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패전속승리학

<65>미드웨이 해전

입력 2006. 11. 28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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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평양전쟁 초기 일본 해군은 미국·호주 사이의 연락선 차단을 목표로 남태평양 작전에 주력할 태세였다. 반면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시간을 끌수록 미국이 우세해지므로 곧바로 미드웨이 섬을 거쳐 하와이를 공략해 강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작전 승인을 거부하던 일본 해군은 1942년 4월 둘리틀 폭격대의 기습 본토 공격을 받고서야 미드웨이 공격작전을 승인했다.

    5월 27일, 4척의 항공모함을 주력으로 하는 1기동함대가 출동했고, 이틀 뒤에는 야마모토 제독이 이끄는 연합함대 주력이 뒤를 이었다.마침내 6월 5일 작전 해역에 도달한 일본군은 현지시각 04시 30분부터 1차 공격부대를 발진시켜 미드웨이 섬을 맹렬히 폭격했다. 그러나 미군은 이미 암호 해독을 통해 일본군의 공격 징후를 파악하고 대기하고 있던 폭격기들을 출격시켜 일본 기동함대에 반격을 가했다. 항모 3척이 주력인 플레처 제독의 17기동함대와 스프루언스 제독의 16기동함대도 해역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이를 모르고 있던 1기동함대 사령관 나구모 중장은 미드웨이 섬에 재차 결정타를 날리고자 7시 15분 대기 중인 뇌격기들에 대지공격용 폭탄 장착을 명령했다. 이 사이 미 해군 기동함대는 일본군 항모를 겨냥해 7시부터 117대의 항공기들을 발진시키고 있었다. 일본군 정찰기가 미 함대를 발견한 것은 7시 40분이 돼서였다.

    나구모에게는 긴박한 선택의 순간이었다. 곧 귀환하는 항공기의 착함을 위해 비행갑판을 비워야 하므로 대기 중인 뇌격기들의 출격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예하 2항공전대 사령관 야마구치 소장은 지상공격용 폭탄으로도 미 항모의 약한 비행갑판 공격에는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출격을 요청했다. 나구모는 판단을 주저하다 1차 공격부대를 먼저 착함시키고 뇌격기는 어뢰·대함공격용 폭탄으로 무장을 교체한 뒤 출격한다는 치명적인 결정을 내렸다.

    9시 20분부터 일본 항모들에 접근한 미군 뇌격기들은 전투기 엄호도 없는 상태에서 초계비행 중이던 0식전투기(제로센)에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이들의 희생으로 일본 기동함대의 전투초계비행태세가 교란되며 북동쪽과 남서쪽 고공에서 내습한 급강하 폭격기들이 초계망을 돌파할 수 있었다.

    10시 22분 폭격이 시작될 무렵, 전후 통설에는 일본 항모들의 비행갑판이 항공기·폭발물로 어지러웠다고 전해졌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함상은 비교적 깨끗했으나 얇은 비행갑판은 내리꽂힌 폭탄에 여지없이 관통됐고 내부 격납고는 유폭됐다공격 후 10분도 안돼 아카기·카가·소류 3척의 항모가 연달아 대파되며 순식간에 전황은 미국 측으로 기울었다. 열세에 몰린 일본 해군은 그날 오후 남은 항모 히류마저 잃으며 완패했다.

    욱일승천하던 일본 해군의 기세가 꺾인 미드웨이 해전의 1차 패인은 역시 낙관에 젖어 허술했던 광역초계 활동이었다. 그러나 뒤늦게나마 적함 발견 보고가 들어왔을 때 나구모 제독이 야마구치의 조언을 받아들여 임기응변을 발휘했더라면 일본군은 훨씬 빨리 조직적인 반격을 도모하고 주도권을 유지할 가능성이 충분했다. 한층 기민한 의사 결정과 행동을 요구하는 해상기동작전에서 한 순간의 결정 지연이 초래할 수 있는 참극이란 실로 엄청났던 것이다.

    <채승병 전사연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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