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한반도군사리포트

˝광복군 창건일을 국군의 날로 기념하는 방안도 고려해 봄직”

입력 2014. 09. 11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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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통일시대 군 창건기념일은 언제로 정하나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의 충정이 다시금 온 나라를 전율시키고 있다. 이러한 열기의 배경은 그가 순수하고 가장 숭고한 애국정신의 표상이기도 하지만, 우리 국민이 현재 그런 인물을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군의 침략에 맞서 우리 조상은 일반 백성이나 승려는 물론 모두 목숨을 초개와 같이 여기고 앞다퉈 싸웠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몇백 년 후 결국 일제에 의해 강점당하고 말았다.

 

1940917일 광복군 창설


 강점하에서도 안중근 장군을 비롯한 많은 선현들이 구국전선에 나섰다. 1919년에는 유관순 열사가 주도한 3·1운동이 일어났다. 이에 고무된 독립투사들은 일본에 맞서 조직적으로 항거하기 위해 같은 해 4월 13일 상하이에서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임시정부는 일제의 집요한 검거작전을 피해 다니면서 외교에 치중함과 더불어 군사활동도 병행했다. 1932년 1월 8일 이봉창의 도쿄 의거, 같은 해 4월 29일 윤봉길의 상하이 의거 등을 들 수 있다. 1937년 중일 전쟁이 발발하자 통일된 군사활동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1940년 9월 17일 광복군을 창설하고 활동에 들어갔다. 그러니까 다가오는 다음주 수요일은 광복군이 창건된 지 74주년이 되는 매우 뜻 깊은 날이다.

 우리 군은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과 동시에 창건됐다. 한편, 북한은 정부를 수립하기 전인 194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을 먼저 창설했다. 이렇게 김일성이 정부 수립보다 군을 먼저 창설하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정규군의 위용을 과시함으로써 유엔의 결의에 맞설 뿐만 아니라 세를 확산하고자 했다. 당시 유엔은 남북한 동시선거를 통해 정부를 수립하기로 했는데, 남한에 비해 인구가 적었던 북한으로서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따라서 이를 거부하면서, 남한지역 내 공산당원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중도 정치인들을 회유하는 데 군이 유용한 수단이 될 것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둘째, 유사시에는 무력으로라도 전 한반도를 통일시키겠다는 의도가 있었다. 스탈린은 대한반도 정책 목표를 ‘민주 기지’로 만드는 데 뒀다. 김일성은 이를 바탕으로 전 한반도를 통일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런 배경하에서 창설된 북한군은 1948년 9월 9일 정부 수립과 함께 ‘민족보위성’이 설치되면서 군으로서 완벽한 틀을 갖췄다. 이후 김일성은 군을 계속 확장시켜 전 한반도의 공산화를 목표로 하는 6·25전쟁을 일으켰다. 이렇게 발발한 전쟁은 지금까지도 정전상태로 지속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980여 회의 외침을 당하면서도 우리 조상들이 어렵게 지켜 물려준 분단된 강토를 하나의 나라로 만들어야 하는 숙명적 과제를 안고 있다. 즉, 북한의 위협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통일을 평화적으로 이뤄 내야 한다.

 그런데 통일은 통일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면 동질성을 회복해 일체감을 갖도록 할 것이냐가 더 중요하다. 이러한 차원에서 군도 외형적으로 하나로 통합하는 과업과 함께 내면적으로는 하나의 국군으로 만들어 일체감을 갖게 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이렇게 될 때 통일한국군의 전투력도 최대로 발휘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통일한국의 국군의 날, 즉 창군기념일을 정하는 일도 통일 과정에서 하나의 중요한 과업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날이 적합할까?

101일은 우리군 38선 돌파한 날

 

 현재 국군의 날은 다 아는 바와 같이 6·25전쟁 기간 우리 군이 38선을 돌파한 날이다. 1950년 이맘때쯤 우리는 낙동강 전선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후 총반격작전을 감행해 9월 28일 수도를 탈환할 수 있었다. 그리고 10월 1일 우리 3사단 23연대가 38선을 돌파했다. 참으로 감격스러운 날이었다. 정전 후 육·해·공군의 기념일은 각각 다른 날이었으나, 1956년 국무회의에서 38선 돌파일을 국군의 날로 제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북한은 김일성이 1932년 4월 25일 빨치산을 조직했다고 주장하면서 1978년에 이날을 군 창건기념일로 변경한 후 대대적으로 기념행사를 해 오고 있다.

 군 창건기념일은 군의 전통과 역사를 고려하고 통상 정부 수립일과는 다른 날을 정해 기념하고 있다. 현재 우리 정부 수립일이 8월 15일임에도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정해 기념해 오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통일 후 군 창건기념일은 현재와 같이 10월 1일을 그대로 유지하든지 아니면 다른 날을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평화적인 통일을 추진하면서 남침한 북한군을 물리친 날을 국군의 날로 삼는다면 북한지역 주민들의 심기를 건드리고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국군의 날을 현재와 같이 유지하는 방안은 바람직스럽지 않으리라고 보인다.

 

평화통일 환경 마련되면 재검토 필요

 

 그렇다면 통일정부 수립일과는 다른 날을 정해 기념하는 방안이나 광복군 창건일이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통일정부 수립일과 다른 날을 정해 기념하는 방안은 남북한군이 날짜는 다르지만 1948년에 각각 창건됐으므로, 이때로부터 역산해 ‘제○○주년 기념식’으로 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날을 창군기념일로 정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그리고 광복군 창건일을 기념일로 하는 방안도 적극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작금에 들어 일본의 행태가 못마땅해 일본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지만, 관계가 좋았을 때도 우리는 광복절 행사를 빠지지 않고 성대하게 치뤘다. 그러므로 통일 이후에도 광복군 창건일을 국군의 날로 삼아 기념하는 데에는 외교관계를 고려한다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남북 분단 상황에서 북한의 위협이 지속되는 한 대북 경계심을 누그러뜨리지 않도록 38선을 돌파한 날을 국군의 날로 경축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평화통일의 분위기가 조성되면 갈등을 유발하는 일은 상호 삼가는 게 좋을 것이다.

따라서 평화적인 통일을 위한 환경이 마련되면 군 창건기념일을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때가 가능한 한 빨리 다가오기를 고대한다. 그리고 이 시대가 갈망하고 있는 이순신 장군과 같은 인물은 네가 아닌 내가 돼야 한다는 마음으로 조국의 평화적인 통일을 앞당기는 데 힘을 결집해 나가야 한다.

 

<권 양 주 박사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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