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이동진의 칭기즈칸 따라 2500Km

우여곡절 많은 60일간의 기적 “내 인생의 가장 위대한 도전”

입력 2015. 07. 16   17:34
0 댓글

이동진의 칭기즈칸 따라 2500Km<26>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순간

두려움·기쁨·슬픔·답답함

짜증·벅참·울컥·행복함…

인생 최고의 감정들 느껴

 

 

 


 

 

 익숙한 것에서 익숙함을 벗어던지자

 몽골 말 횡단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 났다. 말을 타고 온 거리는 최동쪽 초이발산에서부터 최서쪽 얼기까지 2500㎞였고, 타고 온 말은 총 7마리였다. 자동차로 5000㎞를 달렸고, 길 위에서 만난 유목민은 300여 명. 몽골 만두는 인당 100개씩 먹었고, 지나쳤던 게르 수는 500동. 이것 외에도 우리는 몽골 대륙에서 수많은 일을 경험했다. 횡단 길은 우리들의 인생이었고, 그 끝은 마치 우리 인생의 어떤 마침표를 의미하는 듯했다. 하지만 얼기에서 울면서, 모든 것을 몽골 땅에 쏟아낼 때 오늘이 바로 ‘또 다른 새로운 시작’임을 깨달았다.

 


 인생, 시작도 끝도 없다

 단지 한순간. 하나의 상태일 뿐이다. 몽골 횡단은 지난 2006년부터 시작된 나의 도전인 재수·마라톤·철인3종·뮤지컬·해병대·히말라야·배드민턴 국가대표·독도 수영·아마존 마라톤·미 대륙 자전거 횡단·세계일주를 통틀어서 가장 위대한 도전이었다.

 ‘위대하다’라는 표현은 내 인생에서의 성숙함을 의미하기도 하고, 더 나은 생각으로 더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생각했던 것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 것이 기적이 아님을 깨닫게 됐다. 이번 도전은 나에게 큰 선물을 줬다. 기적은 내 행동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모든 것은 변한다. 이번 도전을 통해 상식의 한계를 깨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 단지 할 수 있다는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놀라움도 연속된다면 그것은 그저 일상에 불과하다. 멈추지 않으면, 기적은 중단되지 않는다.

 기적이를 빌린 게르에 우리는 도착했고, 이틀 만에 다시 기적이를 그의 집에 돌려줬다. 고단한 만큼 얼마나 배가 고팠을지 상상을 해보며, 풀을 뜯는 녀석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마지막 한 번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아는지 모르는지, 가만히 서 있는 녀석. 그리고 우리는 듬직이를 맡겨둔 게르로 이동했다. 하루 만에 다시 찾았더니 듬직이는 묶여 있지도 않은 채 숲속에서 열심히 풀을 뜯고 있었다. 고삐와 안장을 하지 않은 채로 자유를 누리면서 보낸 하루였을 것이다. 물론 듬직이는 앞으로는 이번처럼 초원을 날마다 달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듬직이와의 조우도 잠시, 녀석에게 인사를 하고 유목민에게 맡겼고 우리는 왔던 길로 출발했다.

 차는 그렇게 밤새도록 달려 35시간 만에 울란바토르에 도착했다. 우리가 40일을 달려온 그 거리를 차로 이틀 만에 도착하며, 빠름이 주는 의미는 우리가 매일 걸어오며 배운 가치를 뛰어넘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다. 인생의 빠름도 결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하루하루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고, 매순간의 판단이 중요하며, 매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함을 알았다.

 우리는 끊임없이 판단하면서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결국 더 빨리 가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너무나도 많았다. 진심으로 그리고 매순간 행복하게 걸어 나가야 된다. 내 한 걸음의 소중함을 최고의 순간으로 여기면서 살아가자. 울란바토르에 들어오니 자정이 지나 있었다. 쉼 없이 달려온 우리를 맞이해준 것은 아스팔트, 그리고 그 위의 형광등과 수많은 건물, 네온사인이었다. 도시가 얼마나 감사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해줬다. 정확히 새벽 2시 우리는 울란바토르 숙소에 도착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횡단이 끝이 났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절대로 없다. 오직 이 순간만 존재할 뿐이다.

 짐을 들고 숙소로 올라왔다. 잠시 들르는 이 숙소가 계속 머무는 곳이 아닌, 집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여정이라는 사실에 감사하다. 당장 20시간 뒤에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최소 20일 이상 입던 옷들을 벗어 비닐봉지에 하나씩 담아 입구를 봉해버렸다. 차단 끝. 몽골 초원에서의 삶이 그대로 보존되는 듯 그렇게 묶어버렸다.

 초원의 냄새. 밤하늘 얼음 같은 공기의 차가움. 텐트 맨 끝자락으로 있는 얼음알갱이들, 신발 끝에 묻은 흙의 내음, 태양 볕에 그을려버린 내 피부들의 향기마저도 묶어버리고 샤워기 물을 틀어 내 몸을 완전히 다른 세상과 마주할 수 있는 그곳으로 던졌다. 뜨거운 물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려오는 그 기분은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듯했다. 샤워는커녕 세수조차도 물티슈로 했던 지난날 덕분에 물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고, 감사한 감정을 온몸으로 느끼게 됐다. 익숙한 것은 뇌를 편하게 만들지만 감정을 무디게 만들며 세상을 가볍게 느끼도록 해준다. 그러니 익숙한 것에서 익숙함을 벗어던지자. 뜨거운 물로 샤워하며 ‘이동진’의 몸을 씻어 내렸다.

 “동진아, 괜찮니?” 갑자기 방에 계신 형님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형! 씻고 있어요. 곧 나갈게요.” 안 나오는 동생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물어보신 형님 목소리에 나는 몽골에서 있었던 지난 일들에 대한 회상을 멈췄다. 그리고 정신은 새벽 3시의 울란바토르 숙소의 내 방으로 돌아왔다.

 


 몽골의 마지막 밤을 보내며

 초이발산~얼기 2500㎞. 나는 아직도 말을 타고 있는 듯하다. 이제는 땅보다 말 위가 더 편하다고 느껴진다. 말이 무서운데 무섭지 않다. 무슨 뜻일까? 내 자신이 이 뜻을 명확하게 알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말장난이 아니라, 말이라는 존재는 살아 있는 생명이기에 어떤 감정을 가지고 어떻게 행동할지 모르지만 오히려 감정이 있기 때문에 함께 호흡하고 달리다 보면 어느새 하나가 돼 전혀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게 된다. 심지어 함께 떨어지더라도 두렵지 않다. 오히려 두려운 상황은 내가 그와 하나의 끝으로 연결돼 있지 않았을 때다. 생명이란 위대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아직 긴장해 있는 근육이 풀리길 바라며 고단했던 60일의 말 횡단을 진짜 끝내려고 누웠다.

 돌아오지 않을 이 순간, 인생 최고의 감정들. 두려움·기쁨·슬픔·답답함·짜증남·벅참·울컥함·행복함 등을 느끼며 횡단이 곧 내 인생의 작은 모습임을, 나아가 모든 상황이 내 작은 인생임을 깨달았다.

 멋지고 행복했던, 또 기적이 더 이상 기적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만들어준 과정을 통해서 큰 성장을 했다. 지금보다 더 행복한 인생을 기대하며 몽골에서의 마지막 밤을 맞이했다.

청년모험가·작가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