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제2차 세계대전 시크릿100선

전쟁은 많은 영웅을 만들고 영웅은 이색 훈장을 남긴다

김가영

입력 2015. 12. 11   16:40
0 댓글

<87>퍼플 하트 훈장과 조지 십자 훈장



 

 

 

 

 

 

 

 

 전쟁은 영웅을 만들고 전쟁영웅에게는 훈장이 주어진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국가들은 전쟁영웅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다양한 훈장을 수여했다. 독특한 성격의 훈장도 나타났는데 미국의 퍼플 하트 훈장과 영국의 조지 십자 훈장이 대표적이다.

 퍼플 하트 훈장은 전투에서 부상당한 미군 또는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전투 중 실종됐거나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군 요원들에게 수여되는 훈장이다. 퍼플 하트 훈장이 ‘상이장(傷痍章)’이라는 별칭을 가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퍼플 하트는 원래는 이런 성격의 훈장이 아니었다. 1782년 조지 워싱턴이 처음 퍼플 하트를 만들 때만 해도 전투에서 영웅적인 활약을 펼치거나 뛰어난 임무를 수행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고 독립전쟁 유공자 3명에게만 훈장을 수여했다.

 미 육군은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부상자들에게 수여하는 공식적인 훈장이나 배지가 없었다. 육군성이 군복이나 제복 오른쪽 소매 위에 부착할 수 있는, 부상자들을 위한 수장(袖章·chevron)을 만들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용감하게 싸우다 부상하거나 전사하는 인원이 늘면서 1942년 루스벨트 대통령은 퍼플 하트를 전투 중 부상한 인원에게 수여하도록 지시했다.

 한 사람이 여러 번 전상을 입으면 그만큼의 훈장을 수여했고 적십자 요원이나 종군기자처럼 군대에서 민간 지원 활동을 펼치다 부상하거나 사망한 미국 국민도 똑같이 훈장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 퍼플 하트를 이전에 받은 사람들이 원하면 공로훈장 같은 다른 훈장으로 바꿀 수도 있도록 했다.


 


 


 퍼플 하트는 훈장을 처음 만든 조지 워싱턴을 기리기 위해 그의 옆 모습을 새겨 넣었다. 하지만 훈장 수여 과정에서 문제도 발생했다. 퍼플 하트를 받으려면 적에 의해 부상당해 의료 시설에서 치료받은 기록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퍼플 하트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이들 중에서 치료를 거부했거나 다른 사정으로 공식적인 치료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사람은 의료지원이나 장애연금을 받는 데 문제가 생겼다. 이런 이유로 2차 대전 이후 많은 퇴역 군인들이 곤란을 겪기도 했다.

 퍼플 하트가 전쟁에서 부상한 이들을 치하하기 위한 훈장이라면 영국의 조지 십자 훈장은 민간인이나 적과 직접 맞서는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군인을 위한 훈장이다. 용기 있는 행동으로 공을 세우고 조국을 위해 헌신했지만, 상응하는 예우를 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훈장인 셈이다. 1940년 9월 24일 조지 십자 훈장을 만든 영국 국왕 조지 6세는 “독일의 영국 공습이 빈번해지면서 민간인이면서도 용기 있는 행동으로 조직을 위해 헌신한 이들이 늘고 있다”면서 “이들을 위한 훈장을 만들고 그 서열은 영국 최고의 무공훈장인 빅토리아 십자 훈장 다음으로 할 것”을 지시했다.

 조지 십자 훈장을 최초로 받은 사람은 토머스 올더슨이라는 민간인으로 공습경계경보 조직을 이끌면서 폭격으로 무너진 가옥에서 수많은 사람을 구출한 인물이었다. 또 3명의 여성도 2차 대전 동안 조지 십자훈장을 받았다. 그들은 오데트 샌섬, 바이올렛 스자보, 누어이나얏 칸인데 모두 독일이 점령한 유럽지역 국가에서 특수작전국(SOE: Special Operation Executive) 소속으로 활동했다. 1942년 4월 15일에는 독특하게도 ‘몰타 섬’에 조지 십자 훈장이 수여되기도 했다. 이때 조지 6세는 “영웅적인 행동과 헌신에 대해 이 훈장이 증인이 되어 역사 속에 영원히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료=‘2차 세계대전 시크릿 100선’

김가영 기자 < k2ykim@dema.mil.kr >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