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파병52문52답

<41>자이툰부대 파병 배경과 경과

입력 2006. 11. 14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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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정부는 2003년 4월 서희·제마부대를 이라크에 파병한 이후 2003년 9월 4일 미국 정부로부터 추가 파병을 요청받았다. 그해 10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이라크 추가 파병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파병 방안을 구체화하기 위해 정부 합동조사 3회, 국회조사단 현지조사 활동과 3차에 걸친 대미(對美)협의를 거쳤다. 2003년 12월 17일 추가 파병안을 확정 발표하고 미국과의 군사 실무협의를 통해 파병 지역과 시기, 군수지원을 협조 조정했다.
    추가 파병안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2003년 12월 24일 국회에 제출했다. 2004년 1월 16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상정돼 2004년 2월 9일 국방위원 14명이 참석한 가운데 찬성 12명, 반대 2명으로 통과됐다. 2004년 2월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파병안이 가결돼 사단급 규모의 파병이 추진됐다.
    정부가 이라크에 추가 파병을 결정한 이유는 첫째, 헌법과 군인 복무 규율에 명시된 국제 평화 유지에 노력하고 이바지하기 위한 우리의 의지를 천명했다. 2003년 10월 16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대이라크 다국적군 파병과 재건에 관한 결의안 1511호에 명시된 세계와 중동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기 위함이다.
    둘째, 후세인 체제의 압정(壓政)과 전쟁으로 피폐한 이라크 국민들이 가난에서 해방되고 민주 정부 수립을 통해 정상적인 삶을 회복하는 과정은 국제적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 대한민국은 유엔 회원국으로서 이라크 내 책임 지역의 치안과 질서를 회복하고 의료와 재건활동을 통해 이라크 국민들이 전쟁의 폐허 위에서 국가를 재건하는 데 기여하기 위함이다.
    셋째는 우리 기업의 이라크 전후(戰後) 복구사업 참여를 통한 국가 이익 창출을 지원하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550억 달러 규모의 재건사업에 참여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석유 화학, 통신사업 등 대규모 사회 기반 시설 산업에 진출한다. 제2의 중동 특수를 이끌어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은 6·25 전쟁 당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전사 3만6940명, 부상 9만2134명, 실종 3737명, 포로 4439명 등 희생을 감내하며 우리나라를 위해 피 흘려 싸웠다. 이러한 혈맹국이 이라크에 평화를 정착하고 신속한 재건을 위해 한국의 지원을 절실히 요청함에 따라 한국에 대한 신뢰감 증진과 미래 한미동맹 관계의 발전에 긍정적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추가 파병을 결정했다.
    <중령 서상권 합참 해외파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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