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스포츠,兵法을 말하다

전략적 간접 공격으로 승부하라

입력 2013. 11. 13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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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볼링과 측후방 공격


 늦가을이 지나고 쌀쌀한 바람이 불어온다. 바깥 스포츠보다 실내 스포츠가 점점 많아진다. 볼링은 남녀노소가 쉽게 즐길 수 있다. 핀을 넘어뜨리기 위해서는 직접 핀을 조준하기보다 레인 위 7개 화살표 ‘스팟(spot)’을 간접 목표로 삼아야 한다.

볼링 경기에서 핀을 넘어뜨리기 위해 레인 위 화살표 ‘스팟’을 간접 목표 삼 듯  적 제압 위해 직접 공격은 신중해야


 

● 정면 공격의 위험성

 손자병법 제3편 모공에서 적을 굴복시키는 방법 중 직접 공격의 신중함을 강조하고 있다. ‘공성지법(攻城之法)은 위부득이야(爲不得已也)라. 수노분온(修??)하고 구기계(具器械)가 삼월이후성(三月而後成)이라. 거인우삼월이후이(距?又三月而後已)라’다. 이것은 ‘성을 무모하게 직접 공격하는 방법은 부득이한 경우에 사용하는 마지막 방법이다. 성을 공격하는 흙 운반용 수레를 만들고 공격용 무기를 갖추려면 적어도 3개월 정도 오랜 기간이 필요하다. 적의 성을 공격하기 위한 흙산을 쌓는 일도 또한 3개월 정도 필요하다’는 뜻이다. ‘분온’은 위쪽에 생 소가죽을 덮어 열 명이 화살을 피할 수 있으며, 바퀴가 있어 성을 만드는 데 필요한 흙을 운반할 수 있다. ‘거인’은 적 성벽 앞에 인공적으로 만든 흙산이다.

 또한 ‘장불승기분이의부지(將不勝其忿而蟻?之)하고 살사졸삼분지일(殺士卒三分之一)하고도 이성불발자(而城不拔者)면 차공지재야(此功之災也)라’다. 이것은 ‘리더가 자신의 개인적인 분노와 적개심을 못 참고 섣불리 자신의 병사들을 무모하게 개미처럼 적 성벽을 기어오르게 해 죽은 병사가 3분의 1이 넘게 하고, 그러고도 성을 완전히 점령하지 못하는 것은 무모한 성 공격이 주는 최악의 재앙이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간접적 정치 행동인 벌모(伐謀)와 벌교(伐交)가 필요하다. 이를 구현하는 스포츠가 볼링이다. 볼링에서 원거리 목표 핀보다 바로 앞을 바라보며, 레인 가운데가 아닌 측면을 따라가다가 핀을 측면으로 쓰러뜨린다.

● 볼링과 간접조준, 측면 공격

 볼링은 12세기 무렵 중세 귀족들 중심으로 잔디 위에서 ‘보울즈’라는 게임이 성행했다. 그리고 독일 성직자들이 케겔(막대기) 쓰러뜨리기(케글링·kegling)’라는 종교의식을 하고 있었다. 악마의 상징인 막대기를 고정시켜 놓고 둥근 볼을 제일 가까이 굴린 사람이 이겼다. 오늘날 근대볼링 기초를 만든 사람은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였다. 그는 9개 핀을 다이아몬드형으로 세우고 볼 크기 등을 정했다.

 경기는 레인(lain) 끝에 세워진 10개 핀(pin)을 볼링공으로 쓰러뜨린다. 1게임은 10프레임으로 더 많은 핀을 넘어뜨리면 이긴다. 최고 점수는 300점으로 개인 또는 2∼5명 정도가 한 팀을 이룬다. 레인은 길이 19.15m, 너비는 1.04∼1.07m다.

 볼링에서 승리는 핀을 보고 공을 던지는 초보적 ‘pin 볼링’보다 라인 바로 4∼4.5m 앞 흰색 점을 보고 공을 던지는 ‘spot 볼링’이 중요하다. 최종 목적 달성을 위해 우선 바로 앞에 있는 스팟에 정확히 공을 던지는 것이 필요하다. 인코스와 아웃코스가 있다. 전략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술적 목표 설정과도 같다. 인코스가 정면 공격이라면 아웃코스는 로렌스의 아카바 항 공격에서 찾아볼 수 있다.

●  로렌스의 아카바 항 측후방 공격

 아카바 항은 오늘날 이스라엘 남쪽 끝 항구로 홍해로 진출하는 길목이다. 영국군 정보장교로 아랍연합군과 연합작전을 위해 로렌스 중위는 1917년 5월 9일 아랍연합군 낙타부대 500명을 이끌고 홍해에 인접한 사우디아라비아 웨지를 떠나 아카바 항으로 향했다. 터키군의 배후를 기습하기 위한 전략적 우회기동이었다.  드디어 7월 6일, 로렌스의 아랍연합군은 아카바 항 직전 케리라 요새를 월식을 미리 예견하고 야간 기습으로 점령했다. 그리고 터키군 300명이 방어하던 하드라 요새를 점령함으로써 최종 목표인 아카바 항을 손에 넣었다. 그런데 이때까지도 터키군 아카바 항 포대는 모두 바다로 향해 있었다. 즉, 아랍연합군 측후방 우회공격에 대한 첩보를 인지하고도 이를 경시하고, 바다로부터 영국과 프랑스 해군의 포격에만 집중했던 탓이기도 했다. 로렌스의 아카바 우회기동은 단순한 전투 승리가 아닌 거대한 오스만 제국 몰락을 초래한 시발점이 됐다.

 

<오홍국 군사편찬연구소 연구관·정치학박사>

 

 

※ 지금까지 스포츠와 손자병법을 살펴봤다. 다음 회부터는 스포츠와 전쟁론의 관계를 ‘챔프, 클라우제비츠에게 길을 묻다’ 연재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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