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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동두천 부근 전투

기사입력 2009. 12. 28   00:00 최종수정 2013. 01. 05   05:11

동두천 북쪽 서부전선 요충지 방어 임무 완수

 1950년 12월 초순에 평양으로 집결한 국군 및 유엔군은 대동강 선에서 중공군의 남하를 저지하려 했으나 청천강 방어진을 돌파한 중공군은 서부의 전 전선을 통해 신속히 공격하는 한편, 그 일부는 중부의 산악지대로 우회해 유엔군의 전선이 급박해졌다.

 유엔군은 전략상 계획을 바꾸어 38도선에서 방어선을 전개할 목적으로, 12월 중순부터 지연전을 펼치면서 부대를 철수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이 서부의 모든 부대를 축차적으로 철수하는 동시에, 동부에서는 12월 24일 흥남을 철수함으로써 방어 전선을 서부의 임진강에서 동부의 양양을 연하는 선으로 결정한 후 차후 작전을 수행하게 됐다.

 이때 6사단은 이 방어계획의 일환으로 미 9군단으로부터 “동두천 북쪽 10∼12㎞의 38도선 일대를 점령 방어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으니, 6사단의 방어정면은 연천·포천·양주가 상호 근접하는 서부전선의 요충지였다.

 유엔군의 철수를 방해하면서 남하하던 중공군은 38도선에서 유엔군의 강력한 방어진에 부딪치자, 일단 추격을 멈추고 12월 중순부터 새로운 작전인 ‘중공군 신정 공세(三次戰役)’를 준비했다. 그 계획의 요지는 동부전선에서는 유엔군의 종심을 향해 진출한 다음 배후를 공격하며, 중부와 서부전선에서는 이에 호응해 38도선을 돌파하고 일선 방어지대의 병력에 타격을 가한 다음 단시일 내에 서울을 공격하는 한편 일부 병력을 청평 방면의 중부전선으로 진출시킨다는 내용이었다.

 12월 31일, 연말에 접어들면서 중공군의 활동이 빈번해지고 공격 징후가 뚜렷하게 포착되자, 6사단은 연말연시를 통한 특별경계령을 하달하고 만반의 전투준비를 갖추도록 했다. 중공군은 38군을 주축으로 사단의 방어 정면인 동두천과 의정부 방향으로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6사단 전 병력은 혼연일체가 돼 진지를 고수하고 이미 계획된 화력을 집중해 이를 저지하면서 중공군에게 타격을 가했고, 때마침 공군의 공중폭격으로 중공군의 전열을 파괴하고 전의를 꺾어 놓자 전 전선의 중공군은 퇴각하기 시작했으며, 이 기회를 포착한 7연대는 전곡까지 추격해 중공군을 격퇴했다.

 하지만 1월 1일, 전황은 시시각각으로 급변해 좌측 부대인 1사단이 돌파돼 중공군이 동두천 북서쪽 5㎞ 지점인 안흥리(安興里) 부근까지 침입했다. 우측 부대인 미 24사단 정면으로 침투한 중공군이 6사단 측후방으로 우회해 그 일부가 동두천으로 침투했다. 이와 같이 주진지가 적중에 고립될 위기에 처하게 되자, 6사단장(준장 장도영)은 부대를 창동으로 철수토록 했다. 1월 2일, 6사단은 주력의 대부분을 창동에 집결시키고 부대를 재편성해 수도방위의 최일선을 맡으려 했으나 미 8군은 미 1군단 예하의 영국군으로 하여금 의정부에서 방어진지를 점령토록 했기 때문에 6사단은 미 9군단의 예비가 돼 축차진지인 한강방어선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6사단은 동두천 부근 전투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저지했으나 사단의 인접 부대가 붕괴돼 고전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1월 3일, 6사단이 한강 남쪽에서 방어 진지를 편성하고 있을 때 유엔군은 전략상 현 전선을 오산~장호원~제천~영월~삼척을 연하는 선으로 조정한 후 차후 작전을 준비토록 했다. 이때 중공군은 북한 1군단과 중공군 38·39·41군 등의 대병력이 서울을 목표로 급속하게 공격해 3일에는 의정부, 4일에는 서울을 공격하더니 그 일부가 인천과 수원까지 남하하면서 계속 진출을 기도했다. 이러한 가운데 6사단은 미 9군단의 계획에 따라 부대를 오산~삼척 선으로 철수해 전열을 갖춘 후 반격을 시행할 계획으로, 각 연대는 지연전을 펴면서 축차적으로 철수했다. 2연대는 4일 광주(廣州)로 집결해 인원과 장비를 수습한 다음 6일 안성 일대, 7연대는 용인 일대, 19연대는 진천 일대를 점령했다.

 이와 같이 6사단은 1월 6일까지 주력을 진천 북쪽 일원으로 이동시킨 다음, 7일부터 전력의 보충과 탐색전을 전개하면서 반격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6사단은 동두천 부근 전투에서 담당 방어 정면을 고수하고, 그 임무를 완수한 데 대한 전공으로 대통령 표창과 미 9군단장으로부터 부대 표창을 받았다.

<허진녕 소령(진) 육군사관학교 전사학 전임강사 >

지난 1년 동안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아 온 ‘금주의 전투사’가 새해 지면 개편으로 종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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