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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권·제해권 장악 전쟁양상 유리하게 이끌어

김철환 기사입력 2013. 07. 17   17:58

<16> 미국 해·공군


 

 한반도 지상에서 공산세력과 자유진영이 일진일퇴의 치열한 혈전을 벌이고 있는 동안 미 해군과 공군은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전쟁기간 내내 제해권과 제공권을 장악하고, 지상군의 승리를 위한 전폭적인 지원 작전을 펼쳤다. 미 해·공군은 적의 치열한 저항으로 2400여 대의 항공기와 5척의 함정이 피해를 입는 가운데에도 적 전투부대뿐만 아니라 전쟁수행을 위한 보급·수송·기반시설에 심후한 타격을 줘 아군에 유리한 전쟁양상 조성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미국 해군의 전력은 전쟁기간 내내 적을 압도해 한반도 해안과 도서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공고히 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긴급히 순양함 1척과 구축함 4척으로 구성된 한국지원전대를 편성했다. 미 해군 가운데 북한군에 초탄을 날린 것은 한국지원전대 소속 주니유 호였다. 주니유 호는 1950년 6월 29일 해상 초계 중 묵호 해안에 집결 중인 적에게 400여 발의 포탄을 안겨준 데 이어 7월 2일에는 주문진 해상에서 북한군의 어뢰정 3척과 포함 2척을 격파하기도 했다.

 같은 해 8월 인천상륙작전이 결정되자 미 해군은 이 작전만을 위해 260여 척의 함정으로 구성된 제7합동기동부대를 특별 편성했다. 9월 초 부산과 일본의 요코하마·고베 등지에서 상륙군을 탑승시킨 기동부대는 인천으로 이동 중 두 차례나 태풍을 만나는 역경 속에서도 정해진 일정에 맞춰 인천 외해에 집결하는 데 성공했다. 미 해군은 13일 항공모함과 구축함 등을 동원한 사전 폭격에 이어 상륙작전이 완전히 승리로 끝날 때까지 함포사격으로 화력지원을 했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한 미 해군은 1950년 말까지 원산상륙작전과 진남포 기뢰제거작전 등으로 유엔군의 쾌속 북진을 도왔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해 1950년 12월 한 달 동안 진남포·원산·인천 철수작전을 시행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작전들을 통해 미 해군은 병력뿐만 아니라 수많은 피란민까지 성공적으로 구출해 6·25전쟁 중 해군의 3대 철수작전으로 손꼽고 있다. 이후 미 해군은 종전까지 해상봉쇄와 해상수송, 화력지원, 적 보급로 격파, 후방지역 교란, 도서방어 등의 임무를 통해 아군의 선전에 크게 기여했다.

 미 공군은 1950년 6월 26일 김포공항을 기습한 북한의 야크 전투기 5대 가운데 3대를 격추하며, 북한의 제공권 장악 의도를 초장에 꺾어버렸다. 미 공군이 개전 초기 펼친 적극적인 근접항공지원은 적 지상군에 심후한 타격을 입혀 진격을 크게 늦추는 효과를 가져왔다. 미 육군의 워커 장군은 이에 대해 “공군의 헌신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우리는 한국에 남아 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소련제 미그 15기의 출현이 미 공군의 제공권 장악에 큰 위협이 되기도 했지만, F-86 세이버의 긴급 투입과 한층 더 우수한 조종사들의 기량으로 전쟁 기간에 공중의 주도권은 항상 미 공군에 있었다.

 미 공군은 제공, 후방차단, 근접항공지원, 전략폭격, 항공수송, 정찰 등으로 전쟁 기간 중 유엔군의 작전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김철환 기자 < droid001@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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