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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

입력 2012. 05. 14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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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간만 이용 기적을 쏘았다 12척 vs 330척 절대 열세 극복


칠천량해전에서 조선수군은 일본해군에 134척의 군함을 잃었다. 조선군을 이끌었던 원균은 육지로 도망하다 매복한 왜군에게 목숨을 잃었다. 경상좌수사 배설만이 겨우 12척의 전선을 이끌고 남해 쪽으로 후퇴하는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 것이다. 패전 보고를 받은 조정은 모함으로 백의종군하고 있던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해 수군을 수습하게 했다.

 “장부가 세상에 나와 쓰일진대 목숨을 다해 충성할 것이요, 만약 쓰이지 않는다면 물러나 밭 가는 농부가 되어도 족하니라.” 모함으로 당한 백의종군이라는 치욕과 모친의 죽음으로 정신적으로 힘겨운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최선을 다해 수군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번뜩이는 기지 발휘 31척 완전 격침·90여 척에 치명타 가해
 흩어진 병사를 모았으며 무기와 군량을 확보했다. 그는 병사들에게 민족의 생사와 국가의 안위가 달려 있다는 인식과 사명감을 고취했고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겨우 12척밖에 남지 않은 배로는 해전에서 일본과 싸울 수가 없다고 판단한 조정은 바다를 포기하고 육전에 합류하라고 명령한다.

 “임진년 이래 오륙년이 지나는 사이에 왜적이 감히 전라도와 충청도를 바로 점령하지 못한 것은 오직 우리 수군이 바닷목을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에게는 아직 전선 열두 척이 있습니다. 죽을힘을 다해 싸우면 오히려 이길 수 있습니다.”

 이순신의 장계가 조정에서 받아들여지자 그는 일본군과 싸울 준비를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적은 수로 많은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좁은 통로를 이용해야 한다. 즉 대선단이 횡으로 공격해오면 당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남해안에서 이런 조건을 갖춘 곳은 견내량해협과 명량해협이었다. 그러나 견내량은 이미 일본군이 장악하고 있었다. 이순신은 천혜의 길목인 명량해협을 결전의 장소로 선택한다. 명량은 남해에서 서해로 올라가 한강을 거슬러 서울을 공격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으로, 넓은 바다를 흐르던 물길이 좁은 해협으로 몰리면서 물살이 거세지는 곳이다.

 칠천량해전에서 원균의 함대를 대파하고 기세가 등등해진 왜군은 1597년 9월 초 전라도 해역까지 진출했다. “수백 척의 적선이 곧 몰려올 텐데 내게는 12척밖에 없다. 전라도가 뚫리면 조선은 끝장이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이곳을 지켜야만 한다.” 이순신은 한없는 고민에 빠져 명량해협의 거센 물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동남쪽으로 흐르던 조류가 서서히 멈추더니 이번에는 거꾸로 흐르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이곳은 물 흐르는 소리가 꼭 바다가 우는 것과 같다고 하여 울돌목이라 불릴 정도로 조류가 강한 곳이었다.

 특히 사리(大潮) 때에는 물살의 빠르기가 9~11노트나 돼 어떤 배라도 감히 물살을 거슬러 올라갈 수 없었다. “바로 이것이다.” 이순신은 울돌목의 썰물과 밀물 그리고 지형을 이용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좁고 빠른 명량 수로 밑에 쇠줄(수중철색)을 설치하고 막게장치로서 왜적선을 걸리게 해 강한 유속에 의해 적선끼리 서로 충돌하고 전복되도록 계획을 세웠다. 당시 조선의 전선은 판옥선으로 밑바닥이 낮고 평평한 U 자형의 평저선이었으나, 일본의 전선이었던 안택선은 밑바닥이 깊고 뾰족한 V자형의 첨저선이었다. 따라서 수중장애물은 일본 배를 막을 수 있는 효과적인 장치였다.

 드디어 일본의 대선단이 명량해협으로 공격해 들어왔다. 명량해협은 그 폭이 좁아 실제로 한 번에 맞닿아 싸울 수 있는 배는 5~6척에 지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왜선들도 한꺼번에 공격하기가 어려워 12척의 조선수군도 당당히 맞설 수 있었던 것이다.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면서 점차 조선수군이 밀리기 시작했다. 철색에 걸린 일본군함은 배들이 서로 부딪쳐 깨어지곤 했다.

 그러나 워낙 군함이 많은 일본은 수중철색을 넘어 조선수군의 전선을 몇 겹으로 포위하면서 포를 쏘기 시작했다. 조선수군들이 겁에 질려 싸우기를 주저하자 이순신은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으리라” 외치면서 선두에 나서 필사즉생(必死則生)의 기개로 싸웠다. 이순신으로 인해 조선 수군들이 용기를 얻어 공격하는 순간 이게 웬일인가? 남쪽으로 조류가 바뀌더니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바닷물이 밀려나가기 시작하면서 일본함선들이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후퇴를 하려 뱃머리를 돌리는 순간 수로의 가장자리로 밀려나가면서 암초와 수중철색에 걸린 일본 배들이 침몰하기 시작했다. 이 순간 언덕 양편에 있던 화포군과 조선수군이 맹공격을 퍼붓자 왜선들은 저항조차 못하고 격침되고 말았다. 이를 본 일본군은 사기가 꺾여 전세가 불리함을 깨닫고 남은 전선을 이끌고 퇴각했다. 일본 함선 330척 중 명량해협으로 진입한 130여 척 가운데 31척을 완전 격침시키고 90여 척을 치명적으로 파손시킨 것이다. 그러나 조선군은 한 척의 배도 손실이 없었다. 이 전투가 해전사상의 기적이라는 ‘명량해전’이다.

 
[Tip]우연이란 없다

“달빛은 배에 가득 차고 온갖 근심이 가슴에 치민다. 홀로 앉아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닭이 울어서야 어렴풋이 잠을 청했다(海月滿船 百憂攻中 獨坐輾轉 鷄鳴假寢).” 난중일기에 기록된 이순신 장군의 글을 보면서 그의 가슴을 가득 채웠던 나라 사랑을 새삼 깨닫는다.

 명량해전에서 대승을 거둔 이순신은 난중일기에 이날의 해전을 천행(天幸)이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우연이란 없는 법이다. 행운이라는 것은 준비된 자에게만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손자병법 제5 ‘병세’편에서는 “기책을 잘 발휘하는 자는 천지같이 무궁하고 강과 바다와 같이 마르지 않는다(善出奇者 無窮如天地 不竭如江海)”라고 말한다. 이 말은 복잡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번뜩이는 기지를 발휘해 끊임없이 새로운 전략을 구상해 적을 대해야 한다는 말이다. 오직 위대한 장군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이순신이라는 위대한 장군을 가졌던 우리나라는 참으로 행복한 나라였다.

 “내가 넬슨과 비교되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이순신과는 안 된다. 그는 전 세계 역사상 가장 뛰어난 해군 제독이었기 때문이다.” 청나라와 러시아의 막강 해군력을 깨뜨려 일본 최고의 제독으로 칭송받았던 도오고의 말이다.

<반기성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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