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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풍운의 별-138-`6·25참전유공자회'

입력 2010. 01. 25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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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당시 채명신 장군.<자료사진>

채명신(蔡命新·육사5기·중장예편) 장군을 차기 회장으로 추천한 ‘사단법인 대한민국 6·25 참전유공자회’ 김학호(學浩·종합11·소장예편) 사무총장과 부회장인 나는 유재흥(劉載興·군영·합참의장·국방장관 역임·중장예편) 회장의 지시에 따라 채 장군을 접촉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목적은 먼저 채 장군이 과연 6·25 참전유공자회(參戰有功者會) 회장에 뜻을 두고 있는지 여부를 직접 본인 입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었다.

다음으로는 일단 회장직을 맡은 다음부터는 그 전에 했던 월남전 유공자회 같은 다른 일에는 일절 손을 떼고 오로지 6·25 참전유공자회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우리 두 사람은 논의 끝에 채 장군은 김학호 사무총장이 단독으로 만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그 후 김학호 사무총장은 채 장군과 만나 앞에서 얘기한 두 가지 사실을 확인했다.

김학호 사무총장에 따르면 그는 확실히 6·25 참전유공자회 회장직을 수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분명했다. 또 회장직에 취임하면 일절 다른 일에는 관여하지 않고 오직 6·25 참전유공자회 업무에만 전념(專念)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나는 사무총장으로부터 채 장군과의 면담 결과를 듣고 이를 유재흥 회장에게 그대로 보고하자고 했다. 그래서 채 장군을 차기 회장으로 최종 추천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차기 회장 채명신 장군 추천

 다음날 우리 둘은 유재흥 회장에게 그간의 경과를 소상히 설명하고 채 장군을 강력히 추천했다.

유(劉) 회장도 우리의 추천을 흔쾌히 수용했다. 그렇게 해서 ‘사단법인 대한민국 6·25 참전유공자회’는 새로운 기관 명칭과 함께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기게 됐다.

1997년부터 무려 7년에 걸친 유재흥 회장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2004년 3월 26일 제2대 채명신 회장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신임 채명신 회장은 취임식이 끝나자마자 한 달 만인 4월 28일 대대적인 인사 개편에 착수했다.

채명신 회장, 인사개편 착수

 나와 김학호 사무총장도 인사에 포함돼 있었다. 부회장인 나는 수석 부회장으로, 사무총장인 김학호 장군은 육군 부회장으로 각각 인사명령을 받았다. 외견상으로 볼 때는 두 사람 다 영전(榮轉)한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김학호 사무총장의 경우는 2001년 8월부터 2004년 4월까지 3년 동안 투철한 사명감으로 조직을 관리해 온 1등 공신이다.

원래 사무총장은 6·25 유공자회를 사실상 이끌어 가는 기관차 역할을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신임 회장도 그를 나름대로 예우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이와 함께 유공자회를 이끌어 갈 가장 핵심 요직인 사무총장에는 박희모(朴熹模·갑종9·중장예편) 장군이 임명됐다.

그는 채명신 제2군사령관 밑에서 본부사령으로 근무했던 만큼 채 회장의 신임이 매우 두터웠다.

새로운 회장 체제하에서 수석 부회장과 사무총장, 그리고 육군 부회장에 이어 해군 부회장과 공군 부회장도 새로 교체됐다. 해군 부회장에는 홍기경(洪起京·해사4기·준장예편) 제독을, 공군 부회장에는 배상호(裵相昊·사후16) 예비역 공군 소장을 각각 임명한 것이다.

특히 이들 두 사람은 채명신 주월(駐越) 한국군사령부에서 백구(白鷗)부대장(홍기경 제독)과 공군지원단장(배상호 장군)으로 각각 근무한 인연을 갖고 있다.

<박정인 전국방부전사편찬위원장·정리=김준범 언론인 balm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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