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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여행<4>죽을 ‘사’

입력 2007. 01. 24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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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젠가 비교적 층수가 많은 병원을 갔다가 승강기 안에서 새삼스럽게 안 사실이 있다. 그 병원에는 4층과 13층이 없었다. 사람들이 4와 13을 불길한 숫자로 여겨서 병원에서 층수를 매길 때 그 점까지 고려하는구나 하고 깨닫고는 병원을 지으면서 별것도 다 고려해야 한다 싶어 혼자 감탄했다.
    승강기에서 4층을 표시할 때 ‘F’라고 표시하는 일도 흔하다. 4라는 숫자가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영문자 약자를 따다 쓰는 것이다. 4층을 두기는 두되 ‘사’라는 발음을 피하고자 눈 가리고 아웅한 셈이다.
    13을 꺼리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이 알 듯이 우리 전래의 관습은 아니다. 서양 사람들이 꺼리는 숫자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우리도 쓰기를 꺼리게 된 것이다. 4를 피하는 것은 4의 발음 ‘사’가 죽을 사(死)와 발음이 같기 때문에 꺼리는 것으로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필자는 어렸을 때 4의 한자어 ‘四’가 ‘넉 사’이어서 ‘넋’과 발음이 같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라고 들은 적도 있다.
    그런데 4를 꺼리는 관습에 관한 흥미로운 역사 기록이 있다. 1636년 통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을 다녀왔던 김세렴이라는 사람이 해사록이라는 기행문을 남긴 바 있다. 이 기행문에는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 부산에 머물면서 일본 측 사람들과 나눈 대화가 1636년 9월 8일자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 대화 중에 일본 사람들이 우리가 보내는 예물을 확인하면서 붓과 먹을 40개 보내는 것이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는 대목이 나온다. 일본에서는 사(四)와 사(死)가 음이 같아 크게 꺼리니 40개를 보내는 것을 피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이 기록에서 4를 꺼리는 것은 일본의 관습이었지 우리의 관습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4를 꺼리기 시작한 것은 일제 강점기 이후로 보고 있다. 일본 사람과 섞여 살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인의 관습이 우리에게 옮겨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우리말에서도 우연히 4의 발음과 死의 발음이 ‘사’로 같은 것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어쨌든 4와 13을 꺼리는 태도는 예전보다 많은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이식된 관습이 정착하지 못하고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조남호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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