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이석종기자의 무기의 탄생

국내 최초 개발… 중소형 유도탄 생산기술 기반 마련

이석종

입력 2015. 12. 15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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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130mm 다연장로켓 구룡


국내 최초로 연구개발된 다연장로켓 구룡이 불을 뿜고 있다. 구룡 다연장로켓은 북한의 방사포에 대응하기 위해 1970년대 후반 국내 개발을 시작해 1981년부터 실전배치됐다. 

국방일보 DB

 

 


 

 

※ 北 방사포 대응, 1970년대 후반 개발 시작

 

 

 구룡 130㎜ 다연장로켓은 북한의 방사포에 대응하기 위해 1970년대 후반 국내 개발이 시작된 무기체계다.

 당시 북한은 1400여 문의 각종 방사포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특히 사거리 20㎞가 넘는 소련제 122㎜ BM-21을 모방 생산해 사거리와 화력 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방사포를 보유하지 못한 국군은 이에 대항할 무기로 대량화력집중이 가능한 다연장로켓이 필요했다. 그뿐만 아니라 재래식 화포도 사거리 연장 및 화력 증대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구룡 개발 당시에는 공산권의 주력 방사포 무기체계인 BM-21에 대처할 수 있도록 설계개념을 잡았다. 기본형의 경우 최대사거리 23㎞, 개량형의 경우 최대사거리 36㎞로 당시 국군이 보유한 화력무기 중 가장 사거리가 길게 설계돼 북한의 장사정 방사포 및 화포에 대응할 수 있게 했다.

 구룡은 국내 독자 개발 무기체계로는 최초로 세계적 권위의 군사·무기 전문지 ‘제인연감’에 수록됐다. 또 로켓무기로는 국내에서 최초로 양산을 시작, 추진기관 양산 기술의 기반을 마련한 무기체계로 이후 개발 및 생산배치를 시작한 중소형 유도탄 구성품 생산기술의 토대가 됐다. 연소관 등 핵심 구성품의 신속한 국내개발 및 양산이 가능토록 한 것이 구룡 개발의 큰 역할 중 하나였다.

 국내에서 다연장로켓(당시에는 방사포)의 개발 가능성을 검토하기 시작한 건 1974년이다.

 국방부 지시로 미국의 115㎜ 45연장 화학로켓(화학탄두를 장착)체계에 대한 자료조사가 시작됐다.

 당시에는 무기체계 독자개발 및 생산에 대한 개념정립이 되기 전이어서 소총 등 도입무기를 역설계해 시제를 시도하던 시기였다.

 이 때문에 발사대의 실물이나 자료가 접근 가능했던 미국의 115㎜ 다연장 화학로켓이 자연스럽게 최초의 고려 대상이 된 것이었다.

 

 

※ ADD, 최대사거리 23㎞…1981년 군 배치

 


 그러나 이는 순수한 자료조사 차원의 연구였다.

 이후 군은 1977년 미국의 115㎜를 모방해 40~45연장, 구경 115~120㎜, 최대사거리 15㎞의 방사포를 개발해달라는 요구를 했고 그해 7월 국방과학기술심의회는 유사 무기체계의 성능을 감안하고, 국방과학연구소(ADD)의 개발 가능성 검토 의견을 종합해 최대사거리 20㎞, 탄두무게 20㎏, 30연장의 차량탑재형 다연장로켓 개발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ADD는 백곰 지대지 유도탄 개발을 통해 획득한 추진제 제조 기술과 추진기관 기술을 이용해 추진기관을 설계했고 28(4행 7열)연장의 차량탑재형 발사대를 독자설계해 개발을 추진, 1978년 9월 26일 백곰과 함께 공개 시사를 성공리에 수행했다.

 개발 경험이 전무하고, 관련 기술자료와 운용경험도 없는 방사포(다연장이란 명칭도 없던 시절)를 1년 남짓 만에 개발해 내놓은 것이다.

 시사에 성공하며 기본적인 무기체계의 성능을 확인한 군은 1978년 시제형의 제원을 유지하면서 최대사거리를 30㎞로 늘려 개발해 달라는 요구를 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개발소요기간 연장이 불가피했다.

 ADD는 우선 시사가 끝난 시험탄의 설계변경을 통해 최대사거리 23㎞에 36연장 발사대를 갖춘 구룡-1 130㎜ 다연장 체계를 개발해 1981년 군에 배치했다.

 이어 최대사거리 36㎞, 유압구동식 발사대, 개량형 탄두 등을 갖춘 개량형 130㎜ 다연장 체계를 개발, 군에 배치했다. 이 당시 실용배치된 방사포 중에는 최대사거리 20.5㎞의 소련제 BM-21이 대표적인 모델이었으며 36개국 이상에서 운용되고 있었다.

 

 

※ 당시 개량형 구룡 체계, 가장 성능 좋아

 

 


 자유 진영에서는 독일의 LAR-110과 일본 육상자위대의 75식 다연장이 있었지만 최대사거리 15㎞를 넘지 못했고 이탈리아·브라질·이스라엘 등에서도 다연장로켓이 개발되는 단계에 있었다.

 즉 구룡이 개발된 시점은 주로 공산권에서 운용되던 다연장 체계가 서구 진영에서 개발이 시작되는 시기였고 당시 개량형 구룡은 최대사거리 등에서 가장 성능이 좋은 체계였다.

 개발 과정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처음 시도되는 독자개발 무기체계였던 관계로 연구진이 방산업체를 방문해 시제 의사를 타진하자 일부 업체는 시제를 사양하기도 했다. 고속으로 연사되는 다연장의 특성상 사격통제 미숙과 장비 작동 미숙으로 큰 인명사고를 유발할 뻔한 경우도 있었다.

 구룡은 최초로 독자개발된 무유도 로켓무기체계로 사격제원 산출에 필요한 사표 또한 국내에서 최초로 개발한 것이었다. 사표제원 산출을 위해 수많은 발사시험을 수행했고 추적 레이더를 통한 비행궤적 추적도 최초로 실시됐다.

 개발 당시는 독자개발 무기체계에 대한 종합군수지원 개념이 충분히 정립되기 전이었다. TDP 등 기술자료 묶음은 ADD가 작성해 종합했지만 기술교범 등은 관련 예산 편성이 미흡하고 정립된 작성체계도 없어 연구담당자가 직접 작성해야했다.

 야전 배치 후에도 처음 운용하는 로켓무기의 특성상 훈련사격 등에 연구진이 직접 참석해 군의 초기운용에 협조해야 했다.

 이와 관련, 당시 개발에 참가했던 ADD 관계자는 “개발 초기의 부족한 사항을 군과 협조해 원활히 해결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당시의 운용부대 장병과 현재 운용부대 장병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석종 기자 < seokjong@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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