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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여행<40>왔다리갔다리

입력 2007. 11. 07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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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방송을 듣다가 출연자가 ‘왔다리갔다리’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잊을 만하면 들리는 말 중의 하나가 바로 ‘왔다리갔다리’이다. 꽤 퍼진 말이고 알고 쓰는 사람도 많은 듯하다. 인터넷에서도 예가 꽤 나온다. ‘왔다 갔다’라고 해도 충분할 텐데 굳이 ‘왔다리갔다리’라고 한다.

이 말은 순수하게 언어학적인 관점에서만 보면 참 흥미로운 말이다. 우리말과 일본어가 특이하게 결합한 말이기 때문이다. ‘왔-’과 ‘갔-’이라는 우리말에 ‘-다리’라는 일본어에서 유래한 말이 붙어 된 말이다.필자가 알기로 우리말에서 ‘-다리’는 ‘왔다리갔다리’에서만 나타난다. 일본어에서 ‘-다리’는 어떤 상태나 동작이 되풀이되는 뜻으로 자주 쓰이는 말이다.

우리말의 어미와 비슷한 성격의 것이다. 보통은 다른 언어로부터 단어만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왔다리갔다리’는 우리말 어간에 다른 언어의 어미가 결합하여 우리말에서 하나의 단어처럼 쓰이는 것이다. 우리말과 일본어의 언어 구조가 유사하여 이런 특이한 예가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왔다리갔다리’처럼 흥미로운 단어로 ‘삐까번쩍’이 있다. 역시 일본어와 우리말이 특이하게 결합한 말이다. 인터넷에서 예를 찾으면 ‘비까번쩍, 비까뻔쩍, 삐까번적, 삐까뻔적, 삐까뻔쩍’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비까비까, 삐까삐까’도 있다. 그런데 ‘비까비까(삐까삐까)’는 일본어에서 ‘번쩍’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비슷한 뜻의 ‘삐까삐까’와 ‘번쩍번쩍’이 함께 쓰이다 보니 그 둘에서 ‘삐까번쩍’이 만들어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구성은 우리말에서 흔하기는 하다. ‘싱글싱글, 벙글벙글’과 ‘싱글벙글’이 그 한 예이다.이 말들이 최근에 만들어진 말은 아닐 듯하다. 일본의 지배를 받는 시기에 우리말에 일본어가 섞여 쓰이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말일 듯하다.

그동안의 끈질긴 일본어 잔재 추방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쓰이고 있다. 말의 생명도 참 질기다.참고로 ‘왔다리갔다리’는 국어사전에 없다. ‘삐까삐까, 삐까번쩍, 비까비까, 비까번쩍’은 국어사전에 있지만 올바른 단어로 인정은 되지 않았다. 쓰지 말아야 할 일본어로 보는 것이다.

<조남호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chonamho@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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