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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데이지 꽃, 눈 감으면 빗물 내리고…

입력 2013. 05. 14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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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신을 짝사랑하다 꽃이 된 님프


 아폴론 짝사랑한 님프 ‘베리디스’ 데이지 꽃이 되어서도 ‘해바라기’ 날씨 흐리면 꽃잎 오므려 눈 닫아

 



 “나는 태양신이다. 기나긴 세월의 흐름을 재고 삼라만상을 내려다보는 태양신이다. 대지 위에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내 빛에 의지해 사물을 보게 된다. 나는 우주의 눈(目)이다.”

 제우스의 아들이기도 했던 태양신 아폴론은 강하고 아름다웠다. 서양에서 금발이 미인의 조건이 된 것도 태양신 아폴론을 숭상하면서부터라고 한다. 고흐의 ‘해바라기’나 ‘아를의 여인’과 같은 그림이 프로방스 지방의 태양 아래 이글거리는 노란색으로 그려진 것도 태양신의 정열적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다. 신들 중에 ‘짱’이었던 아폴론은 모든 여성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많은 님프와 정령들이 아폴론을 향한 짝사랑에 빠졌다.

 “아아, 차라리 꽃이나 되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났으면….” 베리디스의 혼잣말이 봄의 산들바람에 실려 숲 속으로 퍼져 나간다. 그녀는 해의 신을 사랑하는 숲의 님프다. 베리디스의 고통을 지켜보는 숲 속의 나무와 새, 꽃의 요정들은 그녀를 도울 수 없어 마음 아프기만 하다. 사건의 시작은 숲의 축제가 열렸을 때였다. 축제에는 예쁘게 단장한 나무와 꽃, 물의 님프들이 모두 참석했다. 드디어 님프들이 기다리던 무도회가 시작됐다. 숲의 님프 베리디스는 님프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그녀가 춤을 추면 온 숲 속에 정결하면서도 달콤한 허브향이 퍼져 나갔다. 숲의 요정과 님프들은 그녀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왠지 모를 풍요로움과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단연 숲 축제의 여왕이었다.

 과수원의 신 베르탈나스가 무도회에서 춤을 추는 베리디스의 모습에 반해버렸다. 하루라도 그녀를 보지 않으면 살 수 없을 정도로 사랑에 빠져들더니 나중에는 영혼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매일 아침 그녀가 호숫가에서 얼굴을 씻고 있으면 영락없이 나타나서 날이 저물 때까지 그녀의 곁을 맴돌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다. 밝음을 주관하는 태양신 말이다.

 베르탈나스는 감히 사랑을 고백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가 고작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그녀의 사랑을 사고 싶다’고 신에게 기도하는 일뿐이었다. 베르탈나스의 순수한 사랑을 알게 된 베리디스는 고민에 빠졌다. 간절히 사랑을 갈구하는 맑고 아름다운 청년의 영혼에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미 사랑을 준 연인을 배반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밝고 아름다웠던 웃음 대신 한숨과 그늘이 그녀를 덮었다. 그녀의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신은 차라리 꽃이 되고 싶다고 하는 베리디스의 기도를 들어주기로 했다. 결국 화려하게 빛나는 꽃이 아닌 겸손하고 천진난만한 아름다움을 가진 데이지 꽃으로 모습을 바꿔주었다. 여느 때처럼 베리디스의 모습을 보기 위해 호숫가로 향하던 베르탈나스의 눈에 이름 모를 꽃 한 송이가 들어왔다. 데이지였다. 데이지의 꽃말은 천진난만한 아름다움과 겸손함이다. 숲의 요정 베리디스의 성품이 그대로 꽃말이 됐다. 그녀는 맑고 깨끗한 공기의 날씨일 때 숲이 가장 활기에 넘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고기압의 날씨에서는 더없이 천진하고 밝은 기분으로 온 숲을 춤추며 돌아다녔다. 어둡고 습하며 왠지 모르게 꽉 조여 오는 듯한 기분이 드는 저기압이 접근해 오면 숲의 깊은 곳으로 숨어버리곤 했다. 맑고 건조한 날에는 활짝 꽃을 피우지만, 날씨가 흐리고 습도가 높아지면 꽃을 닫아버리는 데이지는 숲의 님프였던 베리디스의 속성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태양을 사랑했던 베리디스를 하필이면 데이지로 만들었을까? 데이지는 날씨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꽃이다. 5월에서 6월에 개화를 하는 데이지의 속명은 라틴어로 벨루스(bellus, 아름다움)지만, 영어로는 데이스아이(day’s eye, 태양의 눈)로 불린다. 꽃의 가운데가 태양의 눈처럼 생겨서인지 데이지는 햇빛을 무척 좋아한다. 그러나 대기 중의 습도에는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날씨가 흐려지면서 공기 중의 습도가 높아지면 꽃받침의 조직이 변하면서 꽃잎을 오므려 눈을 닫아버린다. 이러한 데이지의 특성을 신화에서 사용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가. 서양에서는 ‘데이지가 눈을 닫으면 비’라는 속담이 전해진다.

<반기성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연구원>

[TIP]미동도 아폴론을 짝사랑했다

 

  태양의 신 아폴론을 짝사랑한 소년이 있었다. 미의 여신 비너스의 아들 크리무농이다. 몇 년 전 1200만 관객을 동원하며 대박을 터트린 영화 ‘왕의 남자’는 남자 간의 동성애를 다뤄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아폴론을 짝사랑했던 소년은 태양빛이 환하게 떠오르면 춤을 추며 즐거워하다가 저녁이 되면 외로움으로 밤을 지새웠다. 소년을 바라보던 태양의 신 아폴론도 소년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둘 사이를 지켜보던 구름의 신이 질투하기 시작했다. 구름의 신은 태양의 신을 여드레 동안 구름 속에 가둬 소년이 태양을 보지 못하게 했다. 태양을 보지 못한 소년은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죽고 말았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아폴론은 죽은 소년을 금잔화로 환생시켜 주었다. 태양의 신을 사랑해서인지 금잔화로 변한 소년은 날씨와 빛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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