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戰史속살신성인

<23>임택순 공군 대위

입력 2005. 12. 09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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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후까지 영공 지킨 한국전 영웅

    삶과 죽음이 명에 달렸으니 논할 필요가 없다(死生有命 不足論).사나이 조용하게 하늘을 향해 나아가리라(男兒從容 往大空).

    이 내용은 6·25전쟁 영웅 임택순 공군대위가 마지막 출격하기 전날 쓴 일기의 한 대목이자 살아생전 남긴 마지막 유언이다. 이 일기를 통해 조국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기꺼이 죽을 수 있다는 그의 결연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즉, 죽고 사는 것은 오직 하늘의 뜻에 달렸으니 삶에 연연하지 않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뜻이다.

    이처럼 임대위는 자신의 애기와 함께 적 보급창을 향해 돌진, 장렬히 산화했고 공군사관학교 제1기 출신으로 전쟁 중 산화한 최초의 공군인이 됐다.

    오늘날까지도 그는 6·25전쟁의 영웅으로 수많은 후배로부터 존경받고 있다. 충북 청주에 위치한 공군사관학교 내 공군박물관 입구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후배 사관생도들은 늘 선배인 전쟁 영웅 임대위의 넋을 기리며 보라매의 꿈과 이상을 키우고 있다.

    고(故) 임택순 대위는 1930년 12월31일 충남 연기군 전의면 대곡리에서 3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군인의 꿈을 키워 온 그는 당시 최고의 명문인 경기고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1949년 6월 공군사관학교 제1기 사관으로 입교했다.

    재학 시절에도 학업 성적은 물론 운동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특히 수영과 기계체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기량이 뛰어났으며 조종사의 길을 택한 후에도 동기생들 가운데 탁월한 조종 기술로 주목받았다.

    1951년 8월 제1기 사관으로 임관한 그는 전투 기량을 끊임없이 연마한 뒤 6·25전쟁이 막바지에 달한 1953년 1월23일 첫 출격했다. 이후 1개월 반 동안 그는 수 차례 출격해 혁혁한 공을 세웠으나 열한 번째 출격시 지상군의 작전을 엄호하고 적의 보급창과 대공 포화 진지를 공격하던 중 적의 포탄에 맞아 24세 꽃다운 나이에 전사했다.

    그는 당시 적의 보급창을 공격한 후 북한군 7군단 고사포 진지를 강타했으나 3000피트 상공에서 불운하게도 적의 대공 포화를 맞았다. 그러자 그는 더 이상 조종을 할 수 없게 되자 1500피트 상공에서 애기와 함께 운명을 함께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다른 동료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이를 알린 뒤 실천에 들어갔다.

    기수를 돌려 화염에 휩싸인 적의 보급창을 향해 돌진한 것이다. 그의 돌진에 당황한 북한군은 적극적으로 대공 공격을 펼치며 막아 보려 애썼지만 이미 ‘하늘에 살다가 하늘에 목숨 바치겠다’는 임대위의 신념을 막을 수 없었다. 마침내 그의 전투기는 적의 보급창에 떨어져 굉음과 함께 불꽃을 피우며 장렬히 산화함으로써 창공을 지키는 불멸의 보라매가 됐다.

    조국 영공을 지키기 위해 불같은 삶을 살다가 산화한 임대위는 오늘날에도 많은 교훈을 남기고 있다. 오직 창공을 지키기 위해 태어나 창공을 수호하다 산화한 그의 신념이 그것이다. 평소 동료 조종사에게 100회 출격할 때까지 여자에게 관심을 두지 않겠노라고 선언했고, 실제로 비행 전투 기량 향상에만 매진했던 그의 삶은 조국을 위한 외길 인생이었다.

    그에게도 삶의 기회는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적의 포탄을 맞아 화염에 휩싸이면서도 애기를 버리고 탈출하는 것은 불명예스러운 일이라고 거부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는 현실적인 목숨보다 적의 보급창을 폭파하고 산화하겠다며 군인으로서의 임무를 더 중시했다.

    그의 평소 사생관은 죽음과 일치함으로써 사후에 모든 전투 조종사에게 귀감이 된 점도 높이 평가될 부분이다. 어차피 군인이란 누구나 전장에서 죽을 수 있지만 가치 있게 죽는 것은 또 다른 부분이다.

    그가 일기에 남긴 내용처럼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달렸으니 오직 전투 조종사로서 하늘에 살다가 명예롭게 죽겠다’는 평소의 좌우명은 바로 그의 죽음의 가치를 엿보게 하는 부분이다.

    그가 후배들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 숨쉬는 하늘의 불사조로 남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전장에서 수많은 선배 전우가 죽었지만 최후까지 애기와 함께하며 군인으로서 명예를 지키고자 했던 임대위는 오늘날까지도 모든 후배 전투 조종사에게 살신성인의 표상으로 귀감이 되고 있다.

    <중령 이준희 공군교육사령부·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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