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조아미 기자의 아들과 함께 하는 하루

3대째 국가 위해 봉사하는 ‘해군 장교’ 될래요

조아미

입력 2017. 03. 18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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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2함대 참수리-327정 최수욱 상병


"공부는 뒷전, 노는게 좋았던 청춘 해군 고속정 타고 꿈이 생겼어요"

 

 

자유분방했던 아들 군에 가더니 전화도 자주 하고 철들었어요

지난해 6월 2함대 참수리로 전입

다른 장병들 보며 마음의 변화

최전방 영해 사수 자부심으로 임무

 

 


 

 

 


고교 시절은 방황의 연속이었다. 공부는 뒷전이었고 노는 게 좋았다. 급기야 ‘꼴찌’도 해봤다. 대학 생활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군대 갈 때가 됐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형 등 집안의 남자들이 다 해군 출신이라 당연히 해군에 입대했다. 배를 타고 싶었다. 그러나 도서기지에 근무하게 되자 그나마 남은 군 생활 의욕조차 없어졌다. 그러다 고속정을 타게 됐다. 함정 생활을 통해 마음의 변화가 생겼다. 배를 타보니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삶의 목표도 찾았다. 그분들과 같은 군인의 길을 걷는 것.

대를 이어 해군 간부를 꿈꾸고 있는 해군2함대사령부 참수리-327정 소속 최수욱(23) 상병을 만나기 위해 지난 8일, 할아버지 최진상(75), 아버지 최정민(49), 할머니 정순자(71), 어머니 김혜숙(48) 씨가 부대로 총출동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전역증을 들어보이고 있는 최수욱 상병

 

 


할아버지·아버지 모군을 찾다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로 강풍이 불던 날. 최 상병의 가족들이 부산과 경북 경주에서 먼 길을 달려 부대를 찾았다. 예비역 해군대위인 할아버지와 예비역 해군하사인 아버지는 함대에 들어서자마자 모군 방문의 기쁨을 만끽했다. 최 상병의 형은 현재 해군5성분전단에서 근무하는 최영래(25) 하사. 근무로 이날 가족과 함께하지 못했다.

2함대 군항에 정박하고 있는 참수리-327정에 들어서자 최 상병이 가족들을 반겼다. 할아버지는 최신 장비를 둘러보며 발전된 군의 모습에 놀라워했다. 할머니는 남편에 이어 아들, 손자까지 해군에서 근무하다 보니 함정에 대해서는 웬만한 건 다 아는 ‘박사’ 수준.

“저건 초계함 아닌가요? 저거는 기름 배죠? 저는 해군 군가도 여러 곡 외우고 있어요.”

아버지는 고속정복을 갈아입고 갑판병인 아들의 임무 체험에 나섰다. 오랜만에 군복을 입어본 아버지는 “바람이 차가워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싶지 않을 정도다. 특히 겨울철 고속정에서 임무 수행할 때 많이 힘들 것 같다”면서 “아들의 고속정복을 입어보니 예전 생각이 많이 난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늠름한 후배들을 보니 노병의 피가 뜨거워지는 듯하다”며 “해군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이제껏 살아오고 있다. 후배들도 조국을 위해 충성하는 마음을 갖고 즐겁게 근무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가족들은 2함대 내 안보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 2010년 3월 26일 피격됐던 천안함의 파손된 선체를 견학했다. 최 상병의 가족들은 천안함 함수 앞에서 참배하고 선체를 꼼꼼히 둘러봤다. 또한 제2연평해전 당시 북한 함정의 기습 공격으로 고(故) 윤영하 소령 등 6명이 전사했던 참수리-357정도 견학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전역증을 들어보이고 있는 최수욱 상병(위 사진). 최 상병 가족들이 2함대 내 안보공원에 마련된 천안함 선체를 둘러보고 있다(아래 사진).

 

 


갑판 최선임 수병… 자부심으로 임무 수행

2015년 10월 12일 입대한 최 상병은 현재 참수리-327정의 갑판 최선임 수병으로서 갑판장을 보좌해 출·입항, 계류 등 갑판에서 이뤄지는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생활반장과 또래상담관의 임무를 맡아 밝은 병영문화 조성과 영내 수병들의 적응을 돕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공부에 관심이 없어 ‘꼴찌’에 이름을 올린 최 상병은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바빴다. 부모님의 걱정과 잔소리가 심해지자 일단 대학에만 들어가자는 생각으로 마지못해 공부해 김천대학교 방사선학과에 합격했다. 대학생이 된 후 해방감과 더불어 넉넉지 못한 집안 사정, 부모님의 기대, 학업에 대한 부담감에서 벗어나고 싶어 자유분방하게 생활했다.

어머니는 “엄하게 키운 것도 있지만 형과 여동생 사이에 끼인 둘째이다 보니 더 사랑받고 싶어 했다. 그래서 더욱 반발하고 자유분방하게 지낸 것 같다”면서 “그런 아들이 군에 가더니 전화도 자주 하고 철들었다”며 아들을 기특해했다.

입대 후 첫 근무지는 도서기지. 최 상병이 평소 생각하던 해군 생활이 아니었다.

“배를 꼭 타고 싶었습니다. 도서기지에 근무하게 되니 군 생활 초기에는 의욕이 떨어지더라고요.”

이후 함정 생활에 대한 열망과 궁금증으로 전출을 희망했다. 마침내 지난해 6월 2함대 참수리로 전입했고, 군 생활을 하며 맡은 임무에 성실히 임하는 다른 장병들을 보고 마음의 변화가 생겼다.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반성하게 된 것. 그는 이제 고되지만 NLL 최전방에서 영해를 사수한다는 자부심으로 매일 임무 수행에 나서고 있다.



전역 후 사관후보생 지원 계획…삶의 목표를 찾다

삶의 목표도 없었지만, 할아버지·아버지·형에 이어 해군 간부가 되겠다는 꿈도 생겼다.

“함정 생활을 하며 군대가 적성에 맞는다고 느꼈어요. 전역 이후 사관후보생(OCS)에 지원해 해군 장교가 되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꿈을 응원하며 지갑에서 전역증을 꺼내 보여줬다. 옆에 있던 할아버지도 지갑에서 닳은 전역증을 꺼냈다.

“제가 해군 출신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워요. 그래서 어디에서 누굴 만나도 전역증을 보여주죠. 아들이 그런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 고맙고, 원하는 대로 멋진 장교가 되길 바랄 뿐입니다.”

할아버지는 해군3함대에 근무하던 1981년 10월 1일 국군의 날, 장교로서 모범을 보여 보국포장을 받았다. 당시 위관장교로서는 쉽게 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최 상병은 “할아버지 댁에 걸려있는 포장을 예전에는 별 느낌 없이 봤는데 군에 와서 그 값어치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지금의 군 생활은 해군 간부가 되기 위한 발판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은 군 생활도 건강히 마치고, 대학에 돌아가 그동안 소홀했던 학업에 열중하려고요. 부모님께 걱정만 끼쳤던 아들의 모습에서 벗어나 3대째 국가와 해군을 위해 봉사하는 자랑스러운 아들이 될래요. 고속정 정장이 되어 다시 평택에 돌아오는 제 모습을 기대해주세요.”


 

 

할아버지·아버지·형 이은 해군의 길

아빠에게는 큰 자랑이란다. 파이팅!

 


사랑하는 아들에게

수욱이가 입대한 지 어느덧 15개월이 지났네. 벌써 병장 진급을 눈앞에 두고 있구나. 할아버지·아버지·형의 뒤를 이어 해군의 길을 함께 걷는다는 게 아빠한테는 큰 자랑이란다. 마냥 어린애 같았고, 미래에 대한 확실한 목표가 없던 2학년 1학기, 군에 다녀와야 더 열심히 인생을 살 수 있겠다며 휴학하고 해군에 입대한다고 했을 때, 한편으로는 2학년을 마치고 군에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선택이란 말에 흔쾌히 받아들였단다.

첫 휴가 나왔을 때, 뜬금없이 집안 경제를 물어 보는 아들을 보며, 한층 더 의젓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해상병 근무지 중 제일 힘들다는 2함대 참수리로 발령 났을 때,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기뻐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빠는 지금도 대한민국 남자라면 국방에 대한 책임감 없이는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군에서 배운 모든 것이 평생 사회생활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아빠가 항상 하는 말 알지? ‘어딜 가든지 뒤따르는 사람이 되지 말고, 앞서가는 사람이 돼라’. 뒤따름에는 목표도 없고 책임도 없지만 앞섬에는 뚜렷한 목표와 책임이 있다. 아빠는 네가 앞으로 훌륭한 장교가 될 거라 믿는다. 언제나 멋진 대한해군이 되길, 파이팅!


 

 

 

이 못난 아들 끝까지 믿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부모님께

어머니·아버지께 편지를 쓰는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요. 잘 계시는지요?

중학교 때 공부를 잘해서 부모님이 저한테 기대를 참 많이 하셨죠. 그런데 고등학교에 가서는 방황하기 시작해 부모님 속을 많이 썩였네요. 뒤늦게 3학년 때 정신 차려 대학에 진학했지만요. 그런데 대학 진학 후에는 굳이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친구들이랑 놀기에만 바빴고, 다시 방황이 시작됐죠. 그래서 학점도 잘 못 받았고요. 그런데도 이 못난 아들 끝까지 믿어주셔서 부모님께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입대 후 심각하게 진로를 고민하던 중 군대가 적성에 맞는 것 같다며 장교가 되겠다고 했을 때 좋아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제가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전역 후 복학하면 공부 열심히 해서 장학금도 받는 모습 꼭 보여드릴게요.

어머니·아버지 사랑합니다!


조아미 기자 < joajoa@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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