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한국의 안보와 국방 국방전문가에게 듣는다

아태 경제권 진입 노린다

입력 2014. 01. 09   13:46
0 댓글

한국의 안보와 국방 국방전문가에게 듣는다<4>푸틴 3기 러시아의 對 한반도 정책


美와 협력·中과 전략연대·남북한과는 경협 등 실리 추구  푸틴 국정 장악력이 변수…정계 불안땐 외교 행보 위축

 지난해 12월, 장성택 처형 소식에 국제사회는 북한을 다시 주목했다. 러시아 정부는 중국과 달리 공식 견해를 내놓지 않았다. 러시아의 무반응은 크렘린 측의 무관심보다 당혹감을 방증한다고 봐야 옳다. 김정은이 권좌에 오르자 푸틴 정부는 110억 달러(12조 원)나 되는 북한 채무액 중 90%를 탕감해 줬다. 한반도 안정을 위해 김정은 정권의 조기 연착륙을 도와야 한다는 명분에서였다. 그런데 중국과 나란히 참여한 나선특구 개발이 장성택의 ‘매국행위’로 매도됐던 것이다.

 러시아 관측통의 향후 북한 정권에 대한 전망은 두 갈래로 나뉜다. 장성택 세력이 축출됐다고 해서 북한 체제가 급격한 변화까지는 겪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과 이번 사태로 김정은 정권의 불안정 수위가 한결 높아졌다는 시각이 그것이다. 김정은 정권의 국제적 신뢰가 추락한 상황에서 3각 경협과 관련해 적극적이었던 기존의 입장은 한동안 위축되지 않을까 싶다.

 러시아는 대북 협력 방향과 관련해 당분간 국제사회의 대응을 주시할 것이다. 동시에 김정은 정권의 존속 여부나 급변사태 발생 가능성 타진에도 소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반도 안보 상황 변화에 대한 러시아의 대응은 어떻게 결정될까. 해당 시점의 국내 정세와 더불어 대외 안보전략 기조부터 동북아 정책에 이르는 다양한 내외 변수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올해에는 어떠한 변수들이, 어떤 무게로 푸틴 3기 정부의 한반도 정책을 정향(定向)해 나갈 것인가.

 먼저 푸틴의 국정 장악 수준을 눈여겨봐야 한다. 그는 현재 권위주의적 통치 기조 아래 세 번째 집권기의 정통성 확보에 골몰하고 있다. 중산층의 정치 참여 요구가 증대하는 가운데 지난(至難)한 ‘부패와의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물론 푸틴에 대한 대중의 지지도 하락이 한반도 정책에 직접 미칠 파장은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푸틴은 2010년대 극동 개발로 ‘국토 균형발전’을 이룰 것임을 공언하고 있지 않은가. 더욱이 김정은의 도발이나 급변사태 위험은 극동 개발을 포함한 푸틴의 현안 해결을 방해할 뿐이다. 모스크바 정계의 불안정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푸틴의 유연한 대응을 가로막고, 상황의 조기 안정을 위해 중국과의 공조에 기대도록 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 중국과의 전략연대 수위도 중요 변수다. 대내적으로 중국의 군사강국화 우려와 중화권 팽창에 대한 견제 필요성이 대두됨에도 불구하고, 다극화 질서를 겨냥한 대중 공조의 전략적 관리는 현안 중의 현안이다. 더욱이 중국은 당면한 경제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최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러시아산 에너지 자원과 방산물자의 주요 구매국이 아닌가. 따라서 한반도상에서 예기치 못한 현안이 발발하면 상황 대응과 관련한 푸틴-시진핑 공조 수위는 한국에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셋째, 글로벌 차원의 대미 관계의 밀도 역시 고려될 것이다. 중국의 과도한 팽창을 억제하고 핵·WMD 비확산 질서를 위해 대미 협력은 대중 연대 못잖게 중요하다. 또한, 극동 개발로 아태 경제권에 진입하려는 러시아로선 미국과의 협력에 소홀할 수 없다. 북핵 대응을 보면 대미 공조에 바탕한 유연전략과 대미 견제를 목표하는 강경전략이 혼재돼 있는데, 바로 러시아의 대미 인식을 요약해 준다. 그러므로 푸틴 정부는 -국내 정국이 지나치게 경색되지 않는다면- 오바마 정부와 한반도 현안 논의에 진지하게 임할 것이다.

 넷째, 남북한과의 협력에서 얻을 수 있는 실리도 중요하다. 그런데 2012년 한국의 대러 투자와 러시아의 대한 투자는 각기 1억 달러와 5000만 달러에 그쳤다. 러·북 통상 규모 역시 8000만 달러 수준이었다. 남북한의 대중국 교역 규모와 비교하면 그 차이는 엄청나다. 더욱이 극동·시베리아 개발에 대한 한국 기업들의 투자 규모는 크게 실망스럽다. 그러므로 한반도에서 돌발사태가 일어나면 한국 측의 소극적인 투자 실태가 한국군이나 한미 연합군의 행동반경에 대한 푸틴 정부의 이해 폭을 제약할 수 있다는 우려는 충분한 설득력을 지닌다.

 올해 러시아의 한반도 정책은 전술한 대로 푸틴의 국정 장악 역량, 대중 연대의 수준과 대미 공조의 밀도, 그리고 남북한과의 경협 실리 수준에 따라 조율될 것이다. 푸틴 3기의 정치·경제적 여건은 집권 1~2기에 비교할 때 국제 안보환경만큼이나 크게 변했다. 작년 한 해 푸틴은 13년 치적에 대해 ‘안정에 대한 대가가 너무 크다’는 비난에 직면해야 했다. 연이어 터진 고위직 관리들의 부정 비리는 푸틴 정부 자체의 정통성을 훼손했고, 야권 세력은 한층 더 결속되고 있다. ‘강한 러시아’ 재건을 상징하는 푸틴의 리더십을 뒷받침해 오던 경제 성장세마저도 무뎌지고 있다. ‘유로 존’의 경제 침체와 국제 에너지 가격 하락으로 2000년대 평균 7%를 넘던 성장률은 2012년 3.4%대로 줄었고 2013년에도 1%대에 머물렀다.

 국제 안보환경의 급변에서 오는 도전도 만만찮다. 초일강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때 절실했던 대중 연대를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가, G2시대의 도래로 중국과의 관계를 경제 잣대로만 잴 수 없는 러시아로서는 심각한 고민이다. 또한 미국에 이어 중국에까지 불기 시작한 셰일가스 붐으로 ‘자원의 무기화’로 돋보였던 러시아의 외교 레버리지도 빛이 바래고 있다. 따라서 푸틴 3기 정부가 권위적 대처를 통해서도 야권의 민주화 요구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고 자원의존적 경제 구도를 개선할 수 있다면 동북아의 역학구도 변화에 유연히 대처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푸틴이 자신의 통치 방식에 대한 정통성 공방에 휘둘리고 유럽 경제의 회복세를 자국 경제안정의 추력으로 살려내지 못한다면 미국의 아태 복귀로 미중 구도가 한층 더 두드러져 가는 동북아에 있어 그의 외교 행보는 상당한 제약을 받을 것이다.


 


 


 심경욱 박사는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학사, 동 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무행정학과 석사, 파리정치대 소련동구권학과 박사. 국방선진화 추진위원회 위원,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정책자문위원, 방위사업추진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현 국가보훈처 국가보훈위원, 육·해·공군 정책자문위원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