의 하늘에서 함께 하고파

 

 



“후회할 짓 하지 마라.” 친구들은 입대를 앞둔 그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국가유공자 아들이면 6개월 보충역(공익근무)으로 대체복무가 가능(형제가 여럿일 경우 1명만 해당)하다는 사실을 신체 검사장에 가서야 알았어요. 담당자분이 현역으로 입대하겠느냐고 묻더군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러겠다고 대답하니 무척 당황하셨어요. 저 같은 경우는 처음 본다면서….”



공군 입대하면 부대에 불편 끼칠까… 육군 복무 택해

오상철 예비역 육군병장의 아버지 고(故) 오충현 공군대령(추서계급·당시 공군18전투비행단 105전투비행대대장)은 2010년 3월 후배 교육을 위해 훈련기에 탑승했다가 순직했다. 특히 나라사랑과 군인정신을 강조한 일기장이 한 권의 책 『하늘에 새긴 영원한 사랑, 조국』으로 발간돼 공군인은 물론 많은 국민에게 감동을 주었다.

‘참군인의 표상’으로 추앙받는 고 오 대령의 아들 오상철 예비역 병장에게 군 복무는 선택 사항이 아니었다. 또한 그는 주변의 예상을 깨고 공군이 아닌 육군 복무를 택했다.

 

고 오충현 공군대령의 생전 모습.

 


“공군에 입대하면 분명히 저를 알아보는 분들이 많이 계실 테고, 의도하지 않게 특별한 관심이나 대우를 받게 되면 다른 병사들이나 부대에 불편을 끼칠 거 같았어요. 그리고 최전방에서 복무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는데 운 좋게(?) GOP 부대에서 복무할 수 있어서 그것도 저에겐 행운이었어요.”

조용한 입대와 평범한 군 생활을 마무리하고 전역한 오상철 예비역 병장을 지난달 31일 아버지가 계신 대전현충원 국가유공자 묘역에서 만났다.

 

고 오충현 공군대령의 묘역에는 그의 절절한 나라사랑이 담긴 일기를 바탕으로 한 평전 『하늘에 새긴 영원한 사랑, 조국』 책자가 조각돼 있다.

 


묘역의 꽃과 태극기를 준비해간 새것으로 바꾸고 정리하는 손길은 익숙해 보이면서도 경건했다. 그는 아버지 묘소 참배를 마치자 아버지와 함께 순직한 동료들의 묘소를 참배하고 오겠다며 기자에게 양해를 구했다. 25살 청년에게 쉽게 찾아보기 힘든 진중함은 인터뷰 내내 모든 행동과 말투에서 배어 나왔다.

“3월 2일, 고3이 되던 날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참 믿기 힘든 일이었죠. 사고 전날까지 아버지가 대대장으로 계셨던 부대를 둘러보고 외식도 하고 가족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냈거든요. 비행 계획이 없었지만 짙은 해무에 비행할 후배 조종사가 걱정돼 동승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생전 처음으로 ‘아버지가 군인이 아니었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고, 서둘러 부대장을 치르려 하는 것 같아 못마땅하기도 했어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었던 ‘아버지의 일기’

실의에 빠진 그에게 어머니는 아버지가 남긴 일기를 보여주셨다.

‘내가 죽으면 우리 가족은 내 죽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담담하고 절제된 행동을 했으면 좋겠다…. 조국이 나를 위해 장례를 치러주는 것은 나를 조국의 아들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족의 슬픔만 생각하고 경거망동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일기를 본 그는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한다.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려고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담담히 보내드리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18살 어린 청년에게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부재는 쉽게 추스르기 힘든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제 꿈은 아버지를 따라 전투기 조종사가 되는 거였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공군사관학교를 준비하고 있었고요. 그런데 겉으로 크게 티는 내지 않았지만, 공부에 집중하지 못해 방황했고 입시도 망치고 말았어요. 방황은 더 심해졌고, 1년 재수 끝에 일반대학 식품영양학과에 입학했지만 적성에 잘 맞지 않았어요.”

하지만 태산 같은 존재였던 남편의 부재로 자신보다 더 실의에 빠진 어머니, 6살 어린 여동생 앞에서 늘 의연한 척 아픔을 속으로 삼키면서 한 번도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힘들 때면 한 번씩 꺼내보곤 한다는 아버지의 일기장 중에서도 아래 글귀를 휴대전화에 저장해 놓고 마음을 다잡는다고 한다.

‘상철이 백일 사진을 오늘에야 찍었다. 아들을 생각하면 마음껏 축복해주고 싶지만 많은 것을 경계한다. 앞으로도 키울 때 스스로 깨우치도록 살아있는 경험과 빈곤과 우정과 동정심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가장 귀한 자식이지만 필요하다면 거지들의 친구로도 만들 것이다. 부귀와 속세보다는 청렴과 존귀한 것을 신조로 삼아, 이 시대의 살아있는 양심가로 숨 쉬는 작은 영웅을 만들 것이다. 나태한 정신을 가다듬어 풀어진 근육을 다시 추스르는 기회가 필요하다.’

묵묵히 임무 수행하고 나라 위해 헌신하는 국군 장병 모두가 영웅

오상철 예비역 병장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 가족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고 약속은 꼭 지키는 사람이었다. 부대 일이 아무리 바빠도 가족과 시간을 보내려고 애썼고 여행도 많이 다녔다. 유일하게 우울한 표정으로 집에 오시는 날은 동료 조종사에게 사고가 난 날이었다고. 가끔 한숨을 쉬며 동료들이 민간 항공사로 가려고 전역하는 것을 아쉬워하던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군인은 오로지 충성만을 생각해야 한다. 군인은 조국을 위해 언제 어디서든 기꺼이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영원한 연인, 조국을 위해 오로지 희생만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의 신념이셨어요. 그 말씀을 아직 다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저도 대한민국 군인으로 복무하며 아버지를 따라야겠다는 결심이 확고해졌습니다.”

오상철 예비역 육군병장은 공군 부사관으로 또 한 번의 입대를 준비 중이다. 특수부대 공정통제사(Combat Control Team)나 항공구조대(SART: Special Air force Rescue Team)가 목표다. 비록 조종사의 길은 포기했지만, 아버지가 지키던 조국의 하늘에서 함께할 그날을 꿈꾼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전했다.

“영웅은 소설이나 TV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국민을 위해 매일 목숨 걸고 헌신하는 모든 국군장병이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다. 아버지는 그렇게 국가를 생각하고 군인된 자로서 마땅히 보여야 할 행동을 했을 뿐이다. 제 아버지는 영웅이 아니다.”

박지숙 기자 < jspark@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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