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패전속승리학

<69>대서양 전

입력 2006. 12. 26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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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없는 의사결정이 내려지는 전쟁에서 정보는 너무나도 중요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적의 정보를 파악하고 아군의 보안을 유지하려는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어느 참전국보다 비화통신수단에 노력을 기울였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이미 암호집이 영국군에 넘어가 작전계획이 완전 노출됐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 해군은 1926년 ‘에니그마’(Enigma)라는 비화기를 도입했다. 이어 28년에는 육군이, 35년에는 공군이 이를 도입하며 전군으로 확산됐다.독일군은 에니그마를 활용한 비화통신의 보안성을 자신했다. 그러나 통신병들이 보안규칙을 무시하고 임의로 반복적인 패턴의 송신을 하면서 폴란드의 암호 해독가들이 그 비밀을 하나씩 밝혀 나갔다.특히 창군한 지 얼마 안 되는 독일 공군 통신병과의 보안상태가 가장 취약해 제2차 세계대전 개전 무렵이 되면 공군 무선 전문 해독률이 크게 올라갔다.

    39년 폴란드 병합 이후 암호 해독 노하우를 전수받은 영국은 이를 기반으로 에니그마 암호체계 공략에 한 발짝 다가섰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보안이 취약했던 육·공군과 달리 독일 해군은 정보전에 있어 호적수였다. 독일 해군은 전쟁 초반부터 영국 상선간 암호체계를 해독하고 소수의 잠수함을 마음껏 활용해 수많은 화물선을 격침시켰다. 또 영국 해군 암호 3호까지 해독해 정보전의 우위를 점했다.상황의 반전은 41년부터 조금씩 나타났다.

    연합군이 대규모 호송선단을 조직하기 시작하고, 추축동맹군이 대규모 잠수함을 취역시킴과 동시에 영국도 해군 에니그마의 비밀을 조금씩 파악, 해독기계까지 제작했다. 특히 41년 5~6월에 독일 잠수함과 무장상선을 기습, 장치 실물과 암호집을 탈취하자 41년 중반 독일 해군의 동태가 샅샅이 드러났다.독일 해군도 급격히 증가하는 피해를 보고 기밀 누출을 감지했다. 하지만 끝끝내 영국이 에니그마 해독기를 개발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믿고 에니그마에 추가적인 보완장치만 달아 해결하고자 했다.

    42년 독일 잠수함대가 에니그마를 이용한 트리톤 암호체계 시행에 들어가자 영국의 암호 해독 페이스는 다시 현저히 떨어졌으며 독일의 통상파괴전은 43년 3월 45만 톤 격침의 정점으로 치달았다.그러나 43년 3월 19일 트리톤 암호체계의 마지막 단서가 풀리면서 영국군은 다시 독일 잠수함대의 위치를 속속들이 파악했다. 신형 레이더를 장비한 초계기가 대거 배치되면서 독일 잠수함대의 입지는 급격히 축소됐다. 급기야 5월에 38척의 잠수함을 잃으면서 사령관 되니츠 제독은 대서양 해역의 작전을 중지시켰다.

    이어 6월 10일에는 종전까지 독일이 해독해 내지 못한 영국 해군 암호 5호가 도입되며 정보전의 추는 완전히 기울었다. 결국 전쟁 초기의 영광을 뒤로한 채 독일 잠수함대는 대서양 전투에서 패배하고 말았다.독일군은 대전 내내 통신보안의 이상 징후에 대해서는 꾸준히 감지했음에도 끝끝내 에니그마가 완전무결하다고 착각, 정보전에서 패배했다. 전쟁에서 보안태세를 확립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덕목인 것이다.

    <채승병 전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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