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병영의추억

<47>푸드스타일리스트 김 현 학 - 해상병 438기

입력 2011. 04. 08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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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와 인연은 취사병 없던 고속정이 중매


진해 군항제 때 고속정 청소 후 선·후임과
함께(가운데).

방송 출연 중 요리솜씨를 선보이는 김현학.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이 카피는 전자제품을 고를 때만 통하는 인생의 지혜가 아니었다. 끝없는 도전으로 이어질 미래를 좌지우지하는 데도 큰 영향을 끼치는 명언이었다. 친구의 농담 섞인 권유로 우연히 도전했던 TV 리얼리티 쇼 ‘도전! 푸드스타일리스트’에 출연한 이후 푸드스타일링 세계에 눈을 뜬 남자, 김현학. 사실 그의 삶은 철학과 졸업생이 흔히 걷는 보편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뻔했다. 하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인생은 우연의 연속이자 당장 한 치 앞도 정확하게 내다보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인 것을…. 그래서 살맛 나는 것이 바로 인생 아니겠는가? 그런데 놀랍게도 그의 푸드 인생은 군 시절부터 조금씩 조금씩 맛을 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재수 끝에 해군 입대에 성공한 해상병 438기입니다.(하하) 1999년 8월 16일 입대해 2001년 12월 15일 제대했습니다. 해군 하면 역시 진해죠. 지금쯤이면 딱 벚꽃 축제를 준비하느라 한창 바쁘겠네요. 보통 해군은 6개월 정도 군함에서 근무하는 순환근무제를 실시합니다. 그런데 전 1년 정도 함에서 생활했습니다. 참수리 고속정이라고 하는데 군함 중 가장 작은 편에 속하는 것이었죠. 육군으로 치면 기동타격대 정도일 겁니다. 보통 대위가 정장을 맡고 선임 부사관이 갑판장을 맡지요. 남자들이 술자리에서 군대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제가 이런 얘길 처음 했을 때 다들 얼마나 신기해하던지요. 저는 유격이나 행군을 잘 모릅니다. 대신 전투수영·다이빙·해상사격·유류보급과 같은 훈련을 했으니까요.”

 필자에게도 약간 낯선 인터뷰였다. 용어와 생활 방식까지 육군과는 꽤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색다른 세계는 또 다른 기대를 낳게 하는 법. 질문도 많아지고 웃음의 강도도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불법 중국어선 나포 이야기에서는 007작전을 듣는 듯 재미지수가 200% 이상 높아만 갔다. 그러다 인터뷰는 자연스레 요리라는 주제로 흘러갔다. 군에서 처음으로 요리해 봤다는 김현학 푸드스타일리스트. 그가 근무했던 고속정에는 취사병이 따로 탑승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병사들 스스로 밥도 짓고 반찬도 만들고 국도 끓이고…. 결국 그의 인생 터닝포인트는 군대가 제공한 것이 아닐까?

 “해군도 보초 서고 당직 섭니다. 4시간 3교대로 진행하지요. 고속정의 엔진과 불이 다 꺼졌을 때 한 폭의 그림같이 수놓인 은하수 아래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전우와 함께 인생 이야기도 나누고 노래도 부르면 일상의 피로가 확 풀립니다. 관물대에 숨겨 뒀던 음식을 꺼내 와서 먹기도 했지요. 아, 정말 반짝반짝 빛나는 추억입니다. 저희 고속정이 가덕도 아래 저도라는 섬 근처에 정박했을 때가 생각나네요. 날씨가 좋으면 물 색깔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상상도 못할 겁니다. 정말 에메랄드빛이죠.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어요.”

 추억은 추억을 덧입고서 한 편의 시가 된다. 그리고는 술술 이어져 어느덧 노랫가락으로 변한다. 계속 이어진 인터뷰도 리듬을 타듯 유쾌함으로 가득했다.

 선임하사와 비슷한 나이에 뒤늦게 입대해 늙은 여우라는 별명을 가졌다는 그는 그런 것쯤은 전혀 개의치 않는 낙천적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렇게 불리더라도 오직 가족 같은 내무반 생활이 그저 너무 좋았을 뿐. 그러면서 육지에 정박했던 이야기를 바로 꺼낸다.

 “일주일 정도 바다에 나가 있으면 얼굴에 소금기가 잔뜩 묻어버립니다. 아무리 씻어내도 잘 지워지지 않지요. 피부가 많이 안 좋아진 게 혹시 그 이유 때문은 아닌가 싶습니다. 원래 백옥 같은 피부였는데 말입니다.(하하) 육지에는 보통 일주일 정도 정박해 있습니다. 깡깡이라 불렀던 망치로 고속정을 정비하는 거죠. 페인트도 벗겨 내고 녹슨 부위를 새로 칠하기도 합니다.

저희 고속정이 참모총장 행사배로 변신했던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쓸고 닦고 했는지…. 보통 작은 군함은 큰 군함을 보며 경례를 합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셨을 텐데요, 그런데 그때는 모든 군함이 저희 고속정을 보며 경례를 했답니다. 고개를 까닥거리면서 ‘그래, 니네가 수고가 많다’며 속으로 키득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괜히 으쓱해지는 거죠.”

 군 생활을 통해 많은 재미와 추억 그리고 낭만을 간직하고 있는 만큼 보고 싶은 동기들도 많다는 그. 5기수 차이가 나는 심우식 일병이 특히 보고 싶다면서 이번 인터뷰가 ‘보고 싶다 전우야’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통신병이었던 심 일병과 형제처럼 서로 의지하며 지냈는데 심 일병이 먼저 육지로 자대 배치를 받은 후 간간이 이어졌던 연락이 어느 순간 끊어져 버렸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앞서 순환근무제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가 고속정을 떠난 뒤 어디서 군 생활을 계속 이어나갔는지 무척 궁금했다.

 “고속정에서 내린 뒤로는 대전 계룡대에서 군 생활을 계속했답니다. 시설물 관리병이었는데 조금 더 정확하게는 테니스장을 관리했었죠. 마도로스 이미지를 잔뜩 품고 입대했는데 육지로 와서는 조금 심심하기도 했답니다. 역시나 해군 이야기는 군함에 있을 때가 가장 멋있지요.”

 그는 아버지께서 매일 부치셨다는 851통의 편지 이야기를 꺼냈다. 하루도 빠짐없이 아들을 위한 일기를 쓰시듯 편지를 보내셨다는 아버지. 아버지의 아들 사랑이 아들의 해군 사랑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불쑥 나온 천안함 사건. 지워버리고 싶은 그 명단에 고등학교 동창 이름이 있었다고 한다. 이제는 볼 수도 안부를 물을 수도 없지만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해 줘서 더없이 고맙다는 마지막 인사를 친구에게 전하며 그는 인터뷰를 마쳤다.

푸드스타일리스트 김현학은…
 한남대 철학과 졸업, 경기대 식공간연출학 석사. GTV ‘도전! 푸드스타일리스트’ 출연, 올리브 채널 ‘푸드스타일링 대회’ 1위 입선 이후 인생을 요리로 표현 중. 한국 코카콜라 자문위원, 미국 아몬드협회 홍보대사, 피자헛 홍보대사, 문화체육계를 이끄는 명사 90인 등에 선정됐다. SBS ‘출발 모닝와이드’, KBS ‘경제 비타민’ 등에 출연했으며 캐논·스타벅스·롯데마트·헤라옴므 등에 모델로 활동했다. 저서로 ‘결혼해 줘 밥해 줄 게’ ‘포토레시피북’이 있다.

 <조기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iammaxim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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