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병영의창

“미안하다, 나 단장이야”

입력 2014. 01. 08   18:26
0 댓글

금상-이해황 중위 공군3훈련비행단


 임관 후 헌병대대 소위로 갓 전입 왔을 때의 이야기다. 주말을 맞아 지형지물을 익힐 겸 비행단을 한 바퀴 뛰러 나갔다. 모자와 마스크를 쓴 어떤 ‘아저씨’가 산책을 하고 있었다. 주말에도 사람들이 남아서 운동을 하는구나 하며 그분을 앞질러 나갔다. 제법 뛰다가 전화 때문에 걷고 있는데 어느새 그 남성분이 나를 앞질러 뛰어갔다. 체력이 좋은 분이구나 하며 나도 뒤따라 뛰었다. 그러다 지나가던 차량을 화제로 그분과 이야기가 시작됐다.

 소소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군대 오기 전에 한 일, 훈련단 이야기, 결혼을 앞둔 여자친구 이야기까지. 아직 차가 없다고 하니 자신이 젊었을 때 자전거를 타고 다닌 경험도 생생하게 들려주셨다. 그렇게 둘이서 30분이 넘게 비행단을 돌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길이 갈라져서 헤어지게 됐다. 몇 발짝 가다가 그분이 뒤돌아 말을 던지셨다. “미안하다. 나 단장이야.” 그러시고는 유유히 걸어가셨다. 그때부터 나는 정신적인 혼란과 충격, 소위 ‘멘붕’이 왔다. 말실수를 한 것이 있나 걱정돼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기에는 너무 많은 말을 쏟아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단 선임 장교들에게 이 상황을 보고하고, 남은 하루를 멍하게 지냈다.

 많은 생각이 드는 밤이었다. 한 비행단의 지휘관이 일개 신임 소위와 문턱 없이 대화를 나눠 주셨다. 이는 소대장 임무수행을 앞두고 어떤 리더십을 갖춰야 하는지 고민하던 내게 일종의 모범답안이었다. 단장님께서 소통, 경청의 리더십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이후 어떻게 하면 나도 단장님처럼 격식 없이 소대원들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방법을 궁리했다.

 그 결과 크게 두 가지를 도입했다. 하나는 30문 30답이다.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은?” “내가 가장 자랑스러웠던 때는?” 등의 흥미로운 질문을 모은 것이다. 이를 통해 소대원들과 공식적인 면담기록부로는 알 수 없었던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포스트 시크릿’은 개인적인 고민이나 비밀을 익명의 엽서에 적어 웹에 공유하는 운동으로, 미국정신건강협회로부터 자살 확산을 예방한 공로로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대대장님이 흔쾌히 허가해 주셔서 대대 차원에서 운영하게 됐다. “요새 변비가 심해요…” 같은 개인적이고 작은 고민부터,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했던 애로사항 등이 공개됐다. 이를 통해 문제를 조기식별 및 예방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얼마 전 소대 무사고 300일을 달성했다. 그때의 산책이 씨앗이 돼 이룬 결실이다. 이 자리를 빌려 소통과 경청의 리더십을 몸소 보여주셨던 제3훈련비행단 황성진 단장님께 감사드린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